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의 정의는 ‘모의체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모의체험을 할 수 있는 기계, 혹은 과정(모의 수술, 모의 로봇 조종 등)을 ‘시뮬레이터’라고 한다. 게임에서도 이 단어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원래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의 가상으로 설정해 모의실험을 한다는 장르였으나 이 경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관이나 미래 SF 세계관은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언제부턴가 게임에서의 시뮬레이션은 ‘황당함이 없는 한도 내에서 실질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가정 하의 가상현실 세계를 표현한 장르’로 정해졌다.
▶ 시뮬레이션의 발전사
시뮬레이션은 많은 데이터의 연산이 이루어지면서도 빠른 조작이 필요하지 않아 RPG와 함께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매니악한 장르라서 심취하지 않으면 플레이하기 힘든 장르이다. 시뮬레이션은 얼마 전 까지 미국의 마이크로 프로즈사에 있었던 ‘시드 마이어’라는 제작자가 유명한데 이 사람의 게임을 보면 웬만한 지식을 가지고는 만들 수 없는 게임이다는 말이 나오게 한다(필자는 지금도 이 사람이 게임 기획자인지 학자인지 의심스럽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게임에 가장 영향력이 강한 15인’에 속하며(울티마를 만든 ‘리차드 개리엇’과 스타 크래프트의 ‘빌 로퍼’도 여기 속한다) 이 사람이 만든 게임 타이틀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작품으로는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드 마이어의 게티스버그’, ‘마스터 오브 매직’, ‘마스터 오브 오리온’, ‘엑스콤 시리즈’ 등 여러 작품이 있다. 그 외에도 유명한 턴방식의 시뮬레이션은 뉴 월드 컴퓨팅의 ‘히어로스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가 있으며 이 작품은 RPG 마이트 앤 매직의 시나리오와 연관성이 있다. 히어로스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가장 큰 장점은 매니악한 부분이 적어 접하기가 매우 쉽다는 데에 있으니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싶은 초보 게이머는 이 작품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 3탄까지 나왔으며 한글화도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고에이의 ‘삼국지 시리즈’가 유명하다. 한글로도 컨버전 했으므로 국내 팬도 매우 많은데 사실 고에이는 칭기스칸과 노부나가를 그린 전략 시뮬레이션 작품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시스템 소프트에서 개발한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대전략 시리즈’가 비디오 게임기에선 알아주는 시뮬레이션이다(근데 이 게임, 16비트 게임기 시절엔 적 1턴에 걸리는 시간(데이터 처리량으로 인한 문제)이 몇 시간이 넘는데도 용케 만들어 팔 생각을 했다. 더 황당한 건 그걸 그래도 즐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시뮬레이션은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며 현재 유명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은 웨스트우드의 ‘듄 2’가 최초였다. 그 몇 년 후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가 만들어졌고 다시 웨스트우드의 ‘커맨드 & 퀀커 시리즈’로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현재 블리자드의 ‘스타 크래프트’와 웨스트우드의 ‘타이베리안 선’이 승부했으나 스타 크래프트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외에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은 많아 ‘다크 레인’이나 ‘토탈 애니힐레이션’, ‘던전 키퍼 시리즈’ 등도 있다.
그 외에도 경영 시뮬레이션인 ‘심시티 시리즈’와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도 시뮬레이션의 폭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다.
▶ 현재 시뮬레이션의 모습
현재 시뮬레이션은 매우 위험한 단계이다. 전부터 언급되어 오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단점인 인해전술이 스타 크래프트에 의해 타파되었으나 스타 크래프트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거의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이 이상 발전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다른 쟁쟁한 회사에서 안간힘을 쓰지만 다른 모습일뿐 현 단계에서 발전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스타 크래프트에서 워낙 많은 전략이 쓰여지고 있는데 다른 게임에선 그만큼의 전략도 쓰이지 못하는 포맷을 취하고 있기에 많은 게이머들이 스타 크래프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턴 방식의 시뮬레이션도 매너리즘이 강한 것은 매한가지여서 플레이어들은 뭔가 색다른 것을 찾고 싶어하지만 발매하는 제작사마다 이름과 그림만 다르지 플레이하면 식상한 시스템과 구성에 쉬이 질려버린다.
시뮬레이션이 다른 장르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재미가 무엇인지 언급해 보자면 시뮬레이션은 다른 게임이 주는 일반적인 재미를 주는 것 외에도 개성적인 두 가지 재미를 플레이어에게 맛보게 해준다. 시뮬레이션의 정의는 ‘가상현실 체험’인데 플레이어에 따라 ‘가상에 기준하는 현실의 체험’이냐, ‘현실에 기준하는 가상의 체험’이냐가 달라진다. 이 두 가지가 일단은 시뮬레이션이 주는 개성적인 재미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두 가지 재미를 모두 맛보기는 힘들다(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하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제 그것에 대해 말하겠다.
1) 가상에 기준 하는 현실의 시뮬레이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게임을 즐기다가 둘 중 하나, 혹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하나를 선택해서 결과를 알아보고 또, 나머지를 차례로 선택해 결과를 알아본다. 가상의 체험을 다 해보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A를 선택해 볼 수도 있고 B를 선택해 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 난다. 로드(LOAD)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선택한 것과는 무언가가 달라진다. 가상에 기준 하는 현실의 재미는 같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현실처럼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중에 세이브(SAVE)가 가능한 게임들은 이 재미를 부여한다. 세이브를 한 후 어떤 행동을 한 다음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을 본 후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시 세이브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다른 행동을 해볼 수 있다. RPG에서의 세이브와는 개념이 다르다. RPG에서는 현실성이라는 것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과 큰 차이가 있다. 애초에 시뮬레이션은 모의 실험에서 탄생한 것이므로 이쪽이 좀더 시뮬레이션의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2) 현실에 기준 하는 가상의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유저 가운데 현실성에 집착하는 게이머가 간혹 있다. 전략 시뮬레이션을 할 때 아끼는 병사가 죽어도 ‘전장에서 죽는 것은 당연하다.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며 로드를 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다.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마음이 있는 여성에게 딱지를 맞아도 로드를 하지 않는다. 현실에 따르면서 가상체험을 즐기는 것이다. 인생엔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론 너무 제한적이다. 육성, 연애 같은 겪기 쉬운(연애는 사람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다…) 경험부터 전략, 레이싱, 비행기 조종 같이 겪기 어려운 경험까지 실제와 가깝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시뮬레이션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좀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레이싱 게임에서 실제 레이싱처럼 사고가 목숨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유저가 후자고 운전하다가 가드 레일이나 다른 차에 박아도 보고 뒤로도 가보는, 현실 상에서 할 수 없는 플레이를 해보는 유저가 전자다.
▶ 내가 시뮬레이션을 만든다면
시뮬레이션은 현실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므로 다른 장르에 비해 과정과 결과가 명확해야 한다. 주먹구구식의 연산으론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없다. 말하자면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난이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수학처럼 식이 같으면 답이 같게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똑같은 부대가 똑같은 전략으로 싸워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시뮬레이션은 현실로 일어날 만한 일을 옮겨온 것이므로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한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선 언제 어디서 어떤 대답을 하면 성공한다는 공식 같은 게 현실에도 정해져 있지는 않지 않은가. 공식이 정해져 버리면 방법을 외우게 되고 그럼 금방 식상하게 된다. 현재 시뮬레이션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이런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시뮬레이션이 공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은 자료가 많이 필요한 게임이다. 제작자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걸 효과적으로 접목시킬 능력이 요구된다. 이것도 밸런스이다.
시뮬레이션은 매우 만들기 어려운 장르이다. 필자도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아직은 미완성) 정말 웬만한 지식과 경험으로 만들만한 장르가 아니란 것 알았다(당시 프로그래머와 두 번 다시 시뮬레이션은 안 만든다고 머리를 내저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국내 신생 개발업체든 이미 이름 있는 제작사든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장르가 시뮬레이션인데 뭐가 어렵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뮬레이션은 말했듯이 매너리즘이 강한 장르로 RPG와 함께 어느 정도 형태만 유지하면 게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게 문제다. RPG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명한 게임을 표절한 형태가 되고 있다. 물론 모방을 해서라도 경험을 쌓고 그래야 새로운 것도 만들 수가 있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 시뮬레이션 붐이 유지될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라는 게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 걱정된다. 필자가 다시 시뮬레이션을 만들 게 된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해보기야 하겠지만…, 전 보단 낫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뮬레이션은 제작자의 능력이(특히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가장 두드러지게 반영되는 장르이며 만들기도 어렵다.
<송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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