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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6] "게임 시스템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림월드' 제작자의 게임 철학

 

 
넥슨이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가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판교 넥슨 사옥에서 개최됐다. 다양한 개발 노하우와 기술 세션이 이어진 가운데, 둘째 날에는 조금 특별한 대담 세션이 마련됐다.
 
17일 진행된 게임기획 세션에서는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 '림월드(RimWorld)'의 제작자 타이난 실베스터(Tynan Sylvester)와 게임 비평가이자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모더레이터가 '내가 만드는 시스템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림월드 이데올로기가 던지는 질문'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이번 세션은 특정 기술이나 개발 방법론을 소개하는 강연이 아니라,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개발자가 시스템을 설계할 때 어떤 가치 판단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림월드'는 유저들 사이에서 '전쟁 범죄 시뮬레이터', '장기 적출 게임'이라는 악명 높은 별명으로 불리곤 한다. 이경혁 편집장이 이러한 유저들의 잔혹한 플레이 방식이 개발자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냐고 묻자, 타이난 디렉터는 이를 게임이라는 매체 고유의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수백만 명의 유저가 모인 세계에서는 현실의 도시처럼 온갖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유저들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금기를 깨뜨리며 시스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시험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개발자가 도덕적 잣대로 이를 패치해 막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유저들이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실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시스템 크래프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유저들은 결국 협력과 상생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향으로 돌아온다는 통계적 경험도 덧붙였다.
 
 
 
 
타이난 실베스터는 림월드를 흔히 생존 게임이나 건설 게임으로 분류하지만, 본인은 오랫동안 림월드를 스토리 생성기(Story Generator)로 생각해 왔다고 설명했다. '림월드'의 핵심은 정해진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과 갈등, 선택이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고, 그 결과가 각자의 고유한 서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설명이다.
 
그는 개발 초기부터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것보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림월드에는 단순히 효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와 사건들이 존재한다. 식민지가 번영하던 순간 갑작스러운 재난이 발생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함께한 캐릭터가 허무하게 죽기도 한다. 이러한 우연성과 불확실성이 오히려 플레이어만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대담의 중심 화제는 확장팩 '이데올로기(Ideology)'였다. 이데올로기는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종교와 문화, 사회 규범을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식인 문화를 가진 집단을 만들 수도 있고, 자연 숭배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으며, 기계와의 융합을 추구하는 사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경혁 편집장은 이러한 시스템이 단순한 콘텐츠 추가를 넘어 플레이어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처럼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타이난 실베스터는 이데올로기의 목적은 특정 가치관을 가르치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대신 플레이어가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규범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어떤 사회에서는 금기인 행동이 다른 사회에서는 미덕이 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바로 그런 상대성과 다양성을 시스템 안에서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게임이 영화나 소설과 다른 점은 플레이어가 직접 행동의 주체가 된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담은 '림월드'의 확장팩 '아노말리'의 핵심 설정인 초지능 시스템 '아르코텍크(Archotechs)'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타이난 디렉터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인공지능을 게임 서사 속에 모순 없이 녹여내기 위해 독특한 은유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르코텍크를 전능하지만 인간에게 무관심한 존재로 설정했다. "만약 그들이 유저에게 명확한 악의나 의도를 가졌다면 인간은 대적조차 못 하고 즉시 소멸했을 것"이라며, "마치 대형 사무실 빌딩 옆에 있는 개미집처럼, 인간이 겪는 우주적 공포와 재앙은 초지능이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활동하며 흘린 배기 가스나 쓰레기 같은 부작용에 우연히 휘말린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서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교한 인과관계의 절제가 '림월드' 특유의 독창적인 SF 세계관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최근 게임 업계의 화두인 AI 도입 환경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타이난 디렉터는 현재의 AI는 주로 코딩 보조 등 기술적 효율을 높이는 품질 문제에 머물고 있으며, 개발자가 AI가 만든 코드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담 후반부에서는 게임 시스템이 의도치 않게 가치관을 전달하는 문제도 언급됐다. 타이난 실베스터는 개발자가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더라도, 시스템은 결국 플레이어에게 특정한 관점을 전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행동에 보상을 주고 어떤 행동에 불이익을 주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고 무엇을 무시하는지 자체가 이미 게임의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발자는 단순히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이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담은 게임이 반드시 교육적이어야 하거나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타이난 실베스터는 게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전히 재미라고 강조했다. 다만 좋은 게임은 재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림월드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역시 정답을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라 플레이어마다 서로 다른 경험과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담은 게임 시스템을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플레이어와 대화하는 언어로 바라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내가 만드는 시스템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림월드뿐 아니라 모든 게임 개발자가 한 번쯤 고민해야 할 화두로 남았다.
 
[김규리 기자 gamemk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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