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던젼키퍼'의 발매 후 피터 몰리뉴는 이전부터 나돌던 EA와의 불화설에 응답이라도 하듯 EA에서 독립, '라이온 헤드'라는 개발사를 설립하게 된다. 피터 몰리뉴는 이때에 이르러 그동안 진정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신(GOD)' 게임, '블랙 앤 화이트'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블랙 앤 화이트'의 컨셉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피터 몰리뉴의 신에 대한 게임관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블랙 앤 화이트'에 담고 싶어했던 그의 생각은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게이머의 직접적인 관여 없이도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객체를 만들어 내는 일. 둘째, 그러한 상황에서 세상을 관전하며 다스리는 위치의 신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세번째로 '신(GOD)에 맞는 인터페이스와 게이머에게 신과 같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세상을 이끌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런 '블랙 앤 화이트'의 게임 설정은 게이머들에게 알려졌고, E3쇼에서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명예를 안으며 피터 몰리뉴는 또 한번 게임계를 들썩이게 한다.
◆ 사람이 만들어 낸 神 '블랙 앤 화이트'
2001년, '블랙 앤 화이트'의 개발 발표 이후 정확히 3년 뒤, 피터 몰리뉴가 진정으로 원하던 '신(GOD)게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터 몰리뉴는 '블랙 앤 화이트' 개발 완료 직후, "초기 개발 기획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었다"는 말로 게임의 완성도를 일축함으로써 '블랙 앤 화이트'에 대한 그의 자신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블랙 앤 화이트'는 피터 몰리뉴의 게임관에 가장 첫번째 조건인 '스스로 움직이는 객체들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데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
계절과 낮, 밤의 차이를 갖는 시간 개념과 스스로 자라나는 초목,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각종 동물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개별적인 형태를 취하며 게임 세계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이런 세계에서 사는 주민들은 하나의 의지를 가진 객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목축을 하고, 어부가 되어 낚시를 하며, 또한 스스로 나무를 베어 집을 짖는 등 실제 살아있는 한 부락의 생활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게이머를 선/악의 확실한 구별이 없는 신의 존재로 두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게이머는 부족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던 상관하지 않는 방관자의 입장에 설 수도 있다. 각종 공격적인 마법을 일으키는 화신이 되어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복종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그들의 애환을 성의 있게 달래주며 주민들의 자발적인 신앙심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식의 플레이는 진정 주민들의 생활을 관전하는 위치의 '신'의 의미와는 조금 동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피터 몰리뉴는 게임이 게이머의 손을 조금이라도 덜 타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것이 바로 '크리쳐(Creature)'다. 크리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계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신이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게이머는 단지 신의 입장에서 어린 크리쳐에게 나무를 베고, 집을 짖고, 기적을 일으키는 등의 일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크리쳐는 게이머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부족민들을 이끌어 간다. 크리쳐는 화신으로 키워질 수도 있으며, 부족민들의 사랑을 받는 친구와 같이 키워질 수도 있다. 이렇게 성장한 크리쳐는 신의 역할을 대행하게 되며, 게이머는 비로소 피터 몰리뉴가 의도한 진정한 '신'의 존재인 관전자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피터 몰리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블랙 앤 화이트'에서 '신'적인 인터페이스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블랙 앤 화이트'의 인터페이스는 신을 대신하는 '손' 모양 하나가 전부이다.
게이머는 '손' 하나만을 가지고 복잡한 게임 조작을 모두 실행할 수 있다. 나무를 심고 베는 일부터,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일까지 모든 일이 바로 이 '손'에서 이뤄진다. 특히 손으로 마법진을 그려 기적을 일으키는 방식은 '신(GOD)' 게임에 가장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버튼을 눌러 마법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손을 휘둘러 기적을 일으키는 일. 물론 이런 방식이 어느 롤플레잉 게임에서 비슷하게 표현된 적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것들이 피터 몰리뉴가 진정 원하던 '신'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터페이스가 아니었을까.
◆ 새롭게 태어날 '神'을 기대하며
피터 몰리뉴가 의도하는 바들이 거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블랙 앤 화이트'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발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것은 피터 몰리뉴로부터 시작된 '신(GOD)'게임의 연장선에 놓여지기에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피터 몰리뉴는 자신의 게임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자신 스스로가 아닌 타인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피터 몰리뉴의 게임관은 '블랙 앤 화이트'에 이르러 확실히 한단계 진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터 몰리뉴는 이 시점에 만족하여 '신(GOD)'게임을 그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게이머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지는 '블랙 앤 화이트'의 확장팩이 될 수도 있고, 또다른 혁식적인 요소를 도입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또 다른 '신(GOD)'게임의 계보를 이을 만한 게임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현우 기자 hyun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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