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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게임개발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얼마전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짐들을 정리하던 아내가 2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모아놓으신 나의 학창시절의 성적표를 찾아냈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시던 어머니는 평생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무렵 나는 '마그나카르타~진홍의 성흔'의 스토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때문에 쓰러지시기 일주일전에 집에 2시간 정도 들려서 옷만 갈아입고 나선 것이 그만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들른지 일주일 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영영 의식을 찾지 못하셨다. 그 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등을 마주하니 불현듯 아들의 자취를 하나둘씩 정리해 보관해 놓으신 어머니의 정성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학창 시절 나는 인생의 목표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지만 뭐든지 관심이 가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철저하게 집중하는 매니아적인 성격이 있었다. 그 시기에 세가지 충격적인 컨텐츠를 접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나는 중학교때부터 읽기 시작하였던 '김용'으로 대표되는 무협소설이었고, 하나는 당시 비밀리에 들어오던 일본의 애니메이션, 마지막으로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울티마시리즈'로 대표되는 컴퓨터 게임이었다.

특히, 애니메이션과 컴퓨터게임은 직업으로서도 충분히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지 나의 앞으로의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편지(지금 읽어보면 굉장히 유치해서 차마 읽을 수 없는 수준이지만)를 통해 매우 결연한 의지로 어머니를 설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가 어머니에게 '울티마'니 '건담'이니 하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우습기도 하지만 편지 내용 안에서 확고한 무언가가 어머니를 움직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의 그 편지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셔서 담임선생님과 상담도 하셨던 모양이다.(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도대체 울티마와 건담이 뭡니까? 하고 물으시는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결국 어머니는 며칠 후 나를 부르시더니 '정말로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그 이상한 일(?)에 일생을 걸 것인지' 재차 물어 오셨다. 유학을 간다고 게임을 못만드는 것은 아닐테지만 왠지 그때는 그 때가 아니면 영원히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일에 내 인생을 걸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마도 그때 어머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이후의 나의 인생을 결정지었을 지도 모르겠다.

"연규야, 솔직히 나는 네가 말하는 RPG나 애니메이션이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진실된 노력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엄마는 잘 알순 없지만 누가 억지로 시키거나 단지 돈을 벌기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분명히 크게 성공하지 못하겠지. 어떤 것이던 네가 정말로 진실되게 노력할 뜻이 있다면 이 엄마는 너를 믿을 수 밖에 없구나."

사실 15년전 PC라고는 한반에 2-3명정도 밖에 없던 시절, 게임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진실된 노력은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게임개발자는 겉보기에 화려해 보일 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매우 지난하고 어려운 직업이다. 몇 년동안 휴일도 없이 한 프로젝트에 매달려야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프로젝트도 사람들간의 갈등으로 쉽게 깨지곤 한다. 수없이 맞닥드리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건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게임개발자의 뜻을 품은 후배들에게 글을 하나 써달라는 부탁을 받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 한마디였다.

게임개발기술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뀌는 것이라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라는 충고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점이 어려우니 어떻게 대비하라는 말도 실제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게임업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한국이란 사회에서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고 어떤 때에는 그 대가도 받지 못할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한 길을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진실되게 노력한다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믿는다. 단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주위에서 10년 가까이 무명개발자로 고생하다가 한순간 기적처럼 부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사람들의 공통점은 누가 뭐라하던 꾸준히 자신의 길을 지켜온 사람들이었다.

주변의 환경을 탓하지 마라. 자신의 운을 탓하지 마라.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바로 '진실된 노력'이다. 평범하지만 가장 확실한 성공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0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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