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했다.
따뜻하고 감동이 담긴 사회의 양지를 조명하는 것만이 문화가 아니란 뜻이다. 인간 상호간의 갈등과 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사고 역시 문화에 포함된다.
문화로의 진일보를 꿈꾸는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다 같이 게임을 즐기는 이상적 양지문화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두운 음지문화도 게임이란 테두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
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이 문화로 성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집고 넘어가야할 음지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도박의 역사는 동서를 막론하고 굉장히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조차 세상을 창조할 때 도박방식을 사용했는데, 제우스와 하디스 포세이돈 형제들은 통치영역을 나누면서 주사위를 던져 영향력을 결정했다.
한국의 경우 정확한 시작점을 알 수 없지만 역사서에 기록된 실화를 통해 도박의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고려 중기의 역사학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백제의 개로왕이 간첩승 도림과 바둑을 두면서 국사를 소홀히 했고, 이로 인해 백제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기록했다.
조선시대의 패관 문화서 ‘대동야승’ 역시 바둑과 장기, 쌍륙 등의 잡기들에 빠져 의지를 상실하거나 이를 도박과 접목시켜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놀이에서 기원된 도박은 사전적 의미로 돈내기나 가치 있는 어떤 것을 걸고 다투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말인 노름 역시 놀이에서 파생됐다.
즉, 놀이에 금전적인 모험이 결합될 때 중독이라는 위험한 요소를 동반한 도박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IT기술과 놀이문화의 발전으로 오늘날 여가활동의 대명사가 된 게임 산업에도 2000년대 중반 도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간판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의 등장
2006년 여름 게임업계는 ‘바다이야기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다.
사건은 2004년 스크린경마 게임을 만들던 한 아케이드게임사가 일본의 파칭코 게임인 우미모노가타리 시리즈에 착안해 ‘바다이야기’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이 게임기는 2006년까지 4만5,000여대가 시중에 유통되는 등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사행성과 중독성 문제로 정부의 집중단속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당첨내용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바다이야기’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2,200명이 조사를 받았으며, 216명이 출국금지 조치를 받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다이야기 사태’는 게임 산업에 장기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특히 아케이드산업은 ‘불법․도박’이라는 사회적 풍조와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등 중장기적 악재를 겪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초반 전체 게임시장의 50.7%를 차지했던 아케이드게임은 현재 0.9%라는 초라한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 뿌리 깊은 불법사행성게임장…"옮기고 바뀌고"
사행성게임장의 대표격인 ‘바다이야기’가 종적을 감추면서 게임과 도박의 만남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행성게임장은 단속을 피해 다양한 형태로 변종돼 주택가 등지에서 여전히 불법성행중이다.
특히 그 수법 또한 날로 교묘해지면서 최근에는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불법사행성게임장까지 등장했다. 이에 정부는 집중단속을 실시하는 등 근절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은 태블릿PC로 스크린 경마와 오션파라다이스(변종 바다이야기) 등 게임등급위원회에서 등급분류 거부된 미등급 게임을 제공하고 환전업자와 연결해 준 게임장 업주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과거 아케이드게임기에서 데스크탑 컴퓨터로 바뀌는 등 변화를 거듭해오던 사행성게임장이 보드방이나 카페분위기로 위장하고 최신 IT기기 및 태블릿 PC형태로까지 진화한 것.
태블릿PC의 경우 기기가 소형이라 위장이나 은닉이 용이하고 이동성이 뛰어나 불법영업을 감추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민중의 지팡이’가 불법영업을 주도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조직폭력배와 함께 사행성 게임장을 차려 놓고 불법 영업을 해온 현직 경찰관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사결과 문제의 경찰관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사행성 게임장 업주들의 뒤를 봐주는 조건으로 2,000여만 원의 뇌물을 수수했으며, 심지어 조직폭력배와 동업해 사행성 게임장을 직접 차린 것으로 드러났다.

◆ 바지사장을 앞세운 불법영업…이용자 처벌조항 미비
불법사행성게임장에 대한 정부의 단속은 강화됐지만 정작 근절은 난항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속에 걸려도 그 때뿐, 다시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순환이 반복되는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막상 단속에 적발돼도 관련법의 처벌 수위가 낮고, 배후에 있는 실제 업주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것.
불법사행성게임장을 게임산업진흥법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대부분 즉결심판에서 벌금형이나 불구속 등 약한 형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단발성을 제외한 고질적 영업사범의 대다수가 속칭 ‘바지사장’을 앞세워 사법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있으며, 단속 이후에도 장소를 옮겨 동종 불법영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불법사행성게임장에 대한 수요를 줄이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바다이야기 사태’이후 2006년 정부가 개정한 ‘게임산업진흥법’ 어디에도 이용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이전에는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 법’에 따라 불법 사행성 게임을 하면 업주와 손님은 각각 도박개장죄와 도박죄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암초 같은 불법사행성게임장의 근절을 통해, 사회에 만연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관계당국의 법령 개정 및 처벌 강화, 그리고 지속적 단속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재 기자 sto@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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