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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천재적 전략가 롬멜의 패배가 주는 교훈/위정현 중앙대 교수"

 

비즈니스에서도 전쟁에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의 지름길이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병법가였던 손무(孫武)는 '손자'(孫子)의 모공편(謀攻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아니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그리고 적의 실정은 모른 채 아군의 실정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또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실정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만 번에 한 번도 이길 가망이 없다."

손무의 이런 당위론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지기'(知己)와 '지피'(知彼)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지기'(知己)는 되는데 '지피'(知彼)가 되지 않거나 '지피'(知彼)는 되는데 '지기'(知己)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지피'(知彼)가 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더 치명적일 것이다 (눈을 감고 적진에 돌격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지피'(知彼)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잘 정비된 첩보망, 정보의 분석 능력, 분석된 정보에 대한 판단력 등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와 같은 필수적인 조건의 결여로 '지피'(知彼)에 실패하고, 그 결과 참담한 패배를 맛본 지휘관이 독일군 아프리카 기갑군단의 지휘관 롬멜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 불리며 연합군에 맞서 불패의 신화를 남겼던 롬멜은 '지피'(知彼)에 실패해 영국군 몽고메리 장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하게 된다.

1942년 10월까지 롬멜이 이끄는 독일군 아프리카 기갑군단은 영국 제8군에 맞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이에 영국군은 몽고메리 장군을 보내 롬멜과의 마지막 대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롬멜은 치명적인 문제를 안게 된다. 그것은 적과의 정보전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영국군은 오랜 준비 작업 끝에 1941년 런던 근교의 브레츨리 공원에서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Enigma)의 다양한 코드를 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42년 6월 초에 다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며칠이 걸린 그 때까지와는 달리 단지 몇 시간 안에 독일 무선 통신기를 해독할 수 있었다. 몽고메리는 처음부터 이 무기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고 영국 장교 중에서는 최초로 그의 참모 안에 자료를 평가하는 부서를 설립했다.

같은 시각 롬멜은 그의 중요한 두 정보 기관을 폭격으로 잃었다. 무선 도청 탐지 부대와 규칙적으로 카이로에서 미국으로 소식을 전해주던 어느 미국 외교관 모두를 잃었던 것이다. 롬멜은 그야말로 암중모색의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주저하던 롬멜은 마침내 공격 재개를 결정했지만 대규모의 공격을 시작하기에는 보급품이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부족한 연료는 공격 초기의 대대적인 출동을 불가능하게 했다. 북아프리카의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의 물자 보급을 담당하는 이탈리아의 총사령관은 5개의 호송 선단을 편성했다. 그들은 20척의 배로 2주안에 각각의 물자 보급품을 운반해야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르고 있던 것은 바로 브레츨리 공원의 비밀 정보국이 1년 전부터 이탈리아 해군 코드 C38m의 암호를 해독하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써 영국군은 독일군 선박의 선적과 출항, 그리고 목표 항구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되었다.

몽고메리 중장은 롬멜의 새로운 공격 계획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선 통신을 통해서 기갑 사단의 부족한 물자 보급 계획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긴급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도록 공군의 전투 폭격기와 해군의 U-보트를 활용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출항한 선박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폭격을 당해 침몰했다. 그와 동시에, 절박한 심정으로 물자 보급품만을 기다리고 있던 롬멜은 물자를 실은 선박들이 차례대로 지중해에 침몰하는 것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Mythos Rommel] 中에서).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앨 알라마인 전투에서 롬멜은 패배했고 독일군은 아프리카에서 밀려났다. 왜 사막전의 신화를 창조했던 롬멜이 패배했던가. 그것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망의 괴멸과 그로 인한 '지피'(知彼)의 부재이다. 영국군은 롬멜 전차군단의 움직임과 보급을 샅샅이 꿰뚫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영국군의 움직임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은 천재적 전략가였던 롬멜과 동일한 우를 범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의 게임사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미르의 전설2'가 일본에서는 '라그나로크' 등 한국산 온라인게임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해외 퍼블리셔들은 앞을 다투어 한국 게임을 수입하려 한다. 정부도, 언론도 한국 게임산업의 장미빛 전망을 제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미빛 전망은 정보 수집과 과학적 분석을 수반하지 않으면 '장미빛 환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중국과 일본의 퍼블리셔들은 한국 게임과 개발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분석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국 게임사는 상대의 정보 수집에 적극적이지 않다. 해외 퍼블리셔들은 개발력을 갖추지 못해 한국 게임개발사의 교섭력 (바게닝 파워) 에 밀리고 있고 따라서 전적으로 업데이트는 한국 개발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현지 사용자의 요구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해외 퍼블리셔들은 개발력을 가지지 못한 퍼블리셔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어 개발력 획득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샨다(盛大) 가 일본의 Bothtec을 사들이고 한국 게임사에 대한 M&A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 게임사들은 정작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또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려고 들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게임사들은 게임의 로열티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마케팅은 거의 퍼블리셔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이 방식은 직접진출의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 정작 중요한 '적진'(현지 시장과 사용자)에 관한 정보가 차단되고 만다. 한국 기업이 장기적으로 현지 시장에 맞는 게임 개발과 패치를 할 수 있는 마케팅이나 사용자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 될 것이다.

경쟁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 미국의 블리저드 같은 거대 게임사들과 세가, 코나미 등 일본 게임사들이 한국 및 해외 온라인 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게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블리저드는 올해 초 WoW(World of Warcraft)를, 마이크로소프트는 '미시카'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한국 온라인게임사는 자신의 기술력만을 무기로 상대 시장과 경쟁 기업에 대한 정보도 없이 무모한 전투에 나서야 하는가.

천재적 전략가였던 롬멜의 패배가 주는 교훈은 아직 한국 온라인게임의 현실속에 살아있다. 한국 기업에 '잘 정비된 첩보망, 정보의 분석 능력, 분석된 정보에 대한 판단력'은 있는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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