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편집자 주]

러시아의 유명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문학 내에서 클리셰를 다루는 방법과 관련하여 '체호프의 총'이라는 이론을 만든 바 있습니다. 만약 극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그 총은 극이 끝나기전에 반드시 격발되어야 하며 쏘지 않을 총은 필요가 없으니 치워버려야한다는 이야기죠.
이는 떡밥을 생산하고 살포하면서 정작 이를 활용하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작품들을 비판하는데 주된 레퍼토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 조금만 비틀면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보스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목표가 없는 게임이면 모를까 '어떤 종류든 보스가 등장했다면 그 보스는 반드시 공략이 가능하고 처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서사 진행을 위해서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패배가 강제되는 보스전도 적잖게 존재합니다만 이번 조선통신사에서 소개드릴 사례들은 그렇게 첫 조우에서 공략 불가로 오인받던 보스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략 가능 보스들로 전환된 사례입니다.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제는 뭐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죠? 버질이 아들에게 깃든 염마도(야마토)를 회수하기 위해 '팔 달라!'를 시전하고 본인의 인간성을 분리하여 순수한 악마성만 남긴 존재인 '유리즌'이 바로 '데빌 메이 크라이 5'에서 '공략이 불가능해 보이는 보스'로 강한 인상을 준 사례 중 하나입니다.
사실 스테이지가 배치된 위치나 설정 상의 강함을 따지면 원래 유리즌은 공략 불가 보스여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프롤로그 미션의 플레이어 캐릭터인 네로만 해도 이미 팔을 뜯겨서 전투력이 급격히 떨어진 처지인데 먼저 달려와서 유리즌과 싸우고 있던 단테의 실력을 알고 있어 "단테 녀석이 알아서 해치울 텐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시간 낭비 아님?"이라고 부두술...이 아니라 너스레를 떨었더니 귀신같이 단테 일행이 리타이어했기 때문이죠.

정상 컨디션의 네로여도 승리가 보장되기 힘든 강함을 보여줬기에 프롤로그 미션에서 압도적인 스펙차이로 유리즌은 네로를 조금씩 천천히 예정된 패배를 향해 압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프롤로그 유리즌의 패턴을 눈여겨보더니 나중에 다시 나올때와 비교하면 매우 조잡하고 피하기 쉽게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수정체를 무력화하고 두들기는 제대로 된 공략법을 적용하면 프롤로그 미션의 유리즌을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1회차를 마친 고인물들 중 일부는 새 게임을 파서 프롤로그 미션만 넘긴 네로로 유리즌 사냥을 시작했고 유리즌 사냥에 성공한 이들은 '허, 이럴수가' 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전과제가 달성되는 것은 물론 상위 난이도가 해금되는 특전을 제공받으면서 어쨋든 유리즌을 잡았으면 엔딩은 엔딩임을 캡콤에게 공인 받을 수 있었죠.
그나저나 최종보스 주제에 프롤로그에서 스펙빨로 공략법 모르는 아들을 괴롭히다가 따잇 당하는 것을 보면 역시 버질은 추해야 제 맛일지도 모릅니다.


'세키로'의 '아시나 겐이치로'도 맥락만 보면 유리즌과 비슷한 유형입니다. 플레이어보다 월등하게 스펙이 높고 1회차인 초심자 입장에서는 공략법을 모르면 클리어가 불가능에 가까우며 게임의 장르도 하드코어 액션RPG다보니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허들이 높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면 세키로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높은 확률로 소위 이런 종류의 게임을 죽어라 파는 집단인 '망자'에 속할 확률이 높았고 당연히 그들은 이런 '강제 패배 이벤트를 제공하는 유형의 보스는 잘만 하면 실제로 초회 클리어가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더라'를 논리로 프롤로그 겐이치로 공략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 사례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프롬 소프트웨어는 망자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습니다. 겐이치로를 쓰려뜨려도 엔딩을 보거나 뭔가 보상을 먹는 것은 없었고 겐이치로 휘하의 닌자들이 별안간 협공을 가하고 그 틈에 겐이치로가 '늑대'의 왼팔을 잘라버리며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이 패배하는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실, 늑대가 왼팔을 의수로 대체하는 것은 이후 서사나 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 강제 패배 이벤트로 설정한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결정은 아니지만 보스로 나오는 '일국의 지도자'가 꽤나 치졸하고 비겁하게 묘사된 것이 아닌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크로노 트리거'의 최종 보스 '라보스'는 주인공인 크로노 일행이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길 방법을 찾지 못하여 시간 여행을 통해 그 단서와 동료를 찾는 것이 주된 이야기인 만큼 원래대로라면 최종장 이전까지는 가급적 조우하지 않는 것이 맞는 공략 불가능 보스의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극의 중반부라고 할 수 있는 해저신전 챕터에서 튀어나와 플레이어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사실 해당 전투는 원래 패배해야 정상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파고들기가 가장 수월한 장르로 꼽히는 JRPG답게 소위 말하는 노가다로 스펙을 펌핑하고 템을 긁어모은 사람들이 라보스의 모든 공격이 즉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고, 만약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면 해당 구간에서는 하나하나 들어오는 라보스의 치명적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잘 대비하면 많이 아픈 정도로 받아낼 수 있어 실제로는 공략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기 시작했죠.

시간 빌게이츠들이 계속된 노가다로 해저신전의 라보스를 조우하기 전에 오버스펙을 만들어 라보스를 클리어한 사례가 등장하고 이렇게 클리어하면 제작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는 특전이 밝혀지면서 해저신전 라보스를 잡는 것은 크로노 트리거 플레이어들에게는 일종의 훈장같은 포지션이 되었죠.
심지어 게임이 출시된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공략이 더욱 구체화되고 세련되어 누가 더 낮은 스펙으로 해저신전 라보스를 사냥할 수 있을지 빌드 최적화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모든 상태이상을 방지하는 프리즘 헬멧, 이온 슈트를 비롯한 높은 물리 피해 점감을 제공하는 장비, 턴당 3만 이상의 딜컷과 충분한 회복 수단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들으면 놀라실 수 있지만 MMORPG에서도 공략 불가 보스를 만든 사례가 존재합니다. 바로 '메이플스토리'인데요. 대부분의 게임이 대형 업데이트로 인스턴스 던전을 추가하고 해당 던전의 보스를 공략할 수 있게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MMORPG의 기조지만 메이플스토리는 일단 2008년에 보스 몬스터 '핑크빈'을 추가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클리어할 수 없도록 온갖 족쇄를 달아두면서 2년 가까이 시간을 끄는 기행을 벌였기 떄문이죠.
일단 핑크빈을 잡기에는 당시 이용자들의 스펙이 낮아서 소위 말하는 딜컷과 공략 시간이 아슬아슬하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핑크빈의 본체를 꺼내기 위한 기믹인 석상 격파를 성공했더니 원정대 전원의 게임 클라이언트가 강제 종료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게임이 팅긴 것은 핑크빈 본체가 미구현이라 의도된 것'이라는 기똥찬 공식 답변이 날아들고, 치졸하게 30초간 지속되고 쿨타임은 40초라 딱 10초만 때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격 반사 버프를 패턴으로 설정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나오자마자 클리어는 가능하도록 만들어놓는 요즘 MMORPG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선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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