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산하의 개발사 중 가장 독특한 감각으로 게임을 만드는 곳을 물어본다고 하면 전작 '더 파이널스'에서 은엄폐와 섬멸이라는 FPS 장르의 기본적인 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지형지물 상호작용 및 파괴 기믹 그리고 독특한 승리 조건을 제시했던 '엠바크 스튜디오'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그들이 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개발한 야심작 '아크 레이더스'가 마침내 시장에 나와 게이머들의 평가를 받게 됐다.
스카이넷 뺨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적대적 환경 요소가 플레이어들을 맞이한다는 그 방향성은 안그래도 사망하는 즉시 모든 것을 잃는 익스트랙션 장르에 스트레스를 배가하여 실제로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로 접해본 아크 레이더스는 그러한 부담 이상으로 특색 있고 긴장감 넘치는 전투가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진로, 올 클리어!
레이더스, 발진하십시오!
아크 레이더스는 폭주로 인해 통제 불능이 된 인공지능 로봇 '아크(ARC)'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생존기를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와 비슷하게 인류 절멸의 위기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는 것이 특기할만한 부분으로, 실제로 아크의 침공으로 인해 대부분의 인구가 지하에 집결하여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는 설정이지만 당장 내일을 걱정할 정도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는 묘사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무사 귀환의 기쁨을 담아
길에서 주운 피리를 불고 댄스로 호응하는 삐리리 불어봐 레이더
오히려 지상으로 나가 물자를 약탈하는 레이더(RAIDERS) 활동은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라 속된 말로 제대로 한탕을 노리기 위해 위험을 수반하는 것에 가까우며, NPC가 의뢰하는 퀘스트들도 인류의 존속과 같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라기보다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일상의 느낌이 묻어난다.
거기에 더해 레트로 퓨처 스타일의 아트 콘셉트가 가볍고 유쾌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아크 레이더스는 분명 세기말스러움을 연출하는 요소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마을은 돌아가듯 활기가 넘쳐 '비바! 미래세기!' 느낌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인간 측이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늑한 쉼터 '스페란자'에서 벗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순하고 멍청한 그냥 시체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살인 로봇들은 암만 조용히 움직인다고 해도 물자만 들고 탈출하려는 인간들을 곱게 살려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크 레이더스의 적대적 환경요소(PvE)는 지금까지 만나본 PvPvE 게임 중에서 역대급 어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와스프'나 '호넷'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공중 정찰형 아크만 해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1:1로 대치하면 레이더 측이 손쉽게 제압당할 정도로 막강한 스펙과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초대형 아크인 '퀸'이나 대형 아크 '바스티온' 이전에 중형 아크인 '로켓티어'만 떠도 스쿼드 하나가 전멸을 걱정해야하는 수준이다.

대형 아크를 잡는데 성공했다면
즉시 스페란자 귀환을 고려해도 될 정도의 노다지가 펼쳐진다
물론, 아크가 대응조차 불가능한 무적의 존재는 아니다. 착용 장비 및 소모품 중에서는 분명 아크의 장갑판을 상대로 효율이 높은 부류가 존재하고 상위종 아크가 아닌 이상 동시에 다수의 레이더를 공격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적절하게 1명이 시선을 끄는 사이 다른 스쿼드원이 이를 처리해줄 수도 있다.
특히 파괴된 아크는 위험도가 높은 지역과 엇비슷한 수준의 전리품을 제공하는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분명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냥감이다.
다만 좋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위험도 높은 지역은 레이더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배회하는 아크들이 수두룩뺵빽할 확률이 매우 높으며, 몰래몰래 숨어서 들어가려고 하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소형 아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와 '레이더'라는 오물을 소독'하려 들고 에일리언의 페이스 허거처럼 '안아줘요'를 시전하여 목을 죄어온다.

파밍하다가 소형 아크인 '틱'에게 '안아줘요' 한번 당하니까
체력이 살살 녹는 모습이다
특히 이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인간미가 없다는 부분에서 나온다. 소리와 빛에 민감한 것은 좀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이쪽은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하여 무력화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며, 넓은 구역을 커버하는 주제에 적절한 장비가 없다면 집요하게 끝까지 쫓아오는 특성으로 인해 추적을 따돌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PvE는 그저 전리품을 챙기는 과정의 일환일 뿐이지만 PvE에서조차 단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고 놓아서도 안되는 아크 레이더스의 전투 체험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승강기를 타고 탈출하는 그 순간까지 탐욕스러운 레이더스 뿐만 아니라 자비심 없는 아크들까지 의식해야 하는 이 게임에서 지루함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화물 승강기를 부르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걸린 상황
어설프게 풀숲에 숨는 은엄폐는 즉시 발각된 이후 사냥 대상이 된다
물론 처음 우려했던 것처럼 전투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이로 인해 따라오는 피로감은 적지 않게 느껴졌다. 아크에게 전멸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올 수 있는 만큼 착용하고 루팅했던 모든 아이템을 잃는 빈도수 또한 제법 높았고 이는 익스트랙션 슈터 특유의 한탕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들에게는 분명 허들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엠바크 스튜디오는 그런 부분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넣은 레벨 디자인을 보여줬다. 생존과 단련, 기동성으로 세분화되어 레이더의 기초 체급을 올려주는 퍽의 개념 '스킬 트리'가 있어 자신만의 개성있는 게임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었고 주기적으로 재료 아이템을 생산하고 장비를 제작 할수 있는 '작업장'이 존재하기에 미끄러지더라도 정상 궤도에 다시 올라타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싸우기보다는 도망치거나 먹튀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슈퍼 겁쟁이들의 쉼터'에 어울리는 기동력 위주의 스킬 빌드

코이츠 닭 주제에 달걀과 고기 대신
금속 덩어리와 약재를 낳는 www
심지어 초심자를 위한 무료 세팅인 '로드아웃'을 제공하고 있어 무일푼 상태에 떨어지더라도 스페란자 밖을 나서는 것이 그렇게까지 부담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복 플레이를 통해 저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레이더스들은 아크를 떄려잡고 진귀한 물건들을 찾으러 지상으로 거침없이 올라갈 수 있다.
분명 아크 레이더스는 근본부터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장르의 게임이고 진입장벽이 낮긴 해도 확실히 존재하기는 하며 파워 밸런스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죽이는 기계와의 전투든 기계 때려잡는 사람들과의 전투든 PvP와 PvE의 수준 높은 전투 체험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이 게임은 분명 지금까지의 동종 장르의 게임들과는 '다른 결의 재미'와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운만 좋으면 다른 레이더의 주머니만 털어도 만족스러운 결과창을 받을 수 있다
'따갚되' 마인드로 임해도 부담이 없고 전투가 맛있는 작품인 것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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