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계속 발매 시기가 늦춰지며 게이머들을 실망시키던 이 게임이 마침내 나올 모양이다. 항상 생각치 못했던 기발함으로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손노리가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해줄 것인지 궁금하다.
▶왜 '화이트데이' 일까?
언뜻 생각하면 '화이트데이'라는 소재와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사랑, 달콤한 사탕, 쑥스러워 하는 남학생의 모습, 따뜻한 봄날… '화이트데이' 하면 떠오르는 그림들은 이런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소재는 사건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날`과 `가장 무서운 사건`이라는 정반대의 두 이미지를 결부시켜 음습한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게임은 `연두고등학교`라는 한 남녀공학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남학생 `나`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인 소영, 성아, 지현 등 4명. 연두고등학교로 전학 온 주인공은 같은 학교 학생 소영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화이트데이 전날 밤 그녀의 책상 위에 사탕을 놓아두기로 결심하고 학교에 몰래 들어가는데…
학교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출입문은 닫혀 버리고 주인공은 꼼짝없이 그 곳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혼자인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은 그곳에서 소영과 성아, 지현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눈앞에서 갖가지 사건들을 풀어나가면서 연두고등학교에 얽힌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감 따라 위험은 더욱 커지지만 그것을 밝혀내지 않고선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과연 이들은 진실을 밝혀내고 무사히 이 미궁을 탈출할 수 있을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가장 무섭다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다. 제작사 측은 이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발생하는지, 연두고등학교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어떤 색다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 일절 함구하고 있다. '심령 학원 생존 게임' 이라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기존 호러 게임들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공포감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기존 호러 게임들이 피와 살육이 난무하고 자신을 공격해오는 좀비나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화이트데이`는 학교라는 공간을 떠도는 한 맺힌 원혼들의 한을 풀고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조종당하는 희생자를 구해내는 것과, 자신을 그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1998년 개봉됐던 영화 `여고괴담`처럼 말이다.
올해 E3쇼에서 공개된 데모 버전을 플레이하면 이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어두컴컴하고 밀폐된 학교, 삐걱거리는 복도, 커다란 괘종 시계의 소리,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 학창시절의 모교에 얽힌 귀신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상당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호러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괴물이나 좀비는 물론, 그 흔한 핏자국조차 발견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혹자는 이런 장치들이 무서워 봐야 얼마나 무서울까 하고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블레어 위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어떤 무서운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실체가 느껴질 때이다. 최대의 공포는 바로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제작사는 이런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장치들을 게임 속에 적절히 삽입해 놓았다. 앞에서 열거한 시청각적 장치들 외에도 실시간 진행 방식과 뛰어난 인공 지능을 자랑하는 적들의 등장이 그것이다.
흔히 호러 게임에선 게이머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게임 속 시간 역시 그 순간을 기점으로 멈춰지게 된다. 하지만 '화이트데이'에서는 게이머가 처음 학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시각인 밤 10시부터 게임 속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똑같이 흘러간다. 잠시 게임을 멈추고 쉬고 있다고 해도 게임 속 시간은 계속 흘러가며, 한 맺힌 원혼들과 그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사람들은 학교를 배회하며 끊임없이 주인공을 쫓아다닌다. 또 불을 켠다거나 어떤 물건을 떨어뜨려 소리를 내게 되면 그들은 즉각 알아차리고 달려온다. 따라서 '화이트데이'를 끝까지 플레이하고 싶다면 조그마한 소리도 내선 안되며, 무언가를 살피기 위해 불을 켠다거나 하는 무모한 짓도 해선 안 된다. 나의 존재를 적들에게 알리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
▶최고의 사운드 효과
아마 이 게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제작사의 화이트데이 공식 홈페이지(www.sonnori.co.kr/whiteday)를 방문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메인 화면에서 들려오는 괴기스런 사운드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이 음악은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 선생이 연주한 `미궁`으로, 현대무용가 홍신자 선생의 귀기어린 목소리와 어우러져 듣는 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엽기 뮤직, 호러 락, 귀곡 메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인디 락밴드 레이니 썬의 노래 `빨로비나`도 삽입됐다. '빨로비나'는 만돌린과 아코디언의 애수어린 선율 위에 러시아어 가사가 어우러진 동유럽풍의 슬픈 곡으로,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는 진실의 비애감을 한층 돋궈준다.
이외에도 제작사는 실제 학교를 돌아다니며 갖가지 효과음을 직접 녹음해 게임에 삽입했다. 삐걱거리는 복도의 소리, 시간을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 쇠사슬을 묶고 있는 자물쇠의 철커덩거리는 소리 등은 게이머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왕리얼 엔진`의 성능은?
데모 버전을 통해 접했던 `화이트데이`의 그래픽은 솔직히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자체 개발한 `왕리얼` 엔진으로 뛰어난 그래픽을 선사할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캐릭터들의 모습은 너무나 정적이었고 대부분의 물체들은 각이 져 있어 별로 자연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에는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매우 사실적이며 공간감 역시 잘 표현돼 있다. 또한 맵과 맵 사이를 이동할 때 로딩이 전혀 없다는 점도 높이 살만 하다. 최근 즐겼던 액션 게임 `언다잉`만 하더라도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로딩이 필요해 불편했는데, '화이트데이'에선 전체가 하나의 맵으로 이루어져 시종일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최근 모션 캡처를 사용해 그래픽 향상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니 좀더 향상된 그래픽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외에도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 방식은 마치 게이머 자신이 그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거의 모든 플레이를 마우스 하나만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해 게임에 익숙치 않은 게이머들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제작사에서 팬들에게 그림을 공모, 당선된 그림들을 게임 속에 등장시킨 것과, 곳곳에 낙서처럼 `Arcturus`를 적어넣어 자사의 게임을 간접적으로 광고한 점 등은 '역시 손노리답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만든다.
[김희정 기자 ato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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