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로리그 10-11 시즌 당시 홍진호와 서지수 선수의 이벤트 경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프로리그가 이제는 추억의 한 켠에 자리잡는다.
프로리그가 태동했던 2003년, 기자는 당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해였다. 당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내게 스타크래프트는 또 하나의 탈출구가 됐다.
강민과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서지훈 등 당시 프로리그에서 활약했던 프로게이머들은 스타크래프트 즐겨했던 세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 역시 '몽상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강민의 플레이를 동경하며 그가 치른 모든 경기를 보고 해당 빌드를 따라 해볼 정도로 열정적인 프로리그의 팬이었다.
시간이 흘러 강민이 슈마지오에서 KTF매직엔스(現 kt롤스터)로 이적하고 팀 2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모습은 본인도 희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임요환의 마이크로 컨트롤, 이윤열의 앞마당을 먹은 물량, 최연성의 괴물 같은 물량, 완성형에 가까웠던 마재윤까지 그 시대의 최강자(팬들로부터 본좌라 불림)들의 경기를 보는 재미 역시 '일품(一品)'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기존 선수들을 제치고 김택용과 송병구, 이영호, 이제동(택뱅리쌍)이 등장해 리그의 신성이 됐을 때도 프로리그에 대한 기자의 애정은 여전했다.

▲ 프로리그 원년의 한빛소프트 프로게임단
하지만 프로리그에 대한 애정이 크게 식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마재윤의 승부조작'이고, 두번째는 '스타크래프트2의 도입'이었다.
팬들로부터 본좌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게이머 '마재윤'이 승부조작을 저지르며 하향세를 겪고 있던 프로리그에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더해 스타크래프트2로의 강제 전향이 실시되며 기존 스타크래프트 팬들 마저 대다수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때 프로리그의 명맥은 끊겼다고 보는 e스포츠 팬들도 더러 있다.
프로리그는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이 변경됐지만 잦은 밸런스 문제로 장기 집권하는 프로게이머가 없어지자 스타1의 스타플레이어에 견줄만한 프로게이머는 등장하지 않았다.
또 승부조작과 지속적인 참가팀 축소, 선수 부족, 후원사 유치 난항 등이 이어지며 결국 프로리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하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3040세대가 됐고, 파릇파릇한 새내기 같았던 프로게이머들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됐다.
비록 프로리그는 14년이라는 세월 끝에 아쉽게도 마침표를 찍었지만 학창시절의 유일한 탈출구가 됐던 추억만큼은 기자의 마음 속에 영원할 것이다.

▲ 2003 KTF에버컵 프로리그 개막식

▲ 스카이 프로리그 2005 결승전 당시의 임요환

▲ 스카이 프로리그 2005 결승전 당시의 최연성

▲ 스카이 프로리그 2005 결승전 당시의 이창훈

▲ 스카이프로리그 2005 당시의 최우범(現 삼성갤럭시 감독)

▲ 스카이프로리그 2005 당시의 강민

▲ 스카이프로리그 2006 올스타전 당시의 임요환, 변형태, 한동욱, 서지훈, 이윤열(좌측부터)

▲ 신한은행프로리그 2006 당시의 홍진호

▲ 프로리그 08-09 당시의 이영호
※ 본 기사의 사진은 게임조선의 DB를 사용했습니다.
[최희욱 기자 chu1829@chosun.com] [gamechosun.co.kr]
ⓒ기사의 저작권은 게임조선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무단으로 기사 내용 전제 및 다운로드 링크배포를 금지합니다.

일곱개의 대죄 오리진


스키천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