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미 각종 정보와 데모 게임을 통해 이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식 버전을 접해본 결과 MOH의 완성도와 스케일은 기대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고, 플레이를 시작하면서 금새 MOH의 매력에 압도되었다.
▶ 영화적 스펙터클을 성공적으로 재현
MOH가 주목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그대로 게임으로 만든 것 같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만든 드림웍스의 게임사업부였던(지금은 EA에 흡수된) 2015에서 게임을 제작했기 때문에 영화의 테크닉과 스케일은 MOH에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MOH는 이미 작년 5월에 있었던 E3쇼에서 플레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부터 게이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오고 있었다. 동영상은 게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 오마하 비치의 독일군 진지 점령 과정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긴박감 넘치는 카메라워크를 3D 그래픽으로 생생히 묘사해 “과연 이것이 게임인가?” 할 정도의 충격을 전해줬던 것이다.
MOH는 현존 최강의 3D 게임엔진으로 대접받고 있는 id소프트웨어의 퀘이크3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퀘이크 엔진은 사실적인 물리 모델과 탁월한 렌더링 기능으로 뛰어난 비주얼 액션을 구현하는 바탕이 되는데 MOH는 이를 이용, 2차대전 당시 사용됐던 M1 소총이라든가 톰슨 기관총 등의 타격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액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도한 광원효과나 거울같은 텍스처 반사 효과를 최대한 배제해 누런 색깔의 군복이나 팬저파우스트의 폭발 장면 같은 비주얼을 의도적으로 수수하게 처리하여 역설적으로 더욱 사실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오프닝 동영상은 역시 오마하 비치의 전투장면이 테마가 되는데 용기와, 리더십, 희생 등 전장에서 군인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엄숙한 음악과 함께 열거하면서 처절한 상륙작전의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변으로 달려가는 상륙정에 탄 연합군 병사들의 무거운 표정, 진지를 지키기 위해 기관총에 탄약을 장전하는 독일군의 모습, 상륙정의 도어가 열리면서 발 한 번 내딛지 못하고 포화에 무참하게 살육되는 병사들의 죽음에서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게이머의 흥분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 엄청난 희생 속에 마침내 독일군의 벙커에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페이드 아웃되는 동영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MOH는 만족스럽다.
▶ 막무가내로 쏘아서는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없다
MOH의 무대는 2차대전의 실제 격전지이다. 주인공은 마이크 파월이라는 미군 OSS(전략정보국) 소속의 중위. 게이머는 파월 중위의 역할을 맡아 북아프리카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장소에서 침투, 포로구출, 저격, 주요시설 파괴 등 특수 임무를 완수해내야만 한다. 임무가 끝날 때마다 공적에 따라 훈장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완벽하게 임무를 마쳐야만 군인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공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요시간이 우선 짧아야 한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적을 사살했는가, 발사된 탄환의 개수와 적중률은 얼마인가, 머리와 상반신 하체 등 어느 부위에 가장 많이 명중시켰는가에 따라 공로가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게이머는 보다 신중하게, 총알 한 발 한 발을 아껴가면서 신속하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한 번 엔딩을 보고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했던 미션이라도 좀 더 나은 방법으로 클리어 해보는 재미를 안겨주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 환상적인 사운드, 인공지능도 최고
국내 게임들이 간과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아마 사운드가 아닐까 한다. 사실 사운드는 그래픽 이상으로 게임의 몰입감을 높이는 중요 부분이다. MOH는 이 사운드 분야에 특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한데, 무기가 발사될 때 나는 총격음이라든가 동료들이 외치는 고함소리(듣고 있으면 실제 전우로 느껴질 정도다), 주변에 탄환이 박히면서 나는 소리 등을 헐리우드 영화의 수준으로 정교하게 샘플링해 들려주고 있다.
여기에 영화적 분위기의 오케스트라 배경음악이 적절하게 배치돼 긴장감을 고조시켜주는 현악기 소리, 엄숙함을 표현하는 관악기 소리 등이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청각적 체험을 제공해 주고 있다. MOH의 사운드는 아카데미 음향효과상을 수상한 바 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사운드 팀이 직접 담당해 게임사상 유례없는 화려한 음향효과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적들의 A.I.(인공지능)도 기존의 게임들에선 볼 수 없었던 동작들을 가능케 하고 있는데 교전이 벌어졌을 때 분산되어 여러 방향에서 주인공을 습격하거나 엄폐물을 최대한 이용해 게이머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등,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오는 타 게임들의 악당들에 비해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면대치시 몸은 은폐시킨 채 총구만 빼꼼이 내밀어 사격을 가하는 적군을 보면 탄복을 금치 못할 것이다(그 상태에서도 명중률은 상당하니 방심해선 안된다). 적군의 러쉬도 일정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과감하게 들어와 당황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기다림에 지쳐 역러쉬를 가는 순간 저격을 가하는 등, 예측불허의 타이밍으로 싱글플레이가 마치 멀티플레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 승전국의 거만함, 게임으로서는 모자람 없어
MOH는 오락성으로 볼 때 단연 최고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고 같은 엔진과 같은 시대적 배경으로 종종 비교대상이 되는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과 함께 놓고 봤을 때 MOH의 완성도가 좀 더 낫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물론 울펜슈타인도 훌륭한 게임이다). 스토리와 그래픽, 사운드, 연출력, 타격감 모두에서 MOH는 기존의 어떤 액션 게임들보다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여 영원하라~”는 메시지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이 게임이 보여주는 내용이 다소 껄끄럽겠지만 게임으로서의 작품성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MOH는 최고의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2002년 게임계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MOH는 액션 게임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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