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대부분 준비된 콘텐츠에는 명확한 총량의 한계점이 존재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 또한 그 업데이트 속도가 반드시 플레이어의 진척도를 상회하지는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때문에 게이머가 모든 콘텐츠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다음 한동안 할 게 없는 소강 상태가 오더라도 해당 게임을 계속 플레이한다면 이는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소모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적절한 난이도의 콘텐츠를 계속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의 완성도가 높다'는 말과 동의어로 취급되기 마련이죠.하지만 게임의 완성도를 제외하더라도 '게이머가 한가지 게임을 두고두고 플레이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행동양식입니다.누군가는 '지금까지 들인 돈과 시간 등의 매몰 비용이 아까워서'일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과 사연이 남아 있어서' 주기적으로 들추어 꺼내보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이번 창간 기획에서는 필자가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여전히 접지 못한 채 계속 붙잡고 플레이하는 게임들과 그 이유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잠깐 나왔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던 카와이 헌터 Z를 제외한다면, 한국에 출시된 호요버스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언니 게임 '붕괴 3rd'는 필자가 여러모로 각별하게 생각하며 애증을 품고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군 전역 이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며 가장 처음 접한 본격적인 모바일 게임이 '확산성 밀리언 아서'를 시작으로 컨트롤의 개입 요소가 비교적 적은 수집형 게임들 그 다음으로는 자동사냥으로 돈과 시간을 태우는 롤플레잉 게임들이 득세하며 소위 말하는 '분재'가 시장의 주류로 등극한 시기가 있었는데요.
'과연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게임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예상치도 못했던 중국산 게임이 빼어난 비주얼과 수준 높은 액션성을 선보인 것에 놀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반적인 하이 판타지 세계관이 아닌 SF 세계관이 히어로, 로봇, 우주를 좋아하는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던 것이 이 게임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공중전함을 타고 날아다니는 소녀 전투원들이 강화복을 입고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
이 조합은 SF 히어로물이 취향이라면 치트키나 다름 없는 수준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우정과 노력 그리고 승리와 같이 왕도를 추구하는 소년만화스러움과는 거리가 있고 비교적 최근 창작물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게 목이 극한까지 메이도록 고구마스러운 전개를 퍼먹이고 있지만, 그만큼 시련을 극복하고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굉장히 크며 의외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을 위한 찬가'라는 주제의식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어서 코드가 맞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만족도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액션 게임으로 보더라도 후신에 해당하는 원신, 젠레스 존 제로 등의 게임에 쓰이는 실시간으로 캐릭터를 스왑하고 시너지가 발생하는 팀 단위로 운용하는 ARPG의 뼈대를 세우는 것은 물론, 원래 없던 점프 기믹을 추가하고 별의 고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파티 운용을 단순화된 사이클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상황에 맞춰 순서를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어 게임을 꾸준히 플레이하는 함장들은 그 발전을 몸으로 체감하며 자연스레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좋은 게임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시 초기인 2010년대 후반 기준으로는 굉장히 준수한 액션 게임이었고
자유도 높은 낙원 등의 엔드 콘텐츠에서는 여러가지 빌드를 시험하며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게임
다만 출시 초기부터 이 게임은 문제가 많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산재해 있어 지금까지도 이를 고치기 위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호요버스 게임이 그렇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오타쿠라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레퍼런스가 가득한 '일방적 콜라보' 외에도 전달력과 개연성에서 기복이 다소 있는 메인 스토리와 설정,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신규 캐릭터 접대 환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아직도 이 게임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요소로 꼽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전반부를 리부트로 엎어버려서 뒷이야기와 맞추는 건 어찌보면 게임이니까 가능한 발상일지도
이에 대한 해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설정 오류가 가득했던 메인 스토리 초반부는 아예 한번 갈아엎는 작업을 진행했고 속도가 다소 늘어진다는 비판을 의식하여 1부 중반부터는 전개 속도의 완급 조절이 상당히 좋아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현재 후속작 '붕괴: 스타레일'의 메인 스토리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샤오지'가 집필한 파트인 신염의 율자 각성부터 과거의 낙원/영원의 낙원까지의 서사는 이 게임을 플레이해본 함장들에게 최고점으로 꼽힐 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즌 패스의 도입, 비교적 빠른 로테이션 주기 설정 그리고 재화와 캐릭터 및 장비 수급처를 여러 방면으로 늘리면서 1부 중반 이후의 붕괴3rd는 꾸준히 인게임 콘텐츠와 이벤트를 플레이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거의 비용 소모가 발생하지 않는 부담 없는 게임이 됐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노오오오오오력을 통해 하위 호환에 해당하는 발키리(캐릭터)의 육성에 조금 더 신경쓴다면 충분히 메타를 따라가며 대부분의 보상을 타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에 꾸준히 게임을 플레이한 함장들에게 붕괴3rd는 플레이를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계속 증명하고 있었던 셈이죠.

명함에 전용 무기만 따준다는 전제 하에 월 정액과 시즌 패스만으로 모든 캐릭터를 수집할 수 있는 게임이 된 상태
물론 경쟁 콘텐츠인 심연과 기억전장 고득점을 노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다만, 2부 스토리를 진행 중인 최근에는 다시 이해하기 어려운 고유명사와 설정을 남발하고 다소 산만한 전개가 이어진다는 단점이 재발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착용 장비 중 방어구 개념으로 쓰이는 성흔을 예전과는 달리 보급(뽑기)로 얻을 필요 없이 전부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반대급부로 이전에 없던 무기의 돌파 개념인 '싱크로'가 추가되어 매 버전 추가되는 캐릭터의 명함, 전용 무기를 갖추는 과금 부담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 됐음에도 오히려 심연, 기억전장 등 주요 콘텐츠의 고득점을 위해서는 더욱 하드코어한 과금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플레이하는 함장들을 위한 혜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주된 불만사항 중 하나입니다. 매년 최고 레벨을 달성한 함장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선물을 지급하던 충실한 팬서비스는 2023년 원화집 Vol.2를 마지막으로 맥이 끊겨버렸으며, 올해 진행하는 호요랜드에서는 부스가 야외로 빠지게 되면서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푸대접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엔 차상위 랭크인 홍련에 보통 주차시켜놓고 있었는데
사람이 줄어들고 고인물만 남게 되니까 슬슬 아래 단계인 고통 3에 매달리는 것도 버거워지기 시작한 느낌

화투는 이사 과정에서 분실하고 소주잔과 머그컵은 실사용하다가 깨져버렸기에
남은 주년 선물들은 주기적으로 관리하며 고이 간직하고 있는 중
남은 주년 선물들은 주기적으로 관리하며 고이 간직하고 있는 중
이처럼 기존에 좋았던 내용은 물론 개선된 사항들까지 나쁜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함장님들은 이 게임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들여 게임을 플레이했고 그렇게 쌓인 추억 그리고 과금액에 물려버려서 쉬이 게임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제작사가 이 게임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주된 근거입니다.
가령 붕괴 3rd에서 새로 도입된 시스템이나 이벤트가 있다면 보통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동생 게임들에게 들여놓기 전 실험장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오히려 최근에는 동생 게임에서 먼저 선보이며 성공적으로 평가 받은 요소들을 역수입하는 행보도 보이고 있는데요.

지난주에 밀었던 기억전장
하필 보스몹은 삼포고 공략 키캐릭터가 스파클이어서 동생 게임의 환락 배틀이 벌어진 모습
이는 달리 생각한다면 붕괴3rd가 후속작들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포지션에 놓여 있음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며 '정말로 순수하게 하고 싶은 것을 전부 다 시도해볼 정도로 제작진이 게임에 대해 품은 애정이 깊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줍니다.
그래서 기사를 작성하는 오늘까지도 저를 포함한 많은 함장님들은 히페리온 호를 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캡틴 온 브릿지(Captain On Bridge)'라는 멘트를 듣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따웨이꺼의 가호가 남아 있는 한 게임이 다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회생할 여지는 있을 거라고 말이죠.

오늘도 칸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히페리온에 승선할 뿐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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