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는 `Player killing`의 약자로 온라인 게임 상에서 상대의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아무 이유없이 단순히 재미 삼아 자신보다 약한 캐릭터를 가진 유저들을 상대로 무분별한 PK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PK가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에서는 자주 발생한다.
많은 PK는 다툼에서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먹자(다른 사람이 죽인 몬스터에서 나온 아이템을 가로채는 행위)와 몹 스틸(다른 사람이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를 빼앗아 죽이는 행위) 등과 관련된 분쟁이다. 처음에는 ‘스틸이니’ ‘실수니’ 하며 싸우다가 결국엔 오해를 풀지 못하고 ‘칼’을 들어 ‘피’를 보고야 마는 경우다.
이 경우 당한 사람이나 행한 사람이나 나름의 정당성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인간 생활에서의 다툼과도 비슷하다. 당한 사람은 복수를 다짐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복수가 힘든 경우에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양 진영의 패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실 이 싸움은 양쪽 다 손해나는 싸움임에는 분명하다. 경험치나 아이템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경우는 경험치를 잃는 경우도 있고, 이겼다고 해도 물약 등의 소모가 있을테니 실질적인 이득이 생기지는 않는다.
‘온라인 게임에서 PK는 좋은 게임 요소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PK는 좋지 않다’ ‘PK는 제재해 달라’고 말할 테고, 개발사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제재를 계획하고 있다거나 이미 실행중에 있을 것이다.
사실 PK를 시스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개발자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쉬운일이다. 아예 PK라는 것을 게임 플레이에 넣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PK가 싫다면, 많은 게임들에서 제공하고 있는 Non-PK 서버(PK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서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옵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Non-PK 서버는 인기가 없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개발사에서도 Non-PK 서버를 늘릴 이유가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 류의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온라인 RPG, 특히 전투가 중심인 게임에서 PK는 플레이어간의 자연스러운 인터랙션(interaction)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퀘이크류의 FPS 게임에서의 멀티플레이는 오로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목표이며(CTF와 같은 게임 옵션도 있지만 주되게하는 Death-match의 경우에는 그렇다), 국민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타크래프트류의 RTS 게임도 상대방이 건설한 건물과 유닛들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다.
유독 온라인 RPG에서만 PK가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무얼까? 일단 온라인 RPG에서는 아바타(avatar)와 플레이어간의 동일시가 강화된다는 점이다. 온라인 상에서 성장하고 있는 캐릭터는 마치 자기의 분신과 같아서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죽는 것은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죽는 것과는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게 된다(반대로 플레이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두번째로 일반적인 Multiplay 게임에서의 전투의 승패가 플레이어의 기술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반면에 온라인 RPG에서는 캐릭터의 레벨이나 아이템에 대부분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졌을 때 ‘나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반면 온라인 게임에서 죽는다면 분한 마음이 들게 된다.
PK를 시스템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자유도를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부자연스럽다. 가상 세계의 체험이라는 온라인 RPG의 장점도 함께 훼손된다. 현실 세계에 비추어 본다면 소수의 범죄자들을 강력히 제재하기 위하여 모든 일반인들의 자유를 제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렇게 운영되는 실제의 국가에서도 실제의 게임상에서도 대답은 `No`이다. 현실에게 가능하지 않은 ‘악인’을 플레이 해 볼 수 있고, 자신의 거주지역에 문제를 일으키는 ‘악인’을 퇴치할 수 도 있는 것이 일인용 게임에서는 해 볼 수 없는 온라인 RPG의 재미인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현재의 문제는 자유로운 PK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보다는 PK는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해주는 반면 사람들이 그에 대한 사회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그다지 노력을 하지 못한데 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개발자의 몫이라 생각되는데, PK를 시스템적으로 지원하여 자유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그에 따르는 부가 시스템, 자연스런 유저 커뮤니티에서의 ‘범죄자’ 제재방법, ‘범죄자’들의 커뮤니티 형성방법에 대한 시스템들도 함께 지원하여 온라인 세계상에서 개연성 있는 PK, 즉 PK를 게임 플레이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PvP는 Player vs Player의 약자로 국내보다는 북미권에서 많이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PK보다는 PvP가 플레이어간의 게임플레이라는 측면을 내포하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은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주는 게임이다. 사람들이 함께하는 플레이의 축을 크게 둘로 나누면 ‘협동’과 ‘경쟁’이다. 전투 중심의 RPG에서 경쟁의 정점인 PvP를 포기한다는 것은 함께하는 즐거움의 커다란 한 축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국내 온라인 RPG 게임에 대해 ‘PK 중심 플레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어떻게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수년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단순한(개발자는 상당히 힘들여 제작했더라도) AI 코드와 경쟁(전투)하며 수년간 재미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나라의 문화는 어울리는 문화이고 그만큼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 어울려 ‘경쟁’과 ‘협동’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를 우리나라가 앞서 개발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은 국내 온라인 게임에서 일반화 되다시피 한 ‘공성전’은 플레이어간의 ‘협동’과 ‘경쟁’의 플레이를 집약한 대표적인 게임 플레이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DAOC(Dark Age of Camelot)의 렐름전도 이러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을 정해서 길드원들의 힘을 결집시켜 전쟁을 하는 공성전에 비해 삼삼오오 모여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특별한 제약 없이 상대국을 침공할 수 있는 DAOC의 방식이 서구적인 문화 취향에 더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온라인 RPG에서 PvP 플레이는 일인용 RPG와는 차별되는 MMORPG의 독자적인 영역이며 이것이 강화되는 것은 온라인 RPG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좋은 방안이라 생각된다. 다만 개발자는 유저들에게 무책임한 자유를 주기 보다는 개연성있고 공정한 시스템을 함께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표적인 딜레마인 ‘레벨 높은 캐릭터의 독주’가 플레이어가 형성한 사회 조직적인 권력에 제한될 수 있다면 실제 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다양한 커뮤니티가 게임상에서 상보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함께 플레이함으로써 더욱 무궁무진한 재미가 생기는 온라인 RPG를 개발하는 것이 필자의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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