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조뉴스

copyright 2009(c) GAMECHOSUN

게임조선 네트워크

주요 서비스 메뉴 펼치기

커뮤니티 펼치기

게임조선

[창간] 일요일 늦은 밤에 생각나는 게임...오래 기억되고, 결국 다시 찾는 게임

가

 

가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조금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분명 더 좋은 게임이 나왔는데, 예전에 하던 게임이 생각난다. 그래픽은 훨씬 좋아졌고 조작은 편해졌다. 로딩은 짧아졌으며 UI는 세련됐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기술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구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래된 OST 한 곡을 듣고 갑자기 게임을 다시 설치한다. 이미 엔딩까지 본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한동안 떠나 있던 MMORPG에 접속해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예전에 자주 가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지금 해보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다.
 
잘 만든 게임과 오래 기억되는 게임 사이에는 분명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픽이 좋고, 전투가 재미있고, 콘텐츠가 풍부하다. 최적화도 잘 되어 있고 UI도 편하다. 당연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게임을 잘 만드는 방법을 과거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쌓였고, 어떤 조작 방식이 편한지, 어떤 구간에서 이용자가 이탈하는지, 어떤 시스템에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지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장르가 인기인지, 어떤 캐릭터가 반응이 좋은지, 이용자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도 빠르게 파악한다. 게임이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은 계속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상하게도 흠잡을 곳 없는 게임을 만난다. 전투도 괜찮고 그래픽도 좋다. 콘텐츠도 충분하다. 무엇 하나 크게 잘못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잘못 만든 것은 아닌데, 굳이 이 게임이어야 하는 이유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반대로 플레이하다 보면 만든 사람들의 취향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게임이 있다.
 
 
전투 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한 흔적이 보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법한 설정을 끝까지 파고든다. 스토리 진행에는 전혀 필요 없는 NPC에게 굳이 긴 대사를 붙여놓고, 게임의 성패와는 크게 관계없어 보이는 사소한 상호작용에 이상할 만큼 공을 들인다.
 
누가 봐도 개발자가 좋아해서 만든 것 같은 부분이 있다.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이걸 만들고 싶었구나."
 
개발자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느껴진다. 게임 곳곳에 취향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임에 자꾸 눈이 간다.
 
꼭 완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불친절할 수도 있고, 어딘가는 덜 다듬어졌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기 힘든 게임도 있다. 그래도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분명하다.
 
어떤 개발자는 전투를 좋아한다. 그래서 적 하나의 움직임과 공격을 받아치는 감각을 끝까지 다듬는다. 어떤 개발자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플레이 시간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캐릭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또 어떤 개발자는 세계를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굳이 들어갈 필요 없는 골목까지 만들고, 이름 없는 NPC의 일상까지 고민한다. 게임을 만든 사람의 취향은 그렇게 게임의 어느 한 부분을 조금 과하게 만든다. 그 '과함'이 오히려 게임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물론 취향이 있다고 좋은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좋아해서 만들었다"는 말이 모든 문제를 면죄해주지도 않는다. 개발자의 고집 때문에 이용자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 본인들만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시스템이 실제로는 재미없을 수도 있다.
 
상업 게임이라면 시장을 외면할 수도 없다. 수십 명, 수백 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의 취향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자기 게임을 만든다'는 말을 하고 싶은 대로 만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왜 이 게임이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전투여야 하는가.
왜 이런 캐릭터가 필요한가.
왜 이 세계를 이런 방식으로 탐험해야 하는가.
왜 다른 게임에서 익숙한 방법을 놔두고 굳이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질문에 개발팀만의 답이 있을 때 게임은 자기 얼굴을 갖는다. 새로워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세상에 없는 장르를 만들어야 자기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없이 만들어진 턴제 RPG를 또 만들어도 된다. 익숙한 액션 게임을 만들어도 되고, 누군가 수십 번 다뤘던 판타지 이야기를 다시 꺼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왜 다시 만드는가다. 같은 재료를 가져다 놓고도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누군가는 턴제 전투에서 전략을 강조하고, 누군가는 캐릭터의 합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오픈월드에서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넓은 세계 곳곳에 이야기를 숨겨두는 데 집중한다. 장르가 게임의 이름을 정한다면 취향은 그 게임의 표정을 만든다.
 
그래서 개발자 인터뷰를 할 때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습니까?"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대단한 철학이 돌아올 것 같지만 의외로 출발점은 단순할 때가 많다.
 
어릴 때 이런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이 장르가 요즘 잘 나오지 않아서.
다른 게임을 하다가 이런 부분이 아쉬워서.
이런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몇 년의 개발 기간과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의 시작치고는 조금 싱겁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답을 듣고 나면 게임의 여러 부분이 갑자기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왜 이 시스템에 이렇게까지 집착했는지.
왜 특정 캐릭터의 이야기가 유난히 길었는지.
왜 굳이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게임을 플레이하며 막연히 느꼈던 제작자의 취향에 이름이 붙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취향이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전달되면 조금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플레이어도 게임을 자기 방식으로 기억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보스 하나를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마을 하나를 기억한다. 누군가는 캐릭터 한 명 때문에 게임 전체를 좋아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음악 한 곡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린다.
 
이때부터 게임은 기능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공격력이 얼마였는지, 어떤 아이템을 몇 개 모았는지, 당시 메타가 무엇이었는지는 대부분 잊는다. 대신 경험이 남는다. 처음 그 지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분위기. 도저히 못 이길 것 같던 적을 처음 쓰러뜨렸을 때의 기분. 좋아했던 캐릭터가 건넨 대사. 친구들과 몇 시간 동안 실패했던 던전. 게임이 만들어준 순간들이 기억 속에서 서로 붙기 시작한다.
 
아마 여기서 '잘 만든 게임'과 '내 게임이 된 게임'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잘 만든 게임에는 감탄한다. 내 게임이 된 게임에는 추억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은 이상하게도 추억이 생긴 곳을 다시 찾아간다. 몇 년씩 떠나 있던 MMORPG에 갑자기 접속하는 이유가 언제나 새로운 레이드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예전에 키우던 캐릭터가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친구들과 놀던 장소가 생각나서일 수도 있다.
 
싱글 플레이 게임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결말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면서도 다시 그 세계를 지나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게임에도 '기억률' 같은 지표가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출시 후 몇 년이 지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게임을 기억하는가. OST 한 곡에 장면을 떠올리는가. 후속작 발표에 오래전 플레이어들이 다시 몰려오는가. 다른 게임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작품을 기준으로 삼는가. 측정할 방법은 없겠지만 어쩌면 게임의 생명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숫자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오래 서비스되는 것과 오래 기억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몇 시간 만에 끝난 게임이 십 년 동안 기억에 남기도 한다. 반대로 수년 동안 매일 접속했던 게임인데 서비스를 그만두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간의 길이만으로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안에 무엇을 경험했느냐가 중요하다. 그 경험의 시작점에는 종종 개발자의 고집이 있다. 조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선택.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됐던 장면. 수익성과는 크게 관계없는 작은 콘텐츠. 모두가 한 번쯤 줄이자고 말했을 것 같은 설정. 개발 당시에는 낭비처럼 보였던 것들이 나중에는 그 게임을 설명하는 한 장면이 된다.
 
 
 
기술은 오래된다. 그래픽은 낡는다. UI는 시대에 뒤처지고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시스템도 언젠가는 흔한 것이 된다. 그러나 게임을 만들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는 의외로 오래 남는다.
 
그래서 잘 만든 게임만큼 '자기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를 응원하고 싶다. 유행을 따르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시장을 보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성공한 게임을 연구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하는 동안 자신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까지 잊지는 않았으면 한다.
 
데이터는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많이 하는지는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만든 이가 무엇에 가슴 뛰는지까지 정해주지는 못한다. 그 부분만큼은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이상하게도 좋아해서 만든 것은 플레이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조금 과하게 만들어진 전투에서. 쓸데없이 세세한 설정에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던 작은 연출에서. 게임 곳곳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만든 사람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런 게임은 쉽게 다른 게임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비슷한 장르도 있고 더 좋은 그래픽의 게임도 있지만, 정확히 그 경험을 다시 줄 수 있는 게임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돌아간다. 더 새로운 게임이 있고 더 편한 게임이 있는데도 가끔 그 게임을 다시 설치한다. 오래 서비스돼서가 아니라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남는 게임에는 대개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이게 잘 팔릴 것 같아서"라는 이유보다 조금 앞선 곳에 있는 것. "우리가 이런 게임을 좋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게임 전체에서 느껴지는 작품. 아마 우리가 몇 년 뒤에도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게임은 그런 게임일 것이다.

[김규리 기자 gamemkt@chosun.com] [gamechosun.co.kr]

ⓒ기사의 저작권은 게임조선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무단으로 기사 내용 전제 및 다운로드 링크배포를 금지합니다.

김규리 기자의

댓글 2

  • nlv157_2456 moont
  • 2026-09-14 16:34:57
  • 창세기전 서풍의 광시곡
  • nlv114_655846 Fellos
  • 2026-09-14 17:31:06
  • 저한테는 테일즈위버가 이런 게임인 것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