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대전컨벤션센터 제2전시장에서 202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의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결승전이 진행됐다.
결승전의 대진은 LCK 1번 시드 한화생명 이스포츠(HLE)와 LPL 1번 시드 빌리빌리 게이밍(BLG)의 리매치였다. 두 팀은 앞서 상위 브래킷 결승에서 한 차례 맞붙은 바 있으며, 당시에는 BLG가 HLE를 세트 스코어 3대1로 제압하고 결승 무대에 선착했지만 HLE는 하위 브래킷 결승으로 밀려난 뒤 라이언(LYON)을 상대로 마지막 생존전에서 살아남았고 다시 한 번 BLG와 우승컵을 두고 맞붙을 기회를 잡았다.
HLE 입장에서는 이번 결승이 복수전이자 LCK의 자존심이 걸린 마지막 무대다. 티원(T1)이 하위 브래킷에서 탈락한 뒤 HLE는 LCK의 유일한 생존팀으로 남았고 상위 브래킷 결승에서 드러난 비원딜 대응과 아쉬운 교전 합의 한계를 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결승에 올랐다.
반면 BLG는 2026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 우승에 이어 MSI에서도 결승에 오르며 올해 국제대회 최강팀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상위 브래킷 결승에서는 쉔, 카시오페아, 탈리야, 오리아나 등 핵심 카드로 HLE의 장점을 정면에서 차단했고 LPL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교전 설계 능력으로 HLE의 크랙 플레이 시도를 번번이 무력화했다.
한 번 이겼던 상대를 다시 만나는 만큼 BLG는 자신감을 가지고 결승전에 나설 수 있지만, HLE 역시 패배를 통해 얻은 해답을 준비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몇 번이고 하위팀에게 의표를 찔리는 모습이 나오면서 BLG의 경기력 또한 결코 완벽하지는 않기 떄문에 승부의 향방은 결국 당일 결승 시리즈에서 얼마나 덜 실수하고 정교하게 플레이하는지와 같은 디테일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1세트는 빈(천쩌빈)의 저점과 조합의 한계가 끝내 BLG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초반 소규모 난전과 오브젝트 교전에서 최대한 이득을 당겨야 하는 BLG였지만 카나비(서진혁)의 리 신이 극초반 연이은 탑 갱킹을 성공시키면서 암베사를 잡아먹는 상성이어야 할 레넥톤이 완전히 썩어버렸고, 빈은 아이템 빌드마저 교전을 고려한 유틸리티 및 세미 탱킹 아이템이 아니라 스플릿과 딜링 특화 아이템을 가는 솔로랭크스러운 오판을 내리면서 게임 내에서 존재감이 지워져버렸다.
팀 단위의 과투자로 제우스(최우졔)를 잡아내거나 탑을 먼저 미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HLE가 4:5로 탑을 잘 수성하는 사이에 구마유시(이민형)의 케이틀린이 홀로 우직하게 미드 라인을 밀어서 억제기 포탑까지 뚫는 대참사가 벌어졌고 치명타 코어 아이템이 엄청나게 빠르게 올라가면서 치명타 헤드샷 한발에 딜러진의 뼈와 사이 분리되는 딜이 나오게 됐다.
특히 BLG는 능동적인 교전 개시가 어려운 반면 HLE는 공개 처형, 용의 분노, 충격파와 같이 원거리에서 급작스럽게 던질 수 있는 승부수 카드가 많았고, 실제로 바이퍼(박도현)의 이즈리얼이 배달 또는 납치되어 죽거나 빅토르가 레이저를 뿌리러 살짝 앞으로 나갔다가 헤드샷 한방에 체력이 전부 갈리면서 교전을 대패하는 그림이 강제되면서 43분만에 HLE가 세트승을 선취한다.


BLG가 지난 승자조 결승 1세트에서 재미를 봤던 자르반-쉔-카시오페아 조합을 가져왔고 명불허전의 완성도를 보여주며 2세트를 압도했다.
1세트와는 반대로 슌(펑리쉰)이 무자비하게 라인을 찌르고 다니며 BLG의 전 라인이 이득을 굴렸고 체급 차이로 인해 키아나와 카밀의 노림수가 전부 틀어막히면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그나마 직스가 비대칭전력 수준으로 잘 성장했고 무자비한 포킹을 쏟아내며 대치전 상황에서의 균형을 맞췄지만 X분, 슌에게 물린 제카(김건우)의 아리를 살리기 위해 팀적으로 포커싱이 위로 쏠리면서 딱 한번 직스가 BLG 본대의 화망에 노출됐고 직스가 사망하면서 HLE가 수성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셔 남작과 장로 드래곤 버프를 모두 두른 BLG는 거칠 것이 없었고 32분만에 넥서스를 해체하면서 경기를 1:1로 되돌린다.


3세트에서는 카나비의 안일한 카운터 정글링이 극초반부터 HLE의 패배를 결정지어버렸다.
HLE와 BLG가 중앙을 기준으로 라인을 위와 아래로 갈라먹고 정글링 동선을 준비했지만 카나비가 레드 캠프 늑대-블루 캠프 칼날부리-블루 캠프 붉은 덩굴 정령이라는 경로를 읽히면서 붉은 덩굴 정령 수풀에서 대기하고 있던 온(러원쥔)에게 CC콤보를 얻어맞았고 그대로 슌에게 마무리당한다.
안그래도 정글링이 느린 신 짜오는 최소한의 갱킹을 위한 스킬셋을 갖추기 전까지 다른 라인에 개입할 수 없게 됐고 이 과정에서 제우스의 올라프가 연이은 갱킹으로 순간이동을 소모하면서 연속으로 죽는 죽텔죽이 터져 탑라인 또한 완전히 말려버렸다.
심지어 어떻게든 바텀의 리드를 바탕으로 드래곤을 먼저 가져가며 운영의 여지를 챙겨보려는 HLE였지만 이마저도 슌의 녹턴이 피해망상으로 날아와 스틸에 성공하고 신 짜오를 죽이면서 플랜 B가 사라져버렸고 2세트와 마찬가지로 BLG의 템포 플레이에 내내 두들겨 맞다가 패배하며 매치 포인트에 몰리게 됐다.


BLG의 크산테 선픽을 보고 탱커를 잡아먹는 픽인 트런들이 등장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슌의 시그니처이자 트런들의 하드 카운터인 킨드레드가 나왔지만 HLE도 제우스의 스웨인을 조커픽으로 다시 꺼내는 강수를 뒀고 이것이 결정적인 승부수가 됐다.
HLE의 바텀은 애쉬-세라핀으로 확실하게 라인전을 장악하는 동시에 제우스는 슌이나 온의 갱킹을 허용하지 않아 팀적으로 확실한 이득을 가져왔고, 카나비의 인내심 있는 매복 플레이와 제우스의 신들린 낚시질이 제대로 먹혀들어가면서 빈, 슌, 온이 전부 제우스한테 잡아먹히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BLG의 조합은 슌이 스택을 잘 쌓지 못하면 전부 팔이 짧아 스웨인의 궁극기 사정권에 들어가 포션이 되어버리는 만큼 슌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제우스의 슈퍼 플레이로 인해 이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고 제카와 구마유시가 유일하게 변수가 될 수 있는 슌을 집중 마크하면서 골드 카드와 마법의 수정화살로 궁극기를 뽑아먹고 죽이는 좋은 연계로 한타를 연전연승한다.
그나마 5:5 교전에서 바이퍼의 멜에게 카이팅을 당하면서 제압킬이 다수 넘어가는 사고가 있었지만 그 다음 벌어진 내셔 남작 둥지 앞 교전에서 나이트(줘딩)의 탈리야가 실수로 스웨인을 본대로 끌어오는 치명적인 실수가 나왔고 적진 한가운데 난입한 스웨인이 한타를 엎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대승과 함께 내셔 남작까지 HLE에게 넘어갔다.
이후 궁극기 발동 직후 폭발적인 이동속도를 제공하여 스웨인과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바람 드래곤의 영혼이 HLE에게 넘어갔고 딜라이트(유환중)이 멜과의 앙코르 심리전을 성공하여 상대 진영을 전부 갈라먹었고 지체 없이 BLG의 넥서스를 터뜨리며 HLE가 2경기 연속 실버 스크랩스를 울렸다.


남은 티어픽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정글러인 바이를 BLG가 선픽했지만 전반적인 후반 밸류가 좋은 픽을 HLE가 다수 가져갔고 제카의 사일러스로 인해 오히려 후픽 카운터를 내밀 수 있는 BLG에서 밸류픽이 제한되는 밴픽 구도가 나왔다.
4세트에 이어 5세트에서도 제우스의 조커픽은 빛났다. 아트록스가 먼저 나온 구도에서 대부분의 탱커는 라인전도 열세일 뿐더러 대규모 교전에서 아트록스의 체력을 채워주는 포션 취급을 받기 때문에 쉽게 나오기 힘들지만 HLE는 과감하게 문도 박사를 골라 극한의 후반 밸류를 챙겼다.
심지어 HLE는 밸류픽을 들고도 라인전을 이기는 괴력을 보여줬다. 1레벨부터 2:2 승부수를 띄운 구마유시와 딜라이트가 리드를 가져가면서 드래곤 스택을 편하게 쌓았고 하필이면 유지력이 매우 출중한 상체를 들고 있는 HLE게 웃어주는 화학공학 드래곤이 뜨면서 BLG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려버렸다.
빈은 일찌감치 치유력 감소 아이템까지 두르면서 제우스를 잡아내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전 라인 우위로 인해 급할게 없었던 제우스는 느긋하게 성장하는 것에 집중했고 빠르게 16레벨에 도달하면서 대화가 성립하지 않게 됐다.
어떻게든 구마유시의 유나라가 빈의 아트록스를 잡아내기만 하면 문도와 판테온 그리고 사일러스의 괴물 같은 전투지속력을 BLG는 감당할 수 없었고, 35분경 조급함에 내셔 남작을 먼저 치는 BLG의 무리수를 카나비의 스틸과 함꼐 응징하며 HLE가 3:0 교환을 이끌어냈다.
공성 과정에서 구마유시가 죽긴 했지만 살아남은 나이트와 온의 화력으로는 문도를 절대 잡을 수 없었고 바론 버프를 두른 문도가 넥서스를 박치기로 부수면서 HLE가 창단 첫 MSI 우승을 기록하고 파이널 MVP로는 제우스가 선정됐다.


2026 MSI 결승전은 HLE가 왜 이 무대의 마지막 승자가 될 자격이 있었는지를 증명한 풀세트 혈전이었다. HLE는 2세트와 3세트에서는 BLG 특유의 초반 템포와 세트 플레이에 흔들리며 순식간에 매치 포인트까지 몰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양대인 감독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완성도의 조합, 슌의 과감한 개입 능력, 온의 초반 설계는 상위 브래킷 결승에서 HLE를 무너뜨렸던 BLG의 강점에 또 다시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했다.
하지만 HLE는 끝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번 결승의 가장 큰 차이는 패배한 세트 이후 답을 찾아내는 속도였다. 당시 문제가 됐던 비원딜 대응, 부족한 교전력, BLG의 카운터 밴픽을 결승에서는 밸류 확보를 중시하고 플랜 B가 확실한 조합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극복했다. 단순하게 '더 잘 싸워야 한다'는 어려운 주문보다는 '쉽고 확실한 답안'을 만들어 상대가 급해질 때까지 기다렸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을 치는 방식으로 우승을 완성한 것이다.
이로써 HLE는 창단 첫 MSI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 번의 패배가 있었지만 다시 BLG를 만났고 승패패승승의 풀세트 접전 끝에 전반기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LCK의 마지막 생존팀으로 남아 있던 HLE는 한국 리그의 자존심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으로 지난해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에 이어 새로운 국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2026년 상반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주인공이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HLE의 도전은 MSI 우승에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이미 '이스포츠 월드컵(EWC)' 출전권까지 확보한 HLE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또 다른 국제 무대에서도 LCK 대표 팀 중 하나로 다시 한 번 국제전 우승에 도전하게 되며. MSI에서 보여준 위기 극복 능력과 풀세트 승부 집중력이 EWC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HLE의 2026년 국제대회 행보에 많은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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