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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간: 이루실’, 넥슨 셀렉트 올은 어떤 가능성에 주목했나?

 

 
좋은 게임을 직접 만들고 서비스하는 것은 분명한 게임사의 본분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나왔음에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작품을 다시 한번 시장과 게이머들 앞에 소개시켜주는 것 또한 게임사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넥슨이 새롭게 선보인 퍼블리싱 브랜드 '셀렉트 올(Select all)'은 바로 이 지점에 초점을 맞춘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셀렉트 올은 게임이 가진 가능성을 바탕으로 시장 전략 수립부터 실행까지 지원하고, 유망 게임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브랜드로, 넥슨은 이를 데이터 기반의 게임 검토 프로세스와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를 결합한 신규 퍼블리싱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사례로 선택된 작품은 빌리빌리가 개발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서브컬처 수집형 3D RPG '히간: 이루실(Higan: Eruthyll)'​이다.
 
히간: 이루실은 2023년 4월 중국 시장에 먼저 출시했지만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영미권과 아시아 권역 일부 지역에서 소프트론칭 형태로 서비스를 이어나가다가 2025년 12월에 리메이크에 가까운 대형 업데이트를 내놓으며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업데이트 이후 히간: 이루실은 게임의 구조나 성장 피로도 및 비즈니스 모델 측면의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면서 상품성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넥슨은 해당 버전을 국내 시장에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히간: 이루실은 과연 어떤 특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셀렉트 올의 첫 타자로 등판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게임조선에서는 현행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빌드를 통해 세계관, 연출, 전투 시스템을 직접 확인해봤다.
 

 
탈출 불가능한 악몽 속에 갇힌 이들을 구출하는 주인공 일행 '주머니쥐 극단(Gopher Troupe)'
 
실제 게임 내의 메인 스토리에서도 일상 파트는 현실 세계, 전투 및 사건 해결 파트는 판타지 랜드에서 이뤄진다
 
히간: 이루실은 마법과 과학 기술이 공존하는 가상의 행성 이루실(Eruthyll)​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기본 분위기는 다크 판타지에 가깝지만 빈티지풍 아트 스타일이 가미된 마도공학물의 색채가 매우 강하다.

게임 내 서사는 '현실 세계(Real World)'와 이세계 '판타지 랜드(Fantasy land)'​를 오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세간에서 판타지랜드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낙원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한 번 빠져들면 자력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악몽의 세계에 가깝다. 판타지랜드의 영향은 현실에도 침투하며,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지고 현실은 점차 비틀린다.

플레이어는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작중에서는 극단의 단장(Director) 역할을 맡게 된다. 단장은 다양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극단을 이끌고 판타지랜드에 갇힌 이들을 구출하며 현실을 잠식하는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설정이 단순한 장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간: 이루실에서 극단은 세계관과 연출을 관통하는 핵심 장치다. 작중 인물들은 판타지랜드가 현실을 침식하는 상황을 억제하기 위해, 자신들이 겪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무대 위의 공연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한다. 다시 말해 전투와 모험은 단순한 임무 수행이 아니라, 악몽을 하나의 극으로 치환하고 그 무대를 끝내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덕분에 히간: 이루실의 분위기는 멸망 직전의 세계를 구하는 일반적인 작품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현실과 꿈, 무대와 전장, 배우와 전투원의 경계가 뒤섞이면서 작품 전반에는 몽환적이고 연극적인 색채가 진하고 연출 측면에서도 이러한 성격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지와 같은 '상황'보다는 '캐릭터' 그 자체에 집중한 스킬 연출
 
강격 판정의 공격으로 적을 마무리하면 벽으로 날아가 박히며 무대에 금이 가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히간: 이루실은 컷신과 스킬 연출에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장면을 무대화해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캐릭터의 스킬은 전투 공간 안에서만 작동하는 기능적 연출에 머무르지 않고, 별도의 구도와 카메라워크를 통해 독립된 장면처럼 구성된다. 전투의 흐름과 스킬 컷신이 순간적으로 분리되는 듯한 방식은 다소 과감하지만, 그만큼 캐릭터가 가진 개성과 ‘보는 맛’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특히 카메라워크가 굉장히 역동적이다. 캐릭터가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카메라는 전투 현장보다는 특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액션의 질감을 부각시킨다. 이런 방식은 수집형 RPG에서 중요한 “내가 뽑은 캐릭터를 보고 즐기는 재미”와 잘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우아한 디자인의 옷과 단안경을 착용한 클로아는 생긴 것처럼 고풍스럽고 이지적인 말투와 행동을 보여준다
 
누가 봐도 '바보와 허당의 충돌'이라는 개그씬임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안정적인 연출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다소 심심하지만, 그만큼 정석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점도 눈에 띈다. 히간: 이루실의 캐릭터들은 한눈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파격적인 디자인보다는 생김새만 봐도 언행과 성격, 전투 스타일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직관적인 조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캐릭터성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의외성을 앞세우는 최근 서브컬처 게임들과 비교하면 다소 무난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처음 접하는 이용자가 캐릭터를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장점도 있다. 외형, 말투, 역할군, 스킬 연출이 비교적 일관된 방향을 향하고 있어 캐릭터의 첫인상과 실제 사용감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다.

특히 ‘극단’이라는 작품의 콘셉트와 맞물리면 이러한 캐릭터 설계는 나름의 설득력을 얻는다. 각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자신의 배역을 수행하는 단원처럼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비틀린 성격보다는 명확한 역할과 이미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귀여운 캐릭터는 귀여운 방식으로, 성숙한 캐릭터는 성숙한 방식으로, 신비로운 캐릭터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무대 위에 오른다.
 
각 캐릭터는 단순한 전투 유닛이 아니라 저마다의 배역과 개성을 가진 단원으로 배치되며, 2.0 리메이크를 거치며 입화 디테일과 의상 재질, 외형 스킨 완성도 역시 보강됐기 때문에 귀엽고 장난스러운 캐릭터부터 부드럽고 신비로운 캐릭터, 성숙한 분위기의 캐릭터까지 폭넓은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
 
도감을 둘러 보니 50개의 다양한 캐릭터 중에 남캐는 인간 3명에 수컷으로 추정되는 짐승 하나만 확인되고 있었다
 
2번째 전투 스킬의 경우 효과가 추가되는 대신 코스트가 무거워지거나 기본 전투 스킬과 전혀 다른 효과를 보여주기도 

게임의 기본 틀은 전형적인 서브컬처 수집형 RPG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속성과 역할군이 배정된 캐릭터들로 덱을 구성하고 이들을 활용해 스테이지를 공략한다. 각 캐릭터는 기본 공격, 지속 효과, 전투 스킬, 궁극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성장 단계에 따라 전투 스킬의 선택지가 확장되는 구조를 갖는다.

다만 전투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단순한 자동 전투형 수집 RPG와는 차이가 있다. 히간: 이루실의 전투는 실시간 3D 전투와 카드 전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전투 스킬은 카드 형태로 손패에 들어오고 플레이어는 팀 전체가 공유하는 코스트를 고려해 어떤 스킬을 어느 타이밍에 사용할지 판단해야 한다. 

이 구조는 단순히 캐릭터의 육성 수치만으로 밀어붙이는 방식과는 다른 재미를 만든다. 같은 캐릭터를 사용하더라도 스킬 카드가 손패에 들어오는 순서, 코스트 관리, 적의 공격 범위, 아군의 배치에 따라 전투 양상이 달라진다. 즉, 수집형 RPG 특유의 캐릭터 조합과 성장 재미에 카드 게임식 판단 요소가 더해진 셈이다.
 
이대로 스테이지를 진행하면 좌측 후열에 배치해둔 캐스터는 신명나게 두들겨 맞고 시작하게 된다 
 
선제 공격이 날아드는 구역을 피하고 버프 효과를 제공하는 발판에 맞춰 단원을 재배치하도록 하자

포지셔닝의 특이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많은 수집형 RPG는 전열, 중열, 후열 혹은 3X3 타일 배치를 통해 캐릭터를 ㅅ헤울 수 있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고 스테이지가 요구하는 전투력과 상성, 기믹만 맞추면 오토 플레이로도 도전 및 경쟁을 제외한 대부분의 콘텐츠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분재 게임’에 가까운 감각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히간: 이루실은 오토 배틀러를 연상케 하는 육각 타일 기반의 거대한 전장 구성을 활용한다. 캐릭터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투 초반의 흐름이 달라지고, 특정 타일에는 버프 효과가 부여되기도 한다. 여기에 적의 선제 공격 범위나 광역기가 떨어지는 지점이 미리 표시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전투 시작 전부터 어느 위치에 어떤 캐릭터를 세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지점은 히간: 이루실이 가진 중요한 차별점이다. 수집형 RPG의 편성 재미가 “누구를 데려갈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히간: 이루실은 여기에 “어디에 세울 것인가”와 “어떤 순서로 스킬을 쓸 것인가”를 더한다. 캐릭터 수집과 성장, 카드 운용, 배치 전략이 맞물리며 전투가 보다 입체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탱커를 전열에 세우고 딜러를 분산배치하는 이 대열은 부채꼴 브레스 한방으로 파티 전체가 터질 수 있지만
 
 탱커와 다른 단원을 대각 양 끝에 배치하는 대열만으로 전투의 난도가 확연히 쉬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히간: 이루실이 완전히 새로운 장르적 충격을 주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캐릭터 수집, 속성 상성, 성장 재화, 스테이지 공략 등 큰 틀은 기존 서브컬처 RPG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캐릭터성 역시 강렬한 반전이나 밈화에 최적화된 독특함보다는 첫인상과 역할이 명확한 정석적인 매력에 가깝다.

다만 그 익숙한 구조 위에 얹힌 연극적 세계관과 무대화된 연출, 실시간 3D 전투와 카드 전술, 육각 타일 기반 배치 전략은 히간: 이루실을 단순한 양산형 수집 RPG와는 다른 위치에 세운다. 특히 컷신과 스킬 연출에서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은 "수집한 캐릭터를 보고 즐기는 재미"를 중시하는 이용자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요소다.

리메이크에 가까운 대형 업데이트를 거치며 성장 피로도와 서비스 구조를 손본 점도 국내 서비스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초반 버전에서 드러난 한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차례 시장의 평가를 받은 뒤 재정비된 버전을 기반으로 다시 출발한다는 점에서 셀렉트 올의 취지와도 맞아떨어진다.

결국 히간: 이루실은 “처음부터 완성형 흥행작으로 검증된 게임”이라기보다는, 뚜렷한 개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작품에 가깝다. 넥슨이 셀렉트 올을 통해 이 게임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국내 서비스에서 관건은 '이 가능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극적 세계관과 캐릭터 연출의 매력을 잘 살려낸 리메이크의 개선점을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운영이 더해진다면 히간: 이루실은 단순한 재출시작을 넘어 셀렉트 올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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