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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6] 서로 다른 게임을 동시에 개발한다는 것은? 넥슨게임즈의 '프로덕션 운영론'

 

 
하나의 게임을 완성도 있게 개발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서로 다른 장르, 서로 다른 목표, 서로 다른 개발 문화를 가진 프로젝트를 동시에 이끌어야 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개발 방향성의 우선순위, 인력과 일정의 배분, 각 프로젝트가 가져야 할 독립성과 조직 전체가 공유해야 할 기준 사이에서 끊임없는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넥슨게임즈 박용현 대표이사의 NDC 26 세션 ‘서로 다른 게임을 동시에 개발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해당 세션은 단일 프로젝트의 개발 노하우를 넘어, 여러 대형 신작을 병렬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프로덕션 운영론과 조직 리더십, 그리고 개발 철학을 다루는 자리로 마련됐다.
 
박용현 대표의 대담은 ‘가장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박 대표는 과거 ‘울티마 온라인’과 ‘에버퀘스트’를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이러한 경험이 이후 ‘리니지2’ 개발에 뛰어드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가며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보는 쪽으로 취향이 옮겨간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게이머로서 강하게 기억하는 작품으로 ‘에버퀘스트’를 꼽으며 클레릭 캐릭터로 에픽 아이템을 얻기 위해 40시간 가까이 하나의 퀘스트에 매달렸던 경험을 언급했다.
 
당시에는 힘들고 불평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높았던 퀘스트여서 개발자로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다른 게임을 개발할 때 "우리도 이런 경험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을 다른 게임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도 짚었다.
 
회사의 대표처럼 개발 방향성에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판단은 매우 중요한데 특정 퀘스트 구조를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은 각 게임의 구조와 문법을 무시할 경우 큰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렵더라도 그만큼 가치 있는 보상이 주어지면 이용자는 만족할 수 있다’는 식의 일반론과 평균적인 이용자 관점으로 경험을 해석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최근 게임 시장의 변화도 언급했다.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에서는 이용자 니즈를 파악하는 속도와 정확성이 더욱 중요해졌고, 전체적인 완성도가 뛰어나거나 특정 방향에서 뚜렷한 강점을 가진 작품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전자든 후자든 쉬운 개발 방식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짚었다.

이에 대한 예시로 넥슨게임즈의 현재 상황을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박 대표는 넥슨게임즈가 현재 5개의 라이브 게임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5개의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는데 결국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은 프로젝트와 팀의 몫이며, 대표와 같은 의사결정권자는 작품의 결을 잡아주고 퀄리티 체크와 트러블 슈팅 정도에만 개입하고 세부적인 제작 영역에는 과도하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전개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 게임 시장이 가지는 특유의 구조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술회했다. 박 대표는 해외 게임사와 같이 패키지 게임이 중심이 되는 시장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해당 인력을 다음 프로젝트로 전환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럽지만, 한국 시장은 라이브 서비스 중심의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강세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에서는 기존 인력을 유지한 채 다른 프로젝트로 확장하기가 쉽지 않으며 여기에 10년, 20년씩 장기 생존하는 게임이 많지 않다는 현실까지 맞물리면서 넥슨게임즈는 장르 다각화와 다작을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개발자 수급이었다. 박 대표는 한국 게임 시장이 2000년대 이전까지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폭넓게 만들어온 환경은 아니었다고 짚었다. 잘 팔리는 장르에 역량이 집중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장르와 방식에 도전할 수 있는 인력 풀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개발자 개인 역시 자신의 커리어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기존에 잘 되던 것만 하기에는 게임 업계가 너무 커졌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여러 장르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이 잘 만들 수 있는 장르에 대한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다양한 취향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넥슨게임즈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루트 슈터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기저에는 계승자를 성장시키고 특정 역할군에 몰입하는 RPG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블루 아카이브' 역시 학생을 육성하고, 필요한 곳에 적절한 역할로 배치해 투입하는 RPG적 문법을 기반으로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회사 단위의 다작 전개가 특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이미 규모가 있는 해외 게임사들은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구축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국 시장이 이 부분에서 아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국내 게임사들도 결국 다작 전개를 향해 발전해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 대표는 넥슨게임즈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말로 "우리가 잘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자"는 모토를 제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블루 아카이브'를 언급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넥슨게임즈의 대표적인 성공작이자 해외 진출의 좋은 사례로 평가받지만, 박 대표는 그보다 앞선 '오버히트' 시절부터 해외 시장을 향한 시도가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다른 작품의 10배에 가까운 현지화 비용을 들이며 해외 진출에 힘썼고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김용하 PD가 '블루 아카이브'를 일본에 먼저 출시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을 때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박 대표는 대표와 조직의 역할에 대해 "PD와 디렉터가 게임 제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잦은 보고 체계로 인해 불필요한 리소스가 소모되고 제작자의 의욕이 꺾이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표가 해야 할 일과 제작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는 방향성 점검,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고, 실제 게임의 세부적인 제작과 창작은 PD와 개발팀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이번 대담은 서로 다른 게임을 동시에 개발하는 조직이 어떻게 방향성을 유지하고, 창작자의 자율성과 회사의 전략을 조율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프로덕션 운영론의 사례로 정리됐다고 할 수 있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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