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괴: 스타레일’은 기본적으로 끝나지 않는 여정을 표방하는 게임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은하열차는 열차의 동력으로 사용될 개척 에너지를 획득하기 위해 이전에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고, 개척자는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동료와 사건을 만난다.
하지만 서울 잠실에 정착한 은하열차는 조금 다르다. 새로운 목적지를 안내하는 대신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7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인근 이머시브 플랫폼 딥(DEEP)에서 열리는 ‘붕괴: 스타레일 - 별 사이를 걷는 회고록’은 약 450평 규모로 조성된 국내 첫 ‘붕괴: 스타레일’ 몰입형 체험 전시다. 출시 이후 3년간 개척자가 방문한 행성과 그곳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간과 영상, 체험 콘텐츠로 다시 엮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은하열차다. 단순히 커다란 조형물을 세워둔 포토존이라기보다는 현실과 게임 속 세계를 구분하는 일종의 승강장에 가깝다. 열차를 통과해 안쪽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부터 관람객은 전시를 구경하는 손님이 아니라 한동안 멈춰 있던 개척의 기록을 다시 펼쳐보는 승객이 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전시가 게임의 내용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부분이다. 대신 지역을 상징하는 물건과 장면을 눈앞에 놓고 관람객이 스스로 기억을 꺼내도록 유도한다.
야릴로-VI 구역은 벨로보그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꾸며졌다. 처음 설원에 발을 들였던 순간이나 상층부와 하층부 사이를 오갔던 기억은 의상과 무기, 캐릭터 설정 자료를 마주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되살아난다. 이야기 속에서 직접 박물관을 운영했던 지역답게, 시간이 흐른 뒤 야릴로-VI 자체가 하나의 전시물이 됐다는 구성도 제법 잘 어울린다.
이어지는 선주 나부는 전시 영역이 다른 곳에 비해 작지만 인물과 사건의 기록을 꽤 조밀하게 쌓아 놓고 있었다. 수명이 다른 종족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반복된 이별과 집착, 운기군과 스텔라론 헌터가 얽혔던 사건들이 설정 자료와 주요 장면을 통해 압축적으로 정리된다.
페나코니에 이르면 분위기는 다시 크게 달라진다. 황금빛 시계소년상과 반디의 비밀기지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게임 속 페나코니가 화려한 꿈의 도시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구조였다면 종말 임무를 통해 다시 페나코니에 왔던 것처럼 전시장에서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로 그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는 지나쳤던 문구나 장식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머무는 이유다.
비교적 최근에 지나온 앰포리어스와 현재 이야기가 진행 중인 이상 낙원은 조금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야릴로-VI와 페나코니가 오래된 사진첩처럼 느껴진다면, 이곳의 기억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여행 일지에 가깝다. 13반신의 설정과 창세의 소용돌이,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의 2차원 시티와 어뮤즈 플라자 등이 이어지면서 전시는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에 현재 좌표를 찍는다.




전시의 중심을 꼽으라면 대규모 이머시브 영상관이다.
270도 스크린을 활용한 영상에서는 지난 3년간 방문한 지역과 주요 장면들이 음악에 맞춰 연달아 펼쳐진다. 개별 장면을 자세하게 복습하기보다는 수십 시간에 걸쳐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나의 감정과 흐름으로 압축한 구성에 가깝다. 화면 가장자리까지 영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기보다 고개를 돌려가며 자신이 기억하는 순간을 찾아보게 된다.
공간 곳곳에 배치된 체험 요소도 관람객이 사진만 찍고 지나가지 않도록 붙잡는다. 지역별로 숨겨진 QR코드를 찾고 퀴즈를 풀어 자신만의 앨범과 게임 내 보상을 완성하는 콘텐츠가 마련됐으며 이상 낙원에서는 직접 머쉬루미를 그려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우주정거장 헤르타의 보관 캐빈에 있는 전시실을 모티브로 하는 공간은 방문객의 시선과 움직임을 추적하여 활성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지금까지 개척자가 개방한 모든 운명의 길과 그에 대응하는 무기들을 인터랙티브 연출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사실 '별 사이를 걷는 회고록'은 게임을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 '붕괴: 스타레일'의 방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입문용 전시는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이름과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잘 알고 있을수록 작은 물건 하나와 짧은 영상이 더 많은 의미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게임을 즐겨온 개척자에게는 설명이 많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며 정답을 정해주기보다 각자 플레이하며 인상 깊었던 순간을 떠올릴 여백을 남겨둔다.
은하열차는 계속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느낀 바가 있는 개척자들은 잠시 객실에서 내려 자신이 어떤 별을 지나 이곳까지 왔는지 그 여정을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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