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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선 기자의 첫 인사와 게임 `천년` 취재기

 

▲꿈속에 나타난 땃따따

안녕하세요? 지난 2월말부터 IT조선 닷 컴에 합류한 박내선 입니다.

입사 후 3일 뒤 졸업식을 했습니다. 대학 때의 전공은 신문방송학으로 모교의 웹진 DEW(http://dew.ewha.ac.kr) 초대 편집장을 하기는 했지만, 웹이나 IT쪽은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다행히 맡고 있는 분야가 에듀테인먼드(Edutainment)라 나름대로 즐기며 일하고 있습니다. 게임방을 출입처 삼아 게임에 대한 취재도 하고, 취재를 빌미로 알록달록한 어린이 사이트들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재학시절 웹진 DEW편집장 일을 그만 두면서, 속으로 ‘절대로 인터넷과 관련된 일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습니다. 게시판에 몰려와 저질스런 글들을 도배질하고, 홈페이지를 해킹 하는 사람들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운명인지 IT조선 닷 컴의 초년병 기자로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거역하려 해도 인터넷이 대세이긴 한 모양입니다.

입사 후 며칠 동안은 ‘땃따따(www)’의 악몽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IT라는 분야가 너무 어려워 밤마다 꿈속에 여러 도메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적응이 될 만 하자 이번엔 온라인 게임 ‘천년’의 캐릭터들이 꿈속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입사 전, 스타크래프트도 못하던 제가 기사를 쓰기 위해 아직 상용화도 안 된 ‘천년’에 빠져들다니 직업정신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오늘은 첫 인사와 아울러 게임 천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삶이 진짜 삶인가

제가 ‘천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문 사회면을 통해서였습니다. 3월 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30대 PC방 주인 밤샘 PC게임 하다 숨져’제하의 기사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게임이었길래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을까’. 저는 숨진 30대가 즐겨 하던 ‘천년’이란 게임이 궁금해졌습니다. 또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복잡하게 얽어놓은 영화 ‘매트릭스’가 언뜻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취재에 나서 게임에 미친 사람들의 세계를 마치 추리소설 속의 탐정처럼 추적해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과 게임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실제 세계만을 의식했던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액토즈 소프트에서 개발한 ‘천년’은 4월 상용화를 앞두고 작년 12월 1일 베타테스트(게임 업체에서 상용화 전 버그를 잡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를 시작한 게임입니다. 아직 정식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소수 매니아들 사이에만 행해지던 게임이지요.

‘천년’의 배경은 고려시대입니다. 중국의 송나라, 일본의 막부, 고려의 무사들이 벌이는 무협이 게임을 이끌어 갑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지존이 되면 영원히 머물러 있는 기존 롤플레잉게임(RPG)과 달리 ‘지존의 몰락’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어느 무공을 극도로 수련하여 고수가 되었을지라도 다른 무공을 익힌 또 다른 고수에게 패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게임을 즐기다 숨진 PC방 주인은 비교적 건강하고, 평범한 중년이었습니다. 그는 IMF불황으로 오리고기 납품업을 그만두고, 1년 전부터 인터넷 게임방을 운영했는데,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작년 12월 ‘천년’을 알게 된 후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에 몰두해 왔다고 합니다. 평소 오후 3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해왔지만 이 게임에 빠진 뒤로는 귀가 시간이 오전 9~10시로 늦어지는 등 심한 중독증세를 보여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이란 가상의 세계에 푹 빠지게 했을까요.

취재를 하는 동안 PC방 주인에게 게임의 세계가 진짜세계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현실세계가 가짜세계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천년’의 진행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삶입니다.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이지요. 사냥을 해서 끼니를 해결하고 주막에 가서 술을 사 먹습니다. 돈이 생기면 염색약을 구입해 입고 있는 옷에 염색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탈색약이 있어 색깔을 진하게 혹은 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 참가자는 문파가 있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문파에 속한 이들끼리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삶의 권태가 느껴질 때쯤이면 ‘마족, 마물, 명물, 명인’ 등으로 구성된 괴물들이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완벽한 가상 현실을 제공하는 셈이지요. ‘천년’을 하는 사람들은 본명을 숨긴 채 또 다른 이름으로 게임에 빠져듭니다. 죽은 PC방 주인도 자신만이 아는 이름을 이용해 또 다른 자신으로 무림 생활을 해 왔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는 한 ‘천년’의 현실은 실제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을 구별할 수 없었던 해커 네오 처럼 말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천년’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애도의 글들이 쏟아졌습니다. ‘잔잔한 호수’라는 아이디의 한 사람은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를 접하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며 “나도 현실과 모호해지는 구분 때문에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PC방 주인의 나이는 37세. 동네 대본소에서 무협지를 보고자라던 세대입니다. 그 때는 무협지를 읽다 죽은 사람은 없었죠. 때로는 디지털화 된 세상이 두렵기도 합니다. 본래의 나와 가상 현실에서의 나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매트릭스’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입사 한지 한 달이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땃따따(www)의 잔상도, ‘천년’의 무사들도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들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건 아닌지 걱정될 뿐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IT현상을 취재하겠습니다.

박내선 기자 n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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