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러한 불법복제판과 그와 관련된 로열티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 아니다. 과거부터 국내 게이머들의 상당수가 외국게임을 불법 복제해서 이용함으로써 로열티가 새나가는 것을 막는 더 나아가서는 국산게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편협한 사고방식이 낳은 궤변에 불구하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고 하루가 다르게 국가와 국가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기업들도 자국 시장만이 아닌 해외를 목표로 나아가면서 부와 명예를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게임 시장도 물론 이 대열에 동참한지 오래다.
남을 인정해야 자기 자신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앞서 외국게임을 이용함으로써 로열티가 새나가는 것을 방지한다는 말을 돌려보자. 국산 기술로 완성된 최상 품질의 게임이 외국으로 수출됐을 때, 불법복제판의 범람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면 이는 어찌 설명할 수 있는가. 정말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스탠드 얼론, 즉 패키지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는 전무하다. 그나마 간간히 국내 게임 배급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해외 우수 게임 배급 사업도 현재 사면초가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국내 자금이 해외로 새나가는걸 막기 위해 외국 게임을 불법으로 이용하는 사이,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은 전멸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게임도 닥치는 대로 복제해서 이용하는 현재 분위기에서 어떤 국내 게임 개발자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게임을 제작하려 들겠는가. 최근 시사YBM게임을 통해 국내 발매됐던 id소프트웨어의 '둠3'를 보자. 예상대로 이 게임은 국내에서 불법복제판의 범람으로 참담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시장에서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 발매 전부터 예견됐던 일이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래도 '둠3'인데 게이머들이 구입을 고려할 수도 있다며 기대 섞인 예측을 간간히 내놓기도 했다.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 관련 업계인들이 패키지 시장은 돈이 되기 어려운 시장으로 평론 한지는 오래 전 일이다. 그나마 게임 배급권을 확보하고 게임을 배급한다 쳐도 한글화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원본을 내놓는다고 해도 이미 게임은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되어 풀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을 제작하고 배급했던 업체들은 모두 돈이 되는 온라인게임 사업으로 발길을 돌리며 기형적인 게임 시장을 만들어 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게이머 스스로가 질 수 밖에 없다. 최근 게임 배급사들이 전 세계 시장을 목표로 다양한 판촉 및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게이머를 대상으로 대회를 열거나 사은 행사 및 미발표된 신작 게임을 선보이는 등의 게이머를 소비자, 즉 고객으로 보고 갖가지 행사를 아낌없이 열고 있다. 실제로 유럽 단일 시장 중 영국과 더불어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평가 받는 독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종류의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정품을 애용하는 인식이 자리잡은 덕에 독일에서는 무시 못할 정도의 게임 판매량이 종종 도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게임 배급사들은 독일 게이머들의 지갑을 열리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판촉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게임 타이틀의 현지화 작업은 말 할 것도 없는 사항. 게이머들 역시 배급사들의 아낌없는 지원 정책으로 다양한 양의 정보를 미리 습득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을 구입한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독일은 가장 뒤늦게 게임 인프라가 깔린 국가이면서도 유럽 시장을 정벌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게임배급사들 사이에서 통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유럽 최고의 게임쇼인 ECTS를 물리치고 독자적으로 게임쇼를 개최하는 쾌거도 이룩했다.
그렇다면 국내 시장을 돌아보자. 우수한 기술로 완성된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제작되고 있지만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국내 게이머의 대부분이 학생층에 집중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현지화 작업을 거치지 않은 게임 타이틀은 재미보다는 짜증과 한숨을 유발케 하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2003년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선정됐던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기사단' 역시 불법복제 및 게임 인프라 미비로 인해 영문판이 국내로 직수입 된 케이스다. 게임은 재미있지만 이 게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게이머는 손가락에 꼽힌다. 만약에 정품을 애용하는 분위기와 더불어 게임 판매 시장이 제대로 정착되어 있었더라면 한글화 작업도 기대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게이머들이 누차 언급하는 고가의 게임 타이틀 가격도 어느 정도 가감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신 게임에 대한 시연회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불법복제로 인해 국내 배급을 맡은 배급사는 원작권을 가지고 있는 외국 회사에 할 말이 없고 외국 회사도 어차피 돈이 되지 않는 시장에 자신들이 제작한 최신 게임을 우선적 그리고 독점적으로 선보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소스'가 전 세계 유수 국가를 제치고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일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한국 게이머들의 쉼 없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사랑이 낳은 결과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이 '둠3'가 국내에서 다운로드 받은 머릿수의 10%만 판매됐더라도 전 세계 배급을 맡은 액티비전이 국내 시장에 정식으로 지사를 설립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아시아 단일 시장에서 PC게임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라는 한국이었다. 그런 관계로 EA를 비롯한 아타리와 Ubi소프트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다국적 게임 배급사들이 국내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한국 시장이 거품이었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언제라도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언질을 남기고 있다. 이들 마저 떠난다면 한국은 온라인게임을 제외하고는 논할 것이 없는 기형적인 게임 시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외국게임이니 국산게임이니 가리지 말고 좋은 게임이라면 지금이라도 게임매장이나 대형 할인점에 가서 구입해보자. 그리고 남의 노력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고 즐기는 뿌듯함을 느껴보라. 당신의 변화가 국내 패키지 게임시장을 부활시킬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외국게임이라도 팔리기 시작하고 시장이 존재함을 외부에서 느낄 때 한글화 된 게임 그리고 국산게임도 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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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7)
[신준경, 스타일네트워크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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