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랜파티(LAN Party)란 원래 모뎀 사용자가 많고 초고속 통신망 자체가 비싼 외국에서 랙 없는 게임환경을 꿈꾸는 게이머들이 자기 컴퓨터를 들고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컴퓨터를 랜(LAN: Local Area Network, 근거리 통신망)으로 연결해 게임을 즐기는 행사를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운전에 익숙한 외국의 게이머들은 컴퓨터를 들고 이동하는 데 그다지 부담감이 없다. 차에다 자기 컴퓨터와 랜파티때 먹을 음식과 음료수를 싣고 파티장으로 떠난다. 다시 말해 텅 빈 장소를 구해 랜 설치비용만 조금씩 나눠 내고서 밤새도록 랙 없는 게임을 즐기면서,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인사하고 준비해온 음식과 개인 컴퓨터의 풍부한 컨텐츠들을 서로 나누는 행사가 랜파티다.
랜파티는 아주 매력적인 행사고 한국 게이머들이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세계 1위를 달리는 한국에서의 랜파티는 외국과는 좀 다른 형태로 진행되야 한다. 네트워크 게임을 집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도 컴퓨터를 뜯어들고 지하철을 탈 게이머는 없을것이다.
처음 랜파티를 기획했을 때는 주위에서 격려보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기존의 비슷한 시도들을 예로 들면서 노력과 비용에 비해 남는 게 없는 행사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오프라인 행사를 위해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행사에 올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행사라도 사람들이 참여해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선 게임의 공식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클랜(clan)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고 게이머들의 반응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그리고 랜파티가 다가오는 주말에는 클랜 대표들과 두세번 만나 회비 문제, 자원봉사 문제, 클랜대항전의 공식 맵과 룰 선정 문제 등을 토론한다. 유통사가 일방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에 게이머들이 '그냥' 오는 것은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가.
랜파티는 자율적인 행사이며, 게이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능동적인 진행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행사 당일에도 주인공은 게이머들이다. 자기들이 가져온 게임 CD를 설치하고 클랜별로 대항전을 갖고 한쪽에 쌓여있는 먹거리를 가져다 먹으며 밤을 밝힌다. 새벽 6시가 되도록 집에 가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행사가 끝나고 해산한 후 파티장에 다시 모여들어 게임으로 '뒤풀이'를 하기도 한다. 이번 3차 랜파티때는 100명 정원에 180명이 참가했다. 지정석이 없어도 좋으니 오고 싶은 사람은 오게 하자는 것이 게이머들의 주장이었고, 실제로 1시간에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리를 '돌려' 앉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하며 끝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국의 게이머들이 얼마나 이런 종류의 문화에 목말라 있는지 실감하게 됐다. 이것은 마땅히 문화라는 것을 즐길 공간을 제공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했지만, 게임이 너무 좋았던 그들은 이제 끊임없이 경쟁하고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려 싸우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남들보다 좋은 아이템을 확보하기 위해 PK를 마다 않는다. 하지만 울펜 랜파티가 끝난 뒤 게시판을 가득 메우는 후기들은 "정말 즐거웠다" "앞으로도 이런 건전한 행사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직원들과 함께 후기들을 읽어보면서 나는 뿌듯함과 더불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PC게임은 패키지를 한 번 파는 것이 다지만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공식 서버를 열거나 랜파티를 개최하는 것은 우리 게임을 구매한 게이머들을 위해 '놀이터'를 열어주는 것이고, 우리가 게이머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게이머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 게임회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앞으로 다른 회사에서 랜파티라는 형식으로 행사를 열더라도, 수익모델이나 제품 홍보라는 측면이 아니라 게임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으로 준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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