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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게임내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게임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최근 이에 대한 찬반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나친 왜색과 잔혹한 묘사로 `쓰론 오브 다크니스`가 화제를 모았고, 소프트맥스의 차기작 `마그나카르타`는 선정적인 일러스트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게임내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지나친 폭력과 선정성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지도 않는 내용을 침소봉대하여 게임 개발자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국내 게임업계 실무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업계 실무자 3인의 말하는 `게임내 표현의 자유` 문제의 해법을 들어보자.


◆유형오 사장/게임브릿지 대표

컴퓨터 게임이 허용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게임을 도마대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게임이 어린이, 청소년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
게임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상품으로만 간주한다면 표현의 한계는 바로 어른(부모)들이 생각하는 상식수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과거에 영화, 비디오,만화 등이 그러했듯이 게임이 이제 다양한 연령층이 접하는 콘텐츠로 발전하면서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기준의 공감대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더구나 조직이나 사회의 가치를 위해 일방적으로 개인의 가치가 희생되는 시대도 아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제도적 여과장치가 있지만 이 기구가 모든 표현에 대해 계측장비처럼 엄밀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서는 음성적으로 모든 형태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도 겉으로는 막연한 기준이라도 설정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야한다고 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운용하고 있다.
'위선'의 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엄존하는 현실이다. 게임 역시 예외가 아닌 듯 싶다.
영악한 개발자나 마케터라면 이러한 모순을 잘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게임은 정도의 차이일뿐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획자나 개발자의 고민은 한마디로 어떻게 게이머를 중독시킬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란한 그래픽, 완벽한 프로그래밍은 기본이고 경쟁심리, 승부욕, 대리만족, 보상심리 등 여러 각도에서 게이머들을 몰입시키기위해 잠을 설치며 궁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자체는 게임이 진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문제는 게이머를 중독시키는 방법이나 차원 자체를 진화시키지 못하고 '자극의 양'만 늘려가는데 있다. 극도의 잔혹성을 내포하고 있는 '엽기'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남발되고 있는 현실은 대중문화 상품들이 정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극제가 어느 정도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게임회사가 개발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누리없이 독창적인 것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원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게임회사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단순히 '자극의 양'만을 늘려가는데 집착한다면 일시적인 홍보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게이머들의 염증을 불러일으켜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게임속의 표현을 둘러싼 논란은 결고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논란자체가 게임의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이 산업화되면서 국내 게임업계는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프레셔를 받고 있다.


◆장재영 대리/써니YNK 마케팅팀

인간은 '이성의 존재'임과 동시에 '감성의 존재'이기도 하다. 고도의 이성적 능력을 통해 거대한 인공물을 창조해내기도 하고 동시에 먼 미래 세계가 배경인 우주전쟁 게임에 광적으로 몰두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같은 존재성은 결국 '창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게임'이라는 분야는 '컴퓨터'라는 현대적인 산물과 결합, 지극히 이성적인 도구 속에 한없이 감성적인 요소가 담긴채 우리에게 다가선다.
이제 '게임'은 우리에게 시공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창조하고픈 새로운 세계로 존재한다. 그러나 창조성은 야생마와 같아 울타리를 치고 안장에 길들인다면 그 야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를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면 똑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 게임을 통해 얻는 창조성은 표현의 자유가 뒷받침 되어야만이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표현의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은 모두가 공유한 보편적 이성을 통해 문제의 해답을 직관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표현의 자유에 얽혀 있는 제도화 측면 그리고 문화적, 종교적 측면에서의 정치성으로 인해 문제의 핵심에서 다소 빗겨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특히 게임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창조적 상상력의 즐거움을 앞으로도 계속 누리기 위해서라도 지금 게임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더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보다 더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최영조 기획실장/시드나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임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에니메이션, 가요 등 대중 문화의 컨텐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문화를 산업으로써 인식하고 한국 대중 문화를 하나의 산업으로써 키워나가기 위한 시도들이 정책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비해서 한국의 대중 문화 산업은 놀랄 만큼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 산업에 있어서의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얼마나 그만의 개성있고 재미있으면서 보편적인 콘텐츠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창의성과 상상력이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방화`라고 해서 영화관에서 관객이 없어도 의무적으로 상영해야만 하는 천덕꾸러기같은 존재였다. 물론 관객도 거의 없었다. 돈 내고 한국 영화는 보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었다. 7,80년대의 극악한 정치 상황이 대중 문화에 재갈을 물려 놓았기 때문이다. 검열 기관이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캐릭터가 불온하니 바꾸라고 하고, 영화 만들어 놓으면 키스 장면이 너무 야하다고 짤라 버리고, 제목이 불손하다고 바꿔버리니, 제작자는 마음 놓고 영화 만들 수 없고 겨우 만들어 놓은 영화 역시 도저히 봐주기 힘든 졸작이 나와 버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영화와 같은 한국 대중 문화 콘텐츠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드렸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중학생 살인 사건`에서 보듯이, 이런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면 만만한 게임은 미디어의 십자 포화를 맞곤 한다.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중학생이 단지 게임을 즐겼다는 이유만으로 게임의 폭력성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 고등학생이 학내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역시 게임의 폭력성이 이슈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청소년도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폭력성이 더 문제 아니었을까?

쓰다 보니 길어졌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면 게임을 비롯한 대중 문화의 폭력성과 음란성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이유로 대중 문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으며, 또한 이를 논하기 이전에 그 사회의 건전성 자체를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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