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이 업에 있으면서도 2차 창작 게임은 생소한 분야였다. 물론 흔히 동인 게임으로 불리는 시장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물 건너 이야기로 치부하고, 크게 관심 갖고 지켜본 적은 없었다. 그냥 플래시 게임 같은 미니 게임 몇 가지가 기억에 있을 뿐이었다.
이들과 연이 닿게 된 것은 지난 '서울 코믹월드'에서였다. 여러 화려한 일러스트, 아트북, 다양한 라이트 굿즈가 즐비한 곳에 당시 감정으로 다소 생경한 광경이 있었으니 바로 게임 플레이 화면을 켜둔 태블릿 하나를 덩그러니 올려둔 부스 '500년의 인터미션'이었다. 인디 게임 섹션이 아닌 2차 창작 섹션에 모처럼 2차 창작 게임이 출품해 있는 것은 적어도 그날은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신은 '찍먹'만 해본 기자에게는 토대가 된'푸리나'란 캐릭터 역시 전혀 알아보지 못했기에 2차 창작 게임 '500년의 인터미션'은 딱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인터뷰의 시작은 그렇게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개발 '전희미' (좌) / 아트 '원자' (우)
희미. 취미로 2차 창작 오타쿠 게임을 만드는 '전희미'입니다. 평범한 일반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 취미로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학교도 이쪽 전공으로,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어서 출시도 해보고, 한번은 게임 회사에서 크런치도 하면서 상업 게임도 론칭 해보고 그랬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이 뭐였지?"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서울/부산 코믹월드 등에 갔을 때 일러스트나 회지 등 활동이 활발한 것을 보고 게임 개발로도 저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캐릭터의 매력을 전할 수 있는 더 간단하고, 흥미로운 가벼운 게임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2차 창작 게임을 만들게 됐고, 지금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긴 하지만 꾸준하게 하나씩 하나씩 도전해 보는 중입니다.
원자. 저도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원자'입니다. 아직 대학생이고요. 이전까지는 게임 개발 경험은 전혀 없었고, 그냥 게임하면서 팬아트나 올리고 그런 정도였는데 희미님의 연락을 받아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자세한 게임 기획, 스토리 플롯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고, 또, 제 그림에 관심을 갖고 연락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재미있게 참여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그림은 취미였지만 희미 님과 같이 일해보고 나서는 앞으로 이쪽으로 더 공부해서 아예 진로를 잡아보면 어떨까 하는 터닝 포인트로 삼고 있습니다.
그간 만들었던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희미. 아시다시피 지금은 원신의 '푸리나'란 캐릭터의 팬 게임 '500년의 인터미션'을 준비 중입니다. 이번 서울 코믹월드에 2차 창작 게임으로 출품했습니다.
서울 코믹월드 현장
이전에는 '블루아카이브'의 '미유'라는 캐릭터로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 캐릭터의 특징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스킬을 가진 캐릭터인데, 이 점에 착안해서 컵 섞기 게임을 만들어 봤었고, 일본 쪽에서 반응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창 수박 게임이 유행일 때는 '원신'을 소재로 수박 게임도 하나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원신'은 원소 효과와 원소 스킬이 있어서 게임 내 이 점을 활용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진짜 원신 미니게임 다운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점을 많이 좋아해 주셨고요.
전희미 개발자가 만들었던 원신을 소재로 한 수박 게임
이때 만든 게임을 들고 일러스타 페스에도 출품했었는데 현장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했고, 지금도 랭킹 보면 열심히 계속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즐거운 경험이 됐습니다.
'복슬복슬 푸리나 만들기'라는 게임도 있었네요. 원신에 있던 '복슬복슬 성 대모험'이라는 고양이 이벤트를 보고, 푸리나 캐릭터로 차용해서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원 이벤트가 당시 기간 한정 이벤트였어서 빠르게 만드느라 사흘간 밤낮없이 개발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2022년, 2023년에 있었던 원신 축제에 참가해서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러닝 액션 게임과 퀴즈 게임을 전시했었습니다. 행사다 보니 가족들, 친구들끼리 다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2인 플레이 모드를 준비했었고 다행히 현장 반응이 좋았었습니다.
자잘자잘하지만 하나같이 만들고 선보이면서 즐거운 기억들이 많습니다.
각각 만들었던 게임을 공개했을 때 당시 커뮤니티 반응은 어땠나요?
희미. 이러한 2차 창작 팬게임을 만들었을 때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여러 피드백을 받아보면서 "어? 내가 만든 게임이 그래도 이 게임 유저들에게 그래도 즐길 거리 정도는 됐나?", "게임이나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었나?"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2차 창작 게임이 큰 인기를 끄는 활동은 아니거든요.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만들기보다 제가 의도한 대로 즐겨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활동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게임,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본 게임에서 보여주는 부분 외에도 여러 방향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2차 창작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경우엔 그것이 '게임'인 셈입니다.
원자. 저는 아무래도 일러스트레이터다보니 게임에 대한 반응을 봤을 때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시거나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 그 게임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슬리지 않는 것만 해도 뿌듯해요. 이번에 서코에 나갔을 때도 그림을 보고 부스에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 코믹월드 참여 현장
사실 2차 창작 게임은 수익을 적극적으로 낼 수 없는 구조다 보니 개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희미. 실제로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하고도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시간을 들여 하는 일인데 수익이 아쉽지 않느냐-고 하면 당연히 아쉽죠. 하지만 제가 만드는 건 말 그대로 2차 창작 게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성을 추구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순수하게 제가 어떤 작품을 즐기는 활동 중 하나에요.
다만, 저 혼자 수익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도움 주시는 다른 분들까지 다 괜찮은 건 아니기 때문에 일정을 짤 때 생업과의 밸런스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너무 쫓기지 않게 넉넉하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또, 제가 기꺼이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약속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작했으면 반드시 출시는 시키겠다는 것이죠. 물론 퀄리티는 미흡할 수는 있겠지만 게임만큼은 무조건 완성해서 내놓는 것을 목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작품, 그리고 추후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희미. 일단 지금 개발 중인 '500년의 인터미션'을 3월까지는 기반 작업을 모두 마치고, 2분기에 QA 진행, 이후 정식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또, 가능하다면 일본판을 준비하고 싶고요.
선 공개된 500년의 인터미션 데모 플레이 장면 중에서
보통은 2차 창작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이렇게 만들다가 오리지널 게임으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전 이미 회사에 소속되어서 상업 게임 론칭도 해봤고, 직접 만든 오리지널 게임으로 부산인티커넥트페스티벌 같은 게임 행사도 나간 적이 있었거든요.
애초에 게임을 개발하게 된 계기 자체가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팬 게임, 2차 창작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2차 창작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던 거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제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오리지널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 작품을 만들면서 제 스스로 아직 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어서 당분간은 공부에 집중하게 될 것 같긴 하네요.
그렇게 개인적으로는 기틀을 다지면서 혹시 주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말씀해 주시거나 여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손이 필요하다거나 하면 거기에 손을 보태는 쪽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개발자이자 기획자이자 PM의 역할을 함께 해왔는데 아마도 당분간은 다른 분의 작품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원자. 앞서 잠깐 얘기했었지만 저는 이전까지는 게임 개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푸리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게임 개발하는 작업에 흥미가 생겼어요. 또, 결과물을 받아들게 되면서 이렇게 게임을 개발하는 작업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내가 가야 할 길에 좋은 거름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쪽 공부를 하면서 게임 회사 쪽에 조금 더 지원해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막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 나가는 중이십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실까요?
희미. 전 개인적으로 취미로 해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이나 수익적인 것에 욕심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목적보다도 저는 캐릭터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이나 장르를 선택하는 편이고요. 나중에야 정말 어떤 일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사실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쉽게 말하면 그냥 이러고 노는 겁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이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원자. 돌이켜 보면 그림 자체는 오래 그려왔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력해온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림을 왜 그리는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목적을 갖고 더 즐겁게 그림 그리면서 더 많은 작품에 참여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자 님의 푸리나 팬아트
개인적인 추천 작품이 있을까요?
희미. 페르소나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고, 캐릭터의 매력과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준다고 생각해요. 독특한 스토리, 또 그 스토리를 설득하기 위한 시스템까지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사실 게임 제작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밤을 새서 플레이하는 중에서도 솔직히 내가 아무리 팬이어도 너무 불편한 점이 많았었거든요. 때문에 나라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역기획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획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원자. 사실 취미 게임으로 가장 오래 즐긴 건 '메이플스토리'인데... 뭔가 딱 추천할 말이 떠오르진 않네요.
'원신'도 그렇고 '붕괴 : 스타레일'도 그렇고 최근에 호요버스 쪽 게임의 캐릭터들이 2차 창작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서브컬처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아트나 일러스트 쪽으로 참고할 만한 게임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뭘 하나 콕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트렌디한 신작 게임들은 다 재미있게 해보고 있습니다.
공식 X 를 운영하며 개발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두 분의 활동을 주욱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희미. 저 뿐만 어딘가에서도 취미로 2차 창작 게임을 만드는 분들이 계실 거라 믿습니다. 같이 파이팅 하자는 말 전하고 싶네요.
유저분들께는 어딘가 이런 재미난 세계가 있으니 눈길이 간다면 한 번쯤 해보시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자. 그림에서 몰입감이 깨지면 안 된다는 부담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력도 보잘것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준비 중이니 곧 공개할 저희 게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 둘을 포함해 게임 좋아하는 사람 넷이 모였다 보니 사실 잡담이 너무 많어서... 아마도 2시간 조금 안 되게 수다가 있었던 듯하다. 각각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는 '희미'와 '원자', 이 둘은 성격부터 시작해서, 서로가 지향하는 바도 모두 달랐다. 그럴 수밖에. 오래전부터 알아오며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저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뭉치게 된 아주 찰나의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전까지 그저 원신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였으니까.
하지만 게임의 힘이 그렇다. 이 둘은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의 창작 활동을 위해 기꺼이 뭉쳤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작품에 비로소 예쁜 컬러를 입힐 수 있었고, 또, 미처 꿈꾸지 못했던 진로에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모든 창작자들이 입 모아 말하듯 이 둘은 이미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절반의 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을 지나 결과물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꿈에 다가 서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게임을 좋아했던 그들에게 '게임'은 취미 활동 그 이상이 됐다. 애정이 됐고, 또 이루고 싶은 꿈이 됐다. 순수한 도전의 결실을 기대해 본다.
[홍이표 기자 siriused@chosun.com]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
ⓒ기사의 저작권은 게임조선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무단으로 기사 내용 전제 및 다운로드 링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