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산하 엠바크 스튜디오가 익스트랙션 슈터 '아크 레이더스(ARC Raiders)' 개발 과정에서 구축한 독특한 제작 철학과 내부 툴 체계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26(이하 NDC 2026)을 통해 공개했다.
출시 후 약 1600만 장 판매고를 기록한 대형 프로젝트를 20명 안팎의 아트 인력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작 자동화와 파이프라인 혁신이 있었다.
엠바크의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 마이클 앤더슨(Michael Anderson)과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 이바르 달베르그(Eva Dolberry)는 16일 진행된 NDC 2026을 통해 아크 레이더스 제작 과정을 소개하며 소규모 팀이 대규모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제작 환경을 설계했는지 설명했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아크 레이더스는 일종의 실험이었다"며 "이 정도 규모의 게임을 매우 작은 팀으로 만들 수 있는지 검증하는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시 당시 아크 레이더스의 3D 콘텐츠 제작 인원은 약 20명 수준이었다. 이 가운데 월드 콘텐츠 팀은 15명에 불과했지만 게임 내 모든 레벨과 적 모델, 무기, 아이템, 코스메틱, UI용 3D 자산 대부분을 제작했다.
그는 "라이브 서비스 운영을 시작한 현재는 인원이 일부 늘었지만 출시 당시에는 15명이 게임 내 대부분의 3D 콘텐츠를 담당했다"며 "그 규모를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작업량이었다"고 설명했다.

엠바크는 이러한 인력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툴 개발에 투자했다. 핵심 제작 환경은 블렌더(Blender)와 후디니(Houdini),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으로 구성됐다. 특히 대부분의 자체 제작 도구는 후디니 기반으로 구축됐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후디니는 아티스트가 프로그래머의 도움 없이도 직접 도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며 "우리는 최고의 아티스트용 툴은 결국 아티스트가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엠바크가 기존 게임 개발사와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아트 디렉션 방식이다. 일반적인 게임 개발 과정에서는 콘셉트 아티스트가 2D 원화를 제작하고 이를 환경 아티스트와 모델러가 실제 게임 자산으로 구현한다. 그러나 엠바크는 이러한 단계를 최소화했다.
아크 레이더스에서는 아트 디렉터가 직접 블렌더를 사용해 3D 콘셉트를 제작한다. 이후 해당 데이터를 실제 제작 파이프라인으로 넘겨 최종 게임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전통적인 아트 디렉션은 '이렇게 만들어 달라'는 그림을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아트 디렉터가 직접 게임 디자이너와 함께 3D 환경을 구축한다"며 "덕분에 콘셉트에서 최종 자산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발표에서는 아트 디렉터가 약 1시간 동안 제작한 3D 콘셉트가 약 5시간 만에 최종 게임 자산으로 완성된 사례가 소개됐다. 그는 "소규모 팀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빠른 반복 작업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환경 제작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실제 지형 데이터를 활용한 월드 제작 시스템이었다. 아크 레이더스의 맵은 실제 세계의 지형 정보를 적극 활용해 제작된다. 현실 지형을 활용하면 자연스러운 산맥과 계곡, 침식 지형 등을 높은 품질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고해상도 LiDAR 데이터는 대부분 정부 기관이 보유하고 있으며 데이터 접근과 활용 자체가 쉽지 않다. 전문 GIS 소프트웨어 사용 경험도 필요하다.
엠바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엠바크 LiDAR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전 세계에서 확보 가능한 지형 데이터를 수집해 하나의 라이브러리로 통합한 뒤, 후디니 안에서 구글 어스를 사용하는 것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발표 시연에서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의 화산 지형을 선택한 뒤 약 3km 규모의 고해상도 데이터를 불러오는 장면이 공개됐다.

아티스트는 원하는 지역을 선택하고 필요한 구역만 잘라낸 뒤 곧바로 게임 레벨 제작에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는 언리얼 엔진으로 전달되며 높이 정보와 위성 이미지, 지형 재질 마스크 생성 등에 활용된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아티스트가 실제 세계 어느 지역이든 자유롭게 선택해 게임 레벨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자연 환경 제작 역시 자동화 중심으로 설계됐다. 엠바크는 암석과 식생 등 자연물을 제작하기 위해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포토그래메트리는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기반으로 실제 사물을 3D 모델로 복원하는 기술이다. 고품질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대상 하나당 200~500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현장 답사에서는 약 12만 장에 달하는 사진이 촬영됐다. 문제는 이렇게 생성된 원본 모델이 게임에서 활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는 점이다. 원본 데이터는 수백만 개의 폴리곤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엠바크는 '스캔 투 에셋(Scan to Asset)'이라는 자체 툴을 개발했다.

해당 도구는 고해상도 스캔 데이터를 입력받아 저폴리곤 메시 생성과 UV 맵 제작, 텍스처 생성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한다. 예를 들어 약 100만 폴리곤 규모의 암석 데이터를 입력한 뒤 목표 폴리곤 수만 지정하면 게임에 즉시 적용 가능한 에셋으로 변환된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기존에는 상당한 수작업이 필요했던 과정을 버튼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환경 배치 역시 자동화가 핵심이었다. 개발진은 실제 지형 데이터로부터 생성한 마스크 정보를 활용해 작은 식생과 자연물을 자동으로 배치한다. 아티스트는 중요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대형 암석이나 구조물만 배치하면 된다. 이후 시스템이 나머지 오브젝트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발표에서는 단 몇 분 만에 자연 환경이 완성되는 시연이 진행됐으며 실제 게임에 사용된 장면도 함께 공개됐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이런 규모의 자연 환경도 약 20분 정도면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축물 제작 과정 역시 비슷한 철학 아래 설계됐다. 엠바크가 개발한 '빌딩 크리에이터(Building Creator)'는 단순한 블록 형태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건물 구조를 생성하는 툴이다. 아티스트는 블렌더에서 건물 외형을 간단하게 구성한 뒤 후디니로 전송한다. 이후 시스템이 기초 구조물과 벽, 창문, 문, 지붕 등을 자동 생성한다.

여기에 데이터 소켓 시스템이 더해진다. 건물 각 위치에는 자동으로 데이터 소켓이 생성되며, 지정된 규칙에 따라 각종 오브젝트가 자동 배치된다. 덕분에 아티스트는 수백 개의 소품을 일일이 배치할 필요 없이 전체 구조와 방향성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다른 도구인 '오버그로스(Overgrowth)'는 건물 외벽이나 구조물에 식생을 자동으로 생성한다. 식물의 성장 방향과 고사 영역까지 자동 계산해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캐릭터 제작 파이프라인 역시 환경 제작과 비슷한 철학을 공유했다. 이바르 달베르그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는 "캐릭터 팀 역시 매우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담 콘셉트 아티스트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팀 전체가 공유하는 레퍼런스 보드를 활용한다. 개발자와 아티스트, 디렉터가 함께 수백 장의 참고 이미지와 콘셉트 스케치를 공유하고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 있다. 캐릭터 아티스트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직접 디자인을 해석하고 제작한다.

필요한 경우에만 콘셉트 아티스트가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바르 달베르그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는 "복잡한 승인 절차나 병목 현상을 줄이고 개별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캐릭터 제작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은 픽사가 개발한 오픈소스 프레임워크 USD(Universal Scene Description)였다. 엠바크는 USD를 기반으로 자체 제작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모델링과 스키닝, UV 작업, 텍스처링 등 모든 과정이 개별 레이어로 저장되며, 각 단계는 독립적으로 관리된다.

이를 통해 모델 구조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작업 내용을 유지한 채 수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후디니 기반 허브 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작업자가 동일한 프로젝트 구조를 공유하도록 했다. 아티스트는 필요한 캐릭터를 선택하기만 하면 최신 데이터와 관련 프로그램, 플러그인을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다.
이바르 달베르그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는 "모든 작업의 진입점을 하나로 통합해 협업 효율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캐릭터 외형 제작에서도 자동화가 적용됐다. 아크 레이더스의 캐릭터 상당수는 프로시저럴(Procedural) 머티리얼 시스템을 사용한다. 아티스트는 기본적인 표면 정보와 마스크만 제작하고 실제 재질 표현은 언리얼 엔진 내부에서 조합한다. 이를 통해 금속과 가죽, 오염, 마모, 색상, 패턴 등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새로운 스킨을 제작할 때도 텍스처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없다. 색상과 패턴, 재질 정보만 조정하면 즉시 새로운 버전을 생성할 수 있다.
이바르 달베르그 테크니컬 아트 디렉터는 "아트 디렉터나 콘셉트 아티스트도 직접 툴을 활용해 색상과 로고, 재질을 수정할 수 있다"며 "특정 작업을 위해 제작 파이프라인을 다시 거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발표를 통해 엠바크가 강조한 핵심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었다. 반복 작업은 시스템이 처리하고, 아티스트는 창의적인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 누구나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이클 앤더슨 시니어 환경 아티스트는 "우리는 소규모 팀이 플레이어들이 사랑할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강력한 도구에 투자하고 있다"며 "그것이 엠바크의 개발 철학"이라고 말했다.
[이시영 기자 banshee@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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