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내선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만화방 세대입니까, 아니면 PC방 세대입니까? 저는 그 과도기적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저는 공강시간을 학교 앞 만화방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리는 조용한 만화방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지곤 했지요. 그러나 어느 날부터 만화방 자리를 PC방이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제 발걸음도 주로 PC방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인기 온라인 게임 리니지, 바람의 나라, 레드문의 원작자들을 취재했습니다. 세 게임 모두 여성 작가들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리니지는 신일숙씨, 바람의 나라는 김진씨, 레드문은 황미나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세 사람 모두 만화계에선 특급 대우를 받는 작가들입니다.
만화잡지들이 대개 주간지로 나오기 때문에, 마감시간이 걸린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모으기는 어려웠습니다. 각기 따로 만날 수밖에 없었죠.
◆ 디지털 지수가 높은 '바람의 나라' 김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김진씨였습니다. 바람의 나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온라인게임의 시초입니다. 그녀는 컴퓨터 모니터로 TV를 볼만큼,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96년 패키지게임 창세기전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만화를 줄거리도 없는 온라인게임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별로 주저하지 않고 선뜻 응했다고 합니다. 이 분야에 깨어있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김씨는 바람의 나라가 게임으로 처음 나왔을 때, 잡지 마감을 놓칠 만큼 깊이 빠졌다고 합니다. 한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10시간씩 꼼짝 않고 게임만 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잡지 연재를 많이 하고 있는 요즘은 일부러 게임을 피하는 중입니다.
◆ 온가족이 '레드문' 게임에 빠진 황미나씨
일부러 게임을 피하는 김진씨와 달리 황미나씨는 적극적으로 게임에 빠지는 스타일입니다. 그녀는 서울 영등포에서 레드문 전용 PC방을 운영하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빠도 잠실에서 PC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레드문 전용이죠.
레드문은 철저한 시장 조사 끝에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만화에 문외한이었던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이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게임의 성공을 보고, 서울 시내 만화방을 돌아다니며 조사한 끝에 선택한 것이죠. 황미나 원작이라는 이름 덕분에 레드문은 출시 초부터 관심을 모았습니다.
게임 개발 때부터 관여를 해온 황씨는 지금도 수시로 게임에 접속해 사용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습니다. 게임 안에서 채팅을 즐기는 그는 얼마 전 PK(Player Kiling,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 캐릭터를 죽이는 일)를 당한 한 사용자로부터 "왜 이런 게임을 만들어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절규를 들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레드문에 대해 원작료 대신 게임이 올리는 수익에 따라 인세를 받고 있습니다. 대개 원작료만 받는 관례를 깬 그의 사례는 동료 만화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전문가 실력 자랑하는 게임매니아 '리니지'의 신일숙
활달한 성격의 황미나씨를 만나고 1시간 뒤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신일숙씨를 만났습니다. 탁구대가 놓여있는 황씨 작업실과 달리, 신씨의 작업실은 흰색톤으로 차분히 정돈돼 있었습니다.
게임 리니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용조용하던 그는 캐릭(캐릭터), 렙(레벨), 맵(지형도), PK 등의 용어를 섞어가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니지에서 그의 레벨은 고급 수준인 46이라고 합니다. 제작사측에서 예우 차원으로 레벨을 높여준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보통 매니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레벨1부터 시작한 그는 초고속망도 아닌 전화선을 이용해 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 작가의 세계관을 지켜주는 게임에 매력 느껴
이 세 명의 만화가들은 모두 자신이 만든 만화가 게임으로도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원작만화들이 독자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게임화에도 상당한 기대와 부담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저는 오히려 줄거리도 없이 모든 사용자가 주인공이 되는 온라인게임이 더 심한 '훼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작가의 세계관은 그대로 지켜주는 게임이 더 매력있다고 하더군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비해, 게임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만화계와 게임계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한 이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박내선 기자nsu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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