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2025 시즌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만년 꼴찌 프레임이 씌워져 있던 '조류동맹' 구단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밑바닥이 아닌 꼭대기에서 선두경쟁을 벌이고 심지어 한화 이글스는 33년만에 12연승을 달성하며 단독 1위를 수성하여 문자 그대로 천지가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 기간이나 성적에 따라 언제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바뀔 수 있고 환경이나 대회 규칙 등의 이슈로 인해 순위가 언제든지 요동치는 것이 스포츠 업계라지만 1등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1등이 되는 극적인 상황은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는 이를 현실로 만들어낸 프로 선수가 존재한다.
2번이나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챌린저스 강등을 경험했고, 주어진 포지션의 틀에 박히기를 거부하는 듯한 독특한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선수생활 내내 저평가에 시달렸지만 끝내 2020년 월즈(롤드컵) 우승이라는 인간 승리를 써낸 그 선수의 이름은 '고스트' 장용준이다.

도입부에서 설명했듯이 그의 선수 생활은 시작부터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 소속은 초창기 LCK를 휘어잡았던 명문구단 'CJ 엔투스'였지만 고스트가 데뷔한 시점에서는 이미 팀의 기둥이었던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은퇴하거나 이적하며 하락세를 겪고 있었고, 고스트를 비롯한 신인 선수들을 기용하며 과감한 리빌딩을 통해 반전을 꾀한 것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가며 다 같이 손에 손 잡고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결과를 낳았다.
뒤이어 몸을 의탁한 'BBQ 올리버스'에서도 기량이 꾸준히 발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어 장단점이 명확한 선수로 취급받았고 연거푸 승강전을 치르게 됐고 2017년 승강전에서는 그래도 무사귀환에 성공하였으나 2018년에는 결국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CJ 엔투스 시절은 사실상 서브 선수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3년 연속으로 시즌 말에 꼴찌팀이 되어 승강전을 가는 상황은 누구라도 마음이 꺾이는 게 이상하지 않은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샌드박스 게이밍에 둥지를 튼 2019시즌에는 고스트가 이전까지 단점으로 치부되던 안정감을 탑재하면서 운영능력이 뛰어난 바텀 듀오를 기반으로 무력이 강력한 상체가 초중반 교전에서 큰 이득을 보고 이를 토대로 게임을 난장판으로 끌고가며 승리하는 팀의 컬러가 완성됐고, 서밋 '박우태'와 함께 팀내 MVP 포인트 2위로 캐리력을 책임지는 2옵션으로 거듭나며 이전까지의 저평가를 반전시켰다.
심지어 팀의 순위가 스프링에는 4위, 서머에는 3위를 기록하는 약진으로 강등권 팀을 전전하는 원거리 딜러라는 프레임은 완전히 무력화됐고 범인으로 지목하는 여론도 사라졌다. 오히려 이전까지 가끔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만 따라오던 별명 '성령'이 그를 대표하는 별명이 됐고 단년 계약 종료 후에는 그의 거취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관심을 받게 됐다.

2020시즌에는 중국 LPL에 진출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예상치 못한 공백기를 가지는 듯 싶었지만, 샌드박스 게이밍과 비슷하게 상체의 힘이 매우 강하지만 이들을 통솔하고 휘어잡으며 제어할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했던 담원 게이밍이 스프링 스플릿 도중 고스트를 영입했다.
이 시점의 고스트는 라인전 단계를 안정감 있게 가져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1:2를 수행하면서도 밀리지 않는 수준의 기량을 갖췄고 서포터가 수시로 라인을 비우고 캐리력 높은 상체에 힘을 실어주는 팀적인 플레이에 방점을 찍어주는 선수가 됐다.

심지어 이는 상체의 힘이 강하고 협곡의 전령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빠른 템포의 스노우볼 게임 메타에 맞춰준 것일 뿐 본인의 캐리력이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너구리' 장하권이나 '쇼메이커' 허수가 라인전을 철저히 잠궈버리는 픽을 고르고 코그모와 같은 하드 캐리를 소화하거나 케이틀린, 드레이븐처럼 본인이 스노우볼링의 핵이 되는 경기들도 있었으며, 난전 구도의 선봉장이 되어줄 수 있는 '베릴' 조건희를 키우기 위해 단식 세나와 직스, 신드라와 같은 비원딜 숙련도 또한 높아서 2020시즌의 고스트는 사실상 당시 원거리 딜러에게 요구되는 모든 플레이를 수행할 수 있는 팔방미인에 가까웠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 픽이자 월즈 우승 스킨의 주인공인 '진'은 고스트가 얼마나 게임을 넓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본적인 챔피언 설계부터가 장거리에서 화력지원과 CC연계가 중심이 되는 플레이메이킹형 원거리 딜러지만, 프로 경기에서 라인전 단계를 스무스하게 넘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거리재기와 탄창조절 능력을 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치의 실수도 없는 완벽함을 보여줬다.
심지어 궁극기인 '커튼 콜'은 대상의 잃은 체력에 비례하는 위력을 가진 킬 캐치 용도의 스킬이라서 체력이 높은 대상에게는 경미한 피해량만 줄 수 있지만, 적의 도주 경로를 좁히는 화망을 펼치는데 사용하거나 위기에 빠진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추격조의 발을 묶는 용도로 서스럼 없이 발동하는 장면들을 통해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실제로 '본인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캐리 롤을 포기한다'는 '원거리 딜러 입장에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극찬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량 측면에서 하락세를 겪고 2022시즌에 은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전성기를 맞이한 고스트가 2020시즌에 세계 최정상에 자리에 서있었던 분명한 사실이며, 그 다음해인 2021시즌에도 월즈 준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클래스는 충분히 입증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현 시점에서 고스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을 묻는다고 한다면 꼴찌를 거듭하며 마음이 꺾일 수도 있었던 데뷔 초 3년을 인내하고 하늘과 땅을 뒤집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아직까지 하늘 위에 서보지 못한 수많은 프로 선수들에게 분명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례이자 희망으로 남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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