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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소년 사회에서 게임은 과연 무엇인가/차승우 대신고교 국어교사

 

오스트리아의 여류 작가인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은 "새로운 언어 없이는 새로운 세계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언어의 조탁(彫琢)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인다운 언급이겠지만 돌려서 생각하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으리라.

가정에서는 청소년과의 대화가 잘 이뤄어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 이유는 대화를 나누는 두 당사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 사이에 분명 모국어인 한국어라는 분명한 의사전달의 수단이 존재하는데도 어째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청소년의 세계에서는 어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여러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한국의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이란 말로 그들의 세계를 가볍게 다루고 만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를 이 땅의 기성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의 언어는 기성 세대가 살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학교 일선에서는 이른바 '폐인'이라 불리우는 청소년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수업 시간에 끊임없이 잠을 자고, 또 꿈을 꾼다. 그들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들은 입시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푹 빠져들 수 있는 세계에 몰입하느라 밤을 하얗게 지새운 이 땅의 아이들이다. 그들의 세계에는 무엇이 존재할까를 아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다.

사회는 자라나는 신세대들이 모두 모범생이며 우등생이 되기를 바란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무리한 주문이지 않겠는가.

현대 대중 문화의 새로운 총아로 부각된 게임 산업은 첨단 컴퓨터 공학과 새로운 차원의 세계관으로 기성 세대와 청소년 세대들을 돌이킬 수 없는 한계선을 그어 버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그들의 삶 속에 컴퓨터 게임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휴식처를 구축하고야 말았다. 그렇다. 컴퓨터 게임은 청소년들에게는 산소와도 같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은 기성 세대에게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여러 가지 용어들을 구사한다. 이른바 그들만의 언어이다. 그 세계를 이해하는 자는 그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다른 차원으로 존재로 밖에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첨단 게임의 가장 주요한 특징을 꼽자면 아무래도 상상력으로 구축된 환상적 차원과의 대화라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의 구현에는 뭐니뭐니 해도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집대성한 세부성(細部性, detail)이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는 충분히 그 개연성(蓋然性)을 인정할 수 있는 여러 부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밤늦도록 PC 앞에 앉아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멀티미디어로 그 사실성이 극대화된 새로운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컴퓨터와 대화하고, 게임 속의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화된 자아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내면화된 자아의 존재를 다른 동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게임에 몰두하는 이 땅의 많은 청소년들은 그들이 공유한 게임을 통하여 고도의 친밀도를 형성한다. 그들이 같이 즐긴 게임의 세계는 오래도록 그들의 관계를 두텁게 형성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들은 쉬지 않고 그들이 즐긴 세계를 나누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인간 관계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내의 의사 소통 수단과 별다른 성격상의 차이가 없다. 페로몬(pheromone)이라는 물질로 같은 종의 개체들끼리 신호를 전달하는 것처럼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그들만의 신호 체계로 자신이 구가한 세계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화두는 당연, 온라인 게임 분야이다. 몇몇 잘 나가는 게임을 등에 업고 우량 기업으로 떠오른 몇몇 업체들. 그 게임의 중독적이고도 파괴적인 성향 때문에 발생되었다는 각종의 청소년 사건 사고들. 치열한 사회적 논란들...

이제는 우리의 게임 문화도 분명한 사회 구조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 현상을 두고 애써 외면하고 덮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많은 논란의 핵심은 청소년이라는 사회의 한 주체가 매개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의 기회를 가져 보아야 한다. 청소년 주변에서 발생되었으며, 발생되고 있으며, 발생될 것이 분명한 사회적 현상을 두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미봉(彌縫)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위선이며 따라서 정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의 이 땅의 주인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물을 던져주어서는 안된다. 현상은 나타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와 금지가 아니라 올바르게 인식되도록 보다 정밀하게 접근하고, 제대로 교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조차도 다 알고 있으며, 즐기고 있으며, 부모가 생일날 PC방에 가라고 돈을 지불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교육적 지침 한 줄 마련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의 오만방자한 교육관은 이 땅의 소수 말 잘 듣는 모범생들만을 위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야만의 진면목일 뿐이다.

빠른 시일 내에 온라인 게임을 밝은 빛이 발하는 곳으로 끌어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음지에서 보다 쉽게 성장하는 인간의 본성의 사악함으로부터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여가 문화를 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여타 대중 문화의 면모가 그러하듯이 컴퓨터 게임도 분명 인간이 자신의 생계를 연명하는 수단으로서의 일이 아니다. 대중에게 있어서 컴퓨터 게임은 생활의 진행 과정 중에서 활력소를 찾게 되는 놀이의 한 형태이다. 놀이라는 문화적 형태는 아무래도 사용자의 운용에 더 큰 의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역시 게임이라는 문화는 임하는 사용자의 마음가짐이 문제다.

이에 유추될 수 있는 수많은 경우를 떠올려 보라. 스포츠, 영화, 대중 음악... 이 모든 엔터테인먼트들은 그 자체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해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의 선발 주자들은 밝은 양지에 나와 앉아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지 않는가.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사회는 컴퓨터 게임을 청소년의 여가 생활의 일부라고 분명히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게임 개발자는 질 높은 작품을 공급하며, 게임 유통사는 다양한 가치가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충분한 상업적 배려를 해야 한다. 또한 가정은 청소년 시기에 주어진 과업(예를 들면 입시 같은)과 같은 수준으로 청소년의 여가를 고려해 주어야 한다.

끝으로 사회는 청소년 사회에 존재하는 컴퓨터 게임의 세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검증과 연구를 거쳐야 하며, 적절한 정책적 안배를 해야할 것이다.

물론 우선적으로 청소년 사회에 존재하는 온라인 게임의 세계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본 자세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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