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인된 퀸시의 왕은 900년동안 심장고동을 되찾고90년동안 이지를 되찾고9년동안 힘을 되찾고9일동안 세상을 되찾는다
위의 내용은 만화 '블리치'의 최종장 천년혈전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악역 퀸시들의 집단 반덴라이히의 싯귀 '카이저 게장'으로 천년 전 사신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퀸시들이 수없이 긴 시간을 인내하며 복수의 순간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사실, 필자를 비롯하여 '블리치'라는 작품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의 심정도 아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블리치를 소재로 좋은 게임이 나오겠지'라는 기대를 품고 기다려왔지만 항상 그럴싸한 비주얼만 내세우고 게임성은 뒷전으로 하여 한탕치고 사라져 버린 타이틀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발사를 만나는 운이 박복하기로 소문난 '블리치'가 이번엔 정말 괜찮은 곳을 만났고 꽤 좋은 게임으로 다듬어져 나왔다. 왕의 귀환을 기다린 퀸시처럼 우리가 오랜 세월을 목말라해오며 기다린 그 게임의 정체는 바로 뉴버스에서 개발한 '블리치: 소울 레조넌스'(이하 소울 레조넌스)다.

오프필드 캐릭터 중 하나는 반드시 추가 조작을 통해 대기 상태에서 딜을 넣는 서포터라서
비슷한 종류의 액션 게임중에서는 손이 제법 바쁜 것이 독특한 부분
기본적인 게임의 진행 방식은 3인 1개조의 소대(팀)을 구성하여 스테이지를 주파하는 ARPG다. 분재가 주류인 서브컬쳐 계통 게임 중에서는 비교적 손이 많이 가고 꽤나 무겁다는 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잘 깎아오면 액션성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방향이다.
다행스럽게도 개발사인 '뉴버스'는 'CoA: 아틀란의 크리스탈'처럼 제법 괜찮은 액션 게임을 개발했던 이력이 있었기 떄문에 CBT 단계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번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조금 더 완성도를 높여서 가져오는 장인정신을 보여줬다.

봉멸을 마구잡이로 지를 수 없게 됐기 때문에
극한회피로 한번 째고 패링을 올리는 테크닉의 효율이 올라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봉멸'의 변화다. 이 게임은 칼과 칼이 부딪히는 난전 속에서 저스트 회피에 해당하는 '극한회피'와 저스트 패링에 해당하는 '봉멸'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핵심인데, CBT의 경우 봉멸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쉬웠다.
모든 동작을 끊고 나갈 수 있는 방어기제가 내부 쿨타임도 없고 후딜레이도 없어서 그냥 패턴의 발생을 보고 연타하면 막대한 이득을 주는 탓에 이런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에 가까운 수단이 있다면 게임의 텐션이 내려가고 쉽게 지루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라이브 서비스 버전에서는 적절하게 밸런싱을 해서 내놓은 덕분에 저스트 프레임 수준의 칼같은 조작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대충 사용하면 적의 공격을 허용하고 땅바닥을 구르는 구도가 형성됐다.


CBT 버전(위)과 정식 출시 버전(아래)의 참월 각성 장면 비교
정말로 한국어 정식 번역본의 대사인 '물러서면 퇴락이요, 겁먹으면 죽음이다'를 채용했다
정말로 한국어 정식 번역본의 대사인 '물러서면 퇴락이요, 겁먹으면 죽음이다'를 채용했다
번역 또한 이전보다 매끄러워진 것이 특징이다. 개발진이 서면 인터뷰에서 냅다 "세 상 이 치 가 그 래"를 박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CBT에서 메인 콘텐츠에 해당하는 '전투'가 '맞서 싸워야 한다'로 적혀 있거나 문장을 끊는 부분이 어색하고 다소 딱딱한 직역투에 가까웠던 부분들이 1개월 만에 상당히 개선된 모습이었다.
또한 본인들이 블리치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나서서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 구현 측면에서도 굉장히 안정적인 맛을 내고 있는 것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인데, 액션 파트를 제외한 메인 스토리를 다루는 구간 대부분을 단순히 새로 만들어낸 시네마틱으로만 땜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QTE와 다양한 미니게임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완급조절을 진행하고 있어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조차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게임의 진행 상황에 따라 필드에 등장하는 동료의 수가 늘어나고
점점 회화 내용이 풍부해진다
심지어 월드맵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보이는 보이는 오브젝트와 인물의 배치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걸어서 들을 수 있는 멘트를 보면 제작진은 적어도 블리치를 수차례 이상 정주행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압권인 것은 가챠에 사용되는 재화의 디자인이 바뀐 부분이었는데 바뀐 디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년혈전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현세의 인간들이 소울 소사이어티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프리패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CBT 당시에는 저 아이템들의 형상이
황금색/푸른색 구슬과 사신대행증 마크가 그려진 단순한 티켓에 불과했다
블리치 IP가 2005년 애니메이션화와 함께 활말한 미디어 믹스 전개를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많은 게임이 출시됐지만 원작의 팬들은 물론 게임성까지 만족스럽게 뽑아내는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에 따라 기대치가 점점 낮아져왔던 것 또한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울 레조넌스는 이번 '블리치 게임도 그저 그럴 것이다'라는 아집에 빠져있던 게이머들이 낮은 기대치를 좋은 의미에서 배신할 수 있을만큼 훌륭한 완성도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문단으로 '블리치: 소울 레조넌스'를 표현한다면 '블리치로 뇌가 완전히 표백된 뉴버스'라는 기인들이 '원작을 잘 모르는 게이머에게는 빠른 템포의 검격 액션 게임을 선보이며 그 액션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블리치라는 작품을 어필하고, 원작을 잘 아는 팬들에게는 높은 원작 재현율로 만족감을 심어주면서 이전에 없던 훌륭한 액션으로 국밥을 말아낸 결과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분명 전례 없는 작품이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성공하고 롱런할 것이라는 믿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게임에 제작진이 경화수월이라도 심어둔 것일지도 모르니 일단은 이들이 만들어낼 최종장 천년혈전 에피소드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즐겨볼 생각이다.

가챠(뽑기) 연출은 무려 천년혈전 애니메이션 1화에 나오는 장면을 활용한 최초 공개 트레일러를 오마쥬했다
그야말로 감다살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무브먼트다
그야말로 감다살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무브먼트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기사의 저작권은 게임조선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무단으로 기사 내용 전제 및 다운로드 링크배포를 금지합니다.

아이온2
스타세이비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