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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그는 하루종일 게임만 생각한다. 게임광 K씨의 일일

작성일 : 2017.09.05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 어떤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K씨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는 눈 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루를 게임과 함께 한다. 쉬는 날에는 밖에서 야외활동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즐기지도 않다 보니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다. 쌓여가는 건 플랫폼의 게임 개수와 플레이 시간 그리고 도전과제뿐이다. 그에겐 현실이 곧 게임이고 게임이 곧 현실이다.

그의 하루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게임이 그렇게 좋다는 자칭 게임광 K씨의 하루를 밀착 취재해봤다.

■ 오전 7시, K씨의 집

K씨는 일찍 일어난다. 그의 출근 시간은 9시까지이다. 씻고 아침 식사를 해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그가 여유 있게 일어나는 것은 지각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 단지 온라인 게임과 연동되는 컴패니언 앱을 통해 지난 밤 잠들기 전 일감을 건네받은 추종자들이 일을 다 끝마쳤을 테니 다음 일감을 던져주기 위해서다.

평소에 일을 그렇게까지 근면 성실하게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남한테 일을 시키는 건 아주 엄격하다. 블랙기업 악덕상사 저리 가라 수준이다. 그래도 추종자들은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한다. 낮에는 업무 때문에 진척도를 확인할 시간이 별로 없을테니 최대한 힘들고 시간이 오래걸리는 일감만 골라서 게임 속 추종자들에게 쥐어주고 K씨는 출근길에 나선다.

■ 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



모처럼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겼다. K씨는 간만에 모바일 MOBA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초반에 승기를 잡던 아군이 거짓말같이 쓰로잉을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

나이는 30줄에 다가섰지만 마음만은 페이커인 K씨, 딜러를 들고 캐리 좀 해보겠다고 한발짝 더 내밀었다가 순식간에 물려서 터져버리고 그대로 한타를 대패하며 전적에 1패를 추가한다.

K씨는 패배로 끝난 경기의 뒷맛이 씁쓸하긴 하지만 '졌지만 잘싸웠어, 아름다운 라인전 했잖아? 난 충분히 잘한 것 같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러지 않으면 멘탈에 타격이 와서 회사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

■ 오전 9시, 회사



출근 후 K씨는 신속하게 앱플레이어를 구동한다. 요새 유행한다는 모바일 RPG게임을 돌려놓기 위해서다. 기술의 발전 덕분인지 요새 웬만한 게임은 퀘스트부터 육성과정까지 모두 자동사냥을 지원한다.

요새 모바일 게임 공식 카페에서는 개발자 뺨치는 수준의 게임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이 좋은 사냥터 같은 명당 정보를 잘 찾아내기 때문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온종일 사냥하도록 시키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그런 명당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분란의 땅이기도 한지라 중간중간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K씨는 칸막이가 없는 회사 특성상 조금만 딴짓을 하면 상사에게 발각될 것이 걱정이라 그냥저냥 사람 잘 안 오고 조용한 곳에 캐릭터를 세워놨다. 아마 하루가 다 지나면 명당에 간 것만큼은 못하더라도 K씨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경험치와 재화를 벌어놓을 것이다.

■ 오후 1시, 편의점

점심은 제대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평소 즐겨 하는 퍼즐 게임의 게릴라 이벤트가 마침 점심시간에 열리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게릴라 이벤트 한 번을 못 챙기는 게 타격이 크다는 게 납득은 잘 안되지만 어차피 무과금으로 플레이하는 입장에선 뭐라도 더 준다는 사실이 K씨에겐 감지덕지다.

전자레인지로 데워둔 도시락이 조금씩 식어가고 미리 물을 부어둔 컵라면도 서서히 불어가지만 K씨는 게임 삼매경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 오후 7시, 퇴근길 버스



퇴근길에는 역시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이 제격이라고 K씨가 말한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는 시간대가 겹치다 보니 이런저런 좋은 매물들이 많이 올라오는 게 참 좋다고 한다.

애들이 뭔 게임이냐는 고리타분한 마인드는 K씨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K씨에게 있어 학생들은 같은 게임을 즐기는 선의의 경쟁자인 동시에 경제관념이나 물정이 살짝 어두워 좋은 매물을 헐값에 팔아주는 아주 좋은 스폰서이기 때문이다.

신이 나서 설명하던 K씨는 이내 이적 시장을 확인하다가 좌절한다. 좋은 매물이 광속으로 쓸려나가서 항상 남는'우리 형, 킹갓두'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 오후 9시, PC방



친구들과 채팅 프로그램을 켜고 FPS 게임을 한다. 10년지기 친구들이랑 플레이하면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다. 누군가는 캐리병에 환장하여 수비를 해야 할 상황에 뛰쳐나가고 누군가는 쓸데없는 행동으로 자신과 팀의 위치를 발각시키는 트롤링을 하며 조금만 전황이 불리하면 KDA를(킬/데스/어시스트) 수치를 관리하기 위해 아군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사람도 있다.

최근 지원 병과를 플레이하는 K씨는 열심히 전황을 파악하고 지휘를 하지만 친구들이 도통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조곤조곤 말하지만 얼마 안 돼서 욕설이 난무한다.

"A야, 화물 밀어"
"B야, 거점 지켜"
"C야, D야...."
"사람이 말 좀 하면 들어라, 이 !@#$%^&*()아"

K씨 생각으론 본인은 잘하는데 친구들이 못해서 항상 지는 것 같다. 결국 마지막엔 서로 시원하게(?) 욕을 해주고 게임이 끝난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내일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여서 파이팅을 외치고 새 게임을 할 게 뻔하다.

■ 오후 11시, K씨의 집

잠들기 전 플레이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의 공식 커뮤니티를 방문한다. 내일 적용될 업데이트 내용이 올라와서 난리도 아니다. K씨는 사실 해당 게임을 플레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알파 테스트 시절부터 플레이한 것처럼 게임전문가로 빙의해서 한바탕 논쟁을 벌인다.

실제로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는 패치 노트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즐거워서 게임 커뮤니티 활동을 도무지 끊을 수가 없다. 조금 반응을 보다가 금새 다른 떡밥으로 화제가 돌아가니 짜게 식어서 잠을 청한다.

자기 전에 K씨는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니 게임 관련 회사에 들어간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 에필로그

K씨는 얼마 뒤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적처럼 게임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이제 눈치 안 보고 회사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겠거니 부푼 기대감을 안고 출근을 하는 K씨

그리고 입사하자마자 신고식 비슷한 게 진행된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하필 본인이 가장 취약한 장르인 호러 게임을 시키고 있다. 그것도 빠져나갈 구석이 전혀 없는 VR기기까지 사용하고 있다.

K씨는 호러 게임을 하다가 심장마비 오면 '산업재해 처리가 되냐'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문득 전에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날 모 게임회사에서는 K씨의 비명이 떠날 줄을 몰랐다고 전해진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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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nlv116_654831 김삼거리
  • 2017-09-10 12:36:54
  • 저는 게임보다 던파조선 커뮤니티에서 글을보고 글을쓰는게 더 재밌는거같습니다.
  • nlv67 이쪽이다
  • 2017-09-10 13:12:18
  • ㅊㅊㅊ
  • nlv231_0251 엉털이
  • 2017-09-10 16:43:23
  •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한다는거 즐거운일이죠
  • nlv81 대검마제스티
  • 2017-09-10 19:46:27
  • 개인적으론 게임을 직업으로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직접해보면 생각이 바뀔 듯
  • nlv122_68547 소이리
  • 2017-09-10 20:11:23
  • 겜회사가 다들 게임만 하는게 아니긴하지... 그래도 겜싫어하는 부인은 없네... 주륵...
  • nlv222_0152 검마르
  • 2017-09-10 20:52:44
  • 앞으로도 쭈욱 호러게임 담당이 될 것 같으데요 :)
  • nlv12 Dicha
  • 2017-09-10 21:06:26
  • 너무 게임만해도.. 당장 던파 3시간만해도 질리는판국에ㅜㅜ
  • nlv105_354651 귀속말
  • 2017-09-10 22:58:09
  • 막상 아무리 좋아하던거라도 일이되버리면 스트레스받던데 화이팅!
  • nlv102_654981 삶은용
  • 2017-09-10 23:35:53
  • 하고싶은일이 좋기는 하지만..
  • nlv236_0256 조선검성
  • 2017-09-11 00:35:50
  • 인생을 즐겁게 사시는군요..인생 뭐 별거 있겠습니까..본인이 재미게 살면 되는거죠.
  • nlv19 붉은박쥐
  • 2017-09-11 03:21:13
  • 갸아아아아악
  • nlv52 오락초고수
  • 2017-09-11 12:06:51
  • 꼭 제얘기 하는것같네요
  • nlv107_876532 대수니
  • 2017-09-11 12:28:57
  • ㅂ럽습니다
  • nlv32 던지고또던짐
  • 2017-09-12 07:42:30
  • 정말 괜찮네요!!
  • nlv108_5481432 TRIPPY
  • 2017-09-12 15:35:22
  • ㅋㅋㅋㅋㅋ
  • nlv234_0254 넥슨병1신
  • 2017-09-14 01:21:23
  • 우리들의 모습...
  • nlv228_0158 천룡파미s
  • 2017-09-18 18:19:47
  • 게임은 게임으로 즐기는게 정신건강에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