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아이렘사가 2002년 출시한 ‘절체절명도시’
그러나 초토화된 도시에서 속속 들려오는 생존자 소식은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니, 결코 대자연의 거만한 횡포 앞에서 순순히 무릎을 꿇고 포기하지 않는 인류의 도전정신을 검증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처럼 현실에서의 대재앙이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라면 게임 속 소재로 등장하는 대재앙은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게임 속 대재앙은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시련이기도 하며, 때로는 대재앙을 기회삼아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

-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삼국지11’의 일기토
우선 게임 속 재앙을 생각하면 ‘절체절명도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일본 아이렘사에서 PS2 버전으로 개발한 이 게임은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매됐지만,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당시 국내 시대상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하지만 대재앙에 맞선 게이머의 모습을 현실성 있게 반영해 주목을 받았다.
‘절체절명도시’는 지진으로 가라앉는 인공섬에서 생존을 탈출하는 1편과 수해로 온통 물에 잠긴 세상에서 육지를 찾아 떠나는 2편으로 구성됐다. 게임 속 주인공은 지진 혹은 수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과정에서도 재앙 뒤에 숨겨진 음모를 조사해야 하는 신문기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완수해야 한다.
이 게임에서는 유저와 재앙의 관계를 일방적 구조로 형성했다는 특징이 눈에 띈다. 유저는 자신에게 주어진 대재앙이라는 굴레를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
반면 게임 속에서 대재앙이 유저의 게임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탄탄한 마니아 유저 층을 확보한 ‘삼국지’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삼국지’ 시리즈는 새로운 버전이 출시될 때마다 등장 캐릭터의 변화된 외모와 진일보한 그래픽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이 게임이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고 고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적과 전투를 치러내 승리해야만 내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유저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만의 군대를 단련하고 성장시켜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군대라 할지라도 전투 과정에서 맞닥뜨린 기근ㆍ가뭄ㆍ산사태ㆍ해일ㆍ홍수 등의 자연재해는 군대의 사기는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전투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 ‘심시티3000’에 등장한 한국의 국보1호 숭례문
이처럼 ‘삼국지’에서의 대재앙도 유저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요인이 강하다. 그러나 ‘절체절명도시’의 경우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플레이에의 능력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는 유연성의 정도에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게임 속에서 유저 스스로가 재앙을 이용해 게임의 흐름을 전환하는 ‘능동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가 바로 대표적인 게임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게임은 3가지 종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플레이 할 수 있는데, 각 종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의 힘을 이용해 적에게 ‘대재앙’을 내릴 수 있도록 구성됐다.
플레이 도중 한번만 사용할 수 있는 ‘대재앙’은 수동적인 요소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필살무기'의 개념이며, 이 무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 여부가 게임의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대재앙을 스스로 발생하는 ‘방관형’ 구조의 게임으로는 너무나도 유명한 ‘심시티’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도시에 거주자를 위한 수도ㆍ전기ㆍ교통ㆍ교육 등의 사회적 인프라를 계획해야 하고, 시시각각 성장하는 도시의 규모에 맞춘 적절한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유저의 플레이 수준이 이러한 인프라 지원을 뒷받침 하지 못한다면 게임 속 도시 내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방관하게 되면 도시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구조다.
플레이어의 능력과 게임으로의 몰입 여부에 따라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도시의 대재앙을 초래한 방관자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게임 내에서 대재앙이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한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통제할 수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인지하고, 동시에 이를 점령하고 싶어하는 우리 인간들의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다.
[김남규 기자 ngk@chosun.com] [www.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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