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전 산업군이 격변하는 가운데, 게임 업계 역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AI 기술 트렌드 속에서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진짜 핵심 자산은 무엇일까. 넥슨은 그 해답으로 데이터를 제시했다.

넥슨이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가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판교 넥슨 사옥에서 개최됐다. 게임 개발과 서비스, AI, 데이터,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노하우가 공유되는 가운데, 넥슨은 AI 시대를 대비한 데이터 전략과 차세대 데이터 플랫폼 구축 방향을 공개했다.
17일 진행된 대담 세션 'AI 시대, 넥슨은 데이터로 무엇을 준비하는가'에서는 TRS 인사이트의 한운희 대표가 모더레이터로 나섰으며, 넥슨코리아의 류청훈 본부장, 배준영 본부장, 그리고 스노우플레이크 코리아의 임진식 SE 총괄 디렉터가 패널로 참여해 AI 시대의 데이터 경쟁력과 넥슨의 데이터 플랫폼 '모노레이크(Monolake)'의 진화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좌측부터 한운희 TRS INSIGHT 대표(모더레이터), 류청훈 본부장, 배준영 본부장, 임진식 스노우플레이크 SE 총괄
대담의 첫 포문은 'AI 시대에 왜 다시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최근 거대언어모델(LLM) 중심의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많은 이들이 AI 모델 자체에 주목하지만 현업에서의 체감은 달랐다.
넥슨코리아 류청훈 본부장은 가트너의 조사를 인용하며 기업의 약 57%는 자사의 데이터가 아직 AI를 적용할 수 있는 AI-Ready 상태가 아니라며 현 상황을 짚었다. AI 모델은 급격히 발전하며 범용화(Commodity)되고 있지만, 정작 이를 학습시키고 활용할 기업 내부 데이터의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류 본부장은 넥슨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모델의 교체가 아니라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온톨로지(Ontology)에 대한 정비였다고 밝히며, 우리 게임과 서비스의 맥락이 담긴 데이터는 결코 외부 기술로 대체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넥슨코리아 배준영 본부장 역시 외부 AI 기술 환경의 불안정성을 언급했다. 배 본부장은 최근 LLM 버전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문을 닫는 사례를 목격했다. 넥슨 내부 프로젝트 역시 외부 모델 변화에 따라 중단되거나 영향을 받는 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외부에서 우리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결국 '데이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AX 시대에 맞춰 맥락을 담아내는 '컨텍스트 데이터'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담의 핵심 화두는 단연 넥슨의 전사 데이터 플랫폼인 '모노레이크(Monolake)'였다. 류청훈 본부장은 모노레이크를 넥슨의 모든 게임 데이터가 하나로 모여 있는 호수라고 정의했다. 넥슨이 데이터 사일로를 타파하고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분산된 수많은 DB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하겠다는 경영진과 조직의 강력한 결단이 수반됐으며, 표준화된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통합 거버넌스를 통해 모노레이크를 체계적으로 안착시켰다. 또, 플랫폼 구축 이후 비용 25% 절감, 성능 17배 이상 향상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숫자로 입증하며 전사적인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스노우플레이크 임진식 디렉터는 보통의 기업들은 실무 팀 단위에서 시도하다 지치는 경우가 많은데, 넥슨은 리더십 전체가 강력한 비전을 공유하며 조직 내부를 설득하는 변화 관리까지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데이터 민주화를 통해 넥슨 내부 조직에는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배준영 본부장은 개발자가 아닌 비엔지니어(Non-Engineer) 조직, 특히 운영 및 CS 조직의 혁신 사례를 꼽았다.
넥슨은 모노레이크 구축 전부터 비엔지니어 조직도 쿼리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쿼리 빌더' 등 사내 도구를 제공하며 데이터 리터러시를 높여왔다. 모노레이크가 완성되자 시너지는 폭발했다. 각 도메인의 전문가인 운영진이 필요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직접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 본부장은 고객 문의에 대한 응답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면서 유저 커뮤니티에서 '넥슨이 일하기 시작했다'는 피드백이 나올 정도로 유저들이 먼저 변화를 체감했다고 전하며, 데이터 플랫폼 혁신이 실질적인 서비스 성과로 이어진 생생한 사례를 공유했다.
스노우플레이크 임진식 디렉터는 전사 확산 과정에서 기술 장벽을 허문 결정적 무기로 '코텍스 코드(Cortex Code)' 솔루션을 언급했다. 현업 담당자들은 데이터 분석 니즈가 있어도 전문적인 SQL 문장을 구사하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임 디렉터는 챗GPT의 코덱스나 클로드의 코드 생성 기능처럼, 자연어로 쉽게 코딩하고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코텍스 코드 솔루션을 사내 교육에 적극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을 제공하자 현업 담당자들이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방식으로 모노레이크를 다루기 시작했다며, 기술 교육과 솔루션의 결합이 사내 데이터 활용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현업의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은 기업 입장에서는 또 다른 숙제를 낳는다. 비전문가들이 수많은 쿼리를 제한 없이 실행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하거나 엉뚱한 쿼리가 남발되어 비용 폭탄이나 시스템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넥슨은 이 문제를 영리한 '거버넌스 통제 및 선순환 구조'로 해결했다. 류청훈 본부장은 "데이터의 출처(데이터 리니지)와 이동 경로를 담은 메타데이터를 철저히 관리하고, 권한이 검증된 직원만 접근할 수 있는 통제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임 디렉터는 넥슨은 데이터 레이크 구축과 동시에 강력한 통제 및 선순환 모니터링 체계를 함께 작동시켰기 때문에 대규모 비용 리스크 없이 전사적인 '데이터 민주화'와 'AX 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라며 넥슨의 체계적인 어프로치가 가진 가치를 재차 강조했다.
넥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노레이크 2.0'은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AI 경험 전환(AX)'을 목표로 한다. 류 본부장은 이를 위해 자유로운 접근성(Accessibility), 의미의 표준화 및 신뢰성(Trust), 연결 관계와 맥락 해석(Context)이라는 3대 필수 조건을 정립했다.
이러한 맥락을 확보하기 위해 넥슨은 현업 베테랑들의 암묵지를 끌어내는 '온톨로지 팩토리(Ontology Factory)'를 가동했다. 기술 조직과 현업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현장의 노하우를 수집하고 AI 모델에 이식(쉬핑)하며, 현업의 검증을 거쳐 오류를 보정하는 '피드백 루프'를 정착시켰다.
이 성과로 탄생한 AI 서치는 실무자가 자연어로 질문을 던지면 AI가 실시간으로 분석 결과를 도출해 주는 서비스다. 배준영 본부장은"날씨와 같은 외부 데이터가 게임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등, 복잡한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신뢰도 높은 레포트를 얻게 되자 현업의 업무 속도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배준영 본부장은 개발 조직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로그 표준화 작업'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데이터 사일로를 깨고 모노레이크를 구축하는 과정은 전사적으로 흩어져 있던 데이터 정의를 하나로 맞추는 고통스러운 표준화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 고통스러운 표준화 과정 자체가 지금의 AX 전환을 가능케 한 가장 큰 자산이자 밑거름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배 본부장은 과거에는 데이터에 접근조차 어려웠던 부서들이 이제는 표준화된 데이터를 스스로 활용하며 창의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며, 데이터 통합은 단순히 기술적인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데이터를 만지는 전사 임직원의 일하는 방식과 마인드셋을 대전환하는 과정이라며 대담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대담은 화려한 AI 기술 자체보다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 인프라와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넥슨이 AI 시대를 대비해 어떤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지 보여준 자리였다. 특히 AI 경쟁력의 핵심이 모델이 아닌 데이터와 이를 다루는 개인과 조직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며 많은 개발자와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김규리 기자 gamemk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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