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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자의 승리 뒤에 숨은 언성 히어로, 메이플스토리가 팬들에게 건넨 헌사 '디어 마이 히어로'

 

 
히어로(Hero)와 히로인(Heroine)은 일반적으로 '영웅'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서사의 주인공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두 의미가 같은 단어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을 다루는 치유물이나 옴니버스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창작물은 특별하고 남다른 면모를 지닌 인물을 중심에 세운다. 다시 말해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곧 영웅'이고 '영웅은 곧 주인공'이라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깔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플스토리'의 중편 극장판 애니메이션 '디어 마이 히어로'의 이야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소재였다. 메이플스토리 1부에 해당하는 메이플 월드 파트의 최종국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주인공은 플레이어와 같은 영웅 '대적자'가 아니라 영웅이 되고 싶었던 메이플 연합의 일개 병사 'NPC'였기 때문이다.
 
 
극의 주인공 '아이단'은 플레이어인 대적자를 동경해 시그너스 기사단에 입단한 인물이다. 입단 직후 공식 행사에 지각하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다 교관에게 찍히는 등 생활 면에서는 어딘가 어설픈 고문관 병사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기사단 내에서도 전투력 하나만큼은 출중한 인물로 묘사되어 영웅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 아이단이라는 캐릭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마 다른 작품이었다면 아이단은 평소에는 허술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 몫을 해내는 전형적인 성장형 주인공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적자가 아니었고 그가 마주한 전장은 연합의 일개 병사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작품은 약 40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서 아이단이 끝내 대적자와 닿을 수 없는 격차를 느끼고 좌절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낸다. 이 때문에 중반부까지는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디어 마이 히어로'는 극약처방에 가까울 만큼 강한 희생의 연출을 통해 아이단의 성장을 밀어붙인다.

특히 그의 동기들이 희생되는 장면은 아이단에게 잔혹한 현실 인식의 계기로 작용한다. 그는 자신이 결코 영웅담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조연조차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순간 아이단은 비로소 영웅에 가까워진다. 대적자처럼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알량한 영웅심을 내려놓고 대적자가 검은 마법사에게 향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발판이 되기를 자처하며 '이름을 남기기 위한 희생'이 아니라 '누군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희생'을 택하면서 아이단은 비로소 '히어로'라 불릴 자격을 얻는다.
 

실제로 극중에서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거인의 심장'으로 통하는 길을 열고자 했던 아이단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대적자 일행이었다. 그리고 대적자가 아이단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작품의 감정선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작중 대적자로 등장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모습은 다양한 직업으로 묘사되지만 아이단에게 경례를 올리는 장면의 대적자가 전사 직군의 상위 직업 중 하나인 '히어로'라는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아이단이 동경했지만 끝내 닿을 수 없다고 여겼던 존재가 '히어로'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제목과 주제는 한 번 더 맞물린다.

아이단이 현실의 벽 앞에서 쌓아온 무력감이 아니라 처음 대적자를 보고 품었던 순수한 동경을 되찾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대적자의 경례에 대해 다시 맞경례를 올리며 승리를 기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되고 싶어 허둥대던 병사가 아니라 비록 역사의 전면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승리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사실 '디어 마이 히어로'는 러닝타임이 짧다는 작품 외적인 한계로 인해 전개 속도가 다소 빠르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또한 최소한 메이플스토리 1부에 해당하는 메이플 월드 서사와 검은 마법사 결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진입 장벽도 존재한다.

특히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적자에게 힘을 보태기는커녕, 내부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며 발목을 잡았던 '블랙헤븐' 스토리의 일부가 PV 단계부터 등장했던 만큼 이를 연합 병사의 시선에서 재해석하는 갈등 구조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단이라는 인물이 전장의 이름 없는 병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합 내부의 균열과 현장의 무력감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 여지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어 마이 히어로'가 잘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메이플스토리의 이야기를 오래 따라온 이용자들을 겨냥한 작품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진입 장벽 역시 단순한 단점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세계관과 결말의 무게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시선으로 검은 마법사 결전 직전의 전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결국 '디어 마이 히어로'는 메이플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세계를 구한 영웅인 '대적자'에게 바치는 경의인 동시에, 그 영웅이 마지막 전장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에 가깝다. 아이단은 끝내 대적자가 되지 못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조연조차 되지 못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더욱 선명한 울림을 남긴다.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반적인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디어 마이 히어로'는 이미 메이플스토리를 알고 사랑해온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 감정의 이유를 제시한 작품이다. 대적자의 승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 승리 뒤편에 있었을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나의 영웅'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메이플스토리라는 긴 서사를 함께 지나온 이용자들에게 건네는 작지만 진심 어린 답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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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현 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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