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소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원작 IP가 존재하는 게임을 평가하는데 있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단골 멘트는 "이럴거면 원작을 보지 게임을 왜 함?"이다.
IP 기반 게임은 원작의 팬들을 잠재적인 이용자층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지만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게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날 선 비판을 받아내야 한다는 리스크도 따라오기 때문에 제작사는 게임의 만듦새를 다듬는 부분과 원작의 요소를 잘 살려내는 부분에 있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입장이고 그렇게 숱한 게임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간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21세기 초 점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소년만화 트로이카 '원나블' 중 하나인 '블리치'는 굉장히 불운한 편에 속했다. '게임의 완성도'와 '원작의 구현' 중 그 어느 쪽에서도 합격점을 받지 못한 어정쩡한 것들이 난립하면서 관련 게임 중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극히 드물었고 블리치 관련 게임은 나오면 일단 믿고 거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형으로 문장을 적은 것은 이제는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게 전부 츠키시마 씨...가 아니라 11월 출시를 앞두고 있는 '블리치: 소울 레조넌스'(이하 소울 레조넌스) 덕분이다.
■ 손이 바쁠수록 더욱 즐거운 스타일리시 액션

매우 빠른 템포로 전투가 진행되지만 그만큼 손맛은 확실하다
특히 패링에 해당하는 '봉멸'은 위력도 연출도 일품
단독 게임으로 본다면 소울 레조넌스의 기본적인 틀은 인스턴트 던전 형식의 스테이지를 주파하는 ARPG다.
3명의 캐릭터를 팀으로 구성하여 전투에 임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게임에서 쓰이는 온필드-오프필드 개념의 캐릭터가 1차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제작진에서도 아예 그런 운용을 정석의 형태로 상정해둔 것인지 오프필드 상태에서 비교대로 스킬만 쓰고 퇴장하는 '전술' 카테고리와 잠깐 나와서 서포트 효과만 걸어주고 퇴장하는 '지원' 카테고리를 달아두면서 게임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제작사인 뉴버스가 'CoA: 아틀란의 크리스탈'을 통해 검증된 내공이 있어서인지 액션 게임으로서의 만듦새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저스트 회피, 저스트 패링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모든 액션을 연결하는 딜레이가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에 일단 적을 맹렬하게 공격하면서도 피할 건 피하고 막을 거는 다 막는 공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진다.

퀵스왑으로 극한 회피를 발동해도 관련 기재가 전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템포를 끊는 일 없이 스피디한 플레이가 가능
심지어 캐릭터를 교체하는 스왑은 기본적으로 무적 판정이 없지만 극한 회피와 동일한 타이밍과 조건에 맞춰 사용하면 자동으로 극한 회피 판정이 발생하는 사양이며 패링 조건을 만족하면 나가는 후속타인 봉멸은 동레벨의 필살기와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계수를 가지고 있어 이런 방어기제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론 타겟을 따라가는 오토 카메라의 시점 전환 속도가 살짝 느려서 종종 패턴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부 패턴은 저스트 프레임으로 대응하려고 하면 이펙트의 가시성이 썩 좋지 않는 등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비슷한 방식으로 굴러가는 다른 게임에서 팀으로 구성된 캐릭터들의 전투가 기계처럼 특정 행동만 반복하는 정형화된 싸이클로 굴러갈 때 소울 레조넌스는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우며 복잡한 컨트롤이 필요해도 그만큼 확실한 보상을 주고 있어 전반적인 액션 체험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원작에 미쳐버린 블붕이들의 디테일

요루이치의 간판기 '순홍'은 발동 직후 상반신의 옷이 터져나가는데
실제 게임 내에서도 필살기 발동 이후 스테이지 클리어까지 그 상태를 유지한다
예전에 캡콤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 당시 제작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제시했던 조건은 '원작 만화를 읽어보고 왔는가'였고 이 일화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IP 기반 게임을 만드는 모범적인 자세'라며 종종 회자되고 있는데 '소울 레조넌스'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록 그 디테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게임이었다.
예를 들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똑같아 보일 뿐인 회피 액션을 여화, 사신, 퀸시 등의 종족별 분류에 따라 회피, 순보, 비염각이라는 이름으로 확실하게 구분짓는 것은 물론 원작 캐릭터에 맞춰 연속 사용횟수나 이동거리도 조금씩 달라지는 사양이며 퀸시는 아예 영자 조작과 집속 능력이 우수하다는 설정에 맞춰 극한 회피를 성공하면 필살기 에너지를 대량으로 회복하는 특수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사신 녀석들의 순보는 그저 극한회피 발사대에 불과하지만

퀸시의 비염각은 영자 집속 능력을 반영한 필살기 에너지 회복이 추가되어 있다
착용 장비 개념인 세트 각인에서도 주인공 쿠로사키 이치고에게 최적화된 참술 각인 '떠오르는 검은 달'은 원작에서 처음으로 만해가 등장했던 에피소드와 단행본의 제목인 'THE BLACK MOON RISING'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세트 효과 또한 초고속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는 '천쇄참월'의 효과를 기본 공격과 전투 스킬 사용 이후 기본 공격에 보너스를 제공하는 특수 공격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필드를 돌아다니면 카라쿠라 마을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휘어잡고 다니는 모두의 인기인 '돈 칸온지'가 발견되거나 우라하라 상점 주변을 배회하는 '검은 고양이'를 볼 수 있으며 '이노우에 오리히메'의 요리치 속성을 십분 활용한 괴식 만들기 이벤트 콘텐츠가 존재하는 등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이 게임의 제작진은 블리치에 제대로 미쳐있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는 구조였다.
■ 복습에 최적화된 메인 콘텐츠

미니게임이 배치된 타이밍도 적절하며
나름대로 분기도 있어서 이래저래 보는 맛이 좋다
메인 스토리 진행이 전투 일변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리듬 게임 스타일의 QTE, 전투를 최대한 피하는 잠입 미션에 특정 스테이지는 아예 퍼즐로만 풀어야 하는 등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특히 구작 애니메이션이 만화의 내용과 동떨어진 연출과 전개를 선보인 탓에 원작자에게 직접적으로 비판받은 것을 고려하면 소울 레조넌스는 제법 충실하게 원작을 구현하면서 초기와 후기 작화의 괴리감을 해결하기 위해 인게임 모델링으로 원작 내용에 맞춰 재구성된 애니메이션 컷신을 만들어 화풍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등 여러모로 편집과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엿보였다.
덕분에 현재 진행형으로 제작 및 방영중인 최종장 '천년혈전편'의 복습을 하고자 한다면 소울 레조넌스만한 선택지가 없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설명을 위해 동의를 얻어야하고 아무도 진정한 목표를 모르는 '바운트'처럼 재미도 개연성도 없는 에피소드가 없으니 말이다.

원작과 동일하게 들킨다고 즉시 게임오버되지는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특수 대사나 이벤트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다
■ 총평

단순한 시놉시스조차 쿠보식 포엠 스타일로 맛깔나게 연출하고 있다
제작진이 얼마나 블리치뇌로 절여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솔직히 말하자면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그래도 원작의 한국어 발매본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중국에서 개발된 게임이면 으레 겪는 오역 이슈가 적어도 메인 스토리나 중요한 내용을 제외한 자잘한 부분에서만 발견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의 리소스를 활용한 컷신 내 음성에 노이즈가 끼거나 볼륨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정식 라이선스를 인가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식 출시 단계에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오히려 하나의 액션 게임으로 접근했을 때 이 작품이 뒤집어 쓴 가죽이 '블리치'가 아니었다고 해도 제법 괜찮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것이 고무적인 부분이다. 하물며 그렇게 덮어 씌운 블리치 외장은 누가 봐도 잘 깎은 것이었기에 시너지 효과는 더욱 강했다.

액션 게임 마니아에게도 꽤나 어려운 노피격 도전 스테이지의 잇햄
'자기 만해를 봤다면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마인드라서 플레이어는 한대만 맞아도 죽도록 되어있다
원작 IP의 힘에 편승하여 수준 이하의 게임을 만든 다음 한철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게임다운 게임을 만드는 것을 선결과제로 삼았고 그렇게 만든 게임에 원작의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요소 하나하나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결과물을 보면 이전까지 있었던 블리치 관련 게임들이 자못 골계스럽다 느껴질 정도였기에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더욱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정식 출시 이후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예정인 이 게임에 붙게 될 '블리치: 소울 레조넌스'라는 특별한 이름에 말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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