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조뉴스

copyright 2009(c) GAMECHOSUN

게임조선 네트워크

주요 서비스 메뉴 펼치기

커뮤니티 펼치기

게임조선

[창간] 계산기 대신 심장으로 빚어낸 세계, 우리가 저들을 응원하는 이유

가

 

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게임 업계에는 실패해도 괜찮은 게임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물론 누군가 몇 년 동안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이 무참히 망해도 좋다는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발자의 밥줄과 생계가 걸린 현실을 두고 실패를 낭만으로 포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확히는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이상한 짓’을 저질러볼 수 있는 게임, 안전지대 바깥으로 과감히 발을 헛디뎌볼 수 있는 시도가 업계 전반에 숨 쉬듯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게임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수백 명의 인력이 몇 년씩 달라붙고, 수백억 원의 자본이 투입되며, 출시 전부터 전 세계 동시 서비스를 준비한다. 한 번 띄운 배는 최소 몇 년간 순항해야 하기에 게임 제작은 이제 예술적 창작을 넘어 고도로 정밀한 항해 프로젝트에 가까워졌다.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고, 유저 잔존율 그래프를 분석하며, 확률형 아이템의 수치를 미세 조정하는 대형 게임사의 회의실에서 통과되는 질문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재미있는가?” 대신 “성공 사례가 있는가?”를 묻고, “새로운 경험인가?” 대신 “시장성이 검증되었는가?”를 따진다. 수백 명의 월급이 걸린 마당에 “왠지 가슴이 뛰어서요”라는 순진한 말 한마디로 프로젝트의 닻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모두가 계산기만 두드리기 시작하면, 세상에는 이미 성공했던 게임의 뼈대에 가죽만 덧씌운 복제본과 금융 파생상품처럼 변질된 ‘답안’만 남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그 안전한 계산을 멈추고 궤도를 이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모한 역할을 가장 순수하게 감당해내는 공간이 바로 인디 게임 씬이다.
 


인디 게임, 동인 게임 행사장을 걷다 보면 가끔 말문이 막히는 ‘이상한 게임’들을 마주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골랐는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소재, 굳이 플레이어를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듯한 괴상한 조작계, 전투라곤 한 번도 안 나오는데 두 시간 내내 대화만 시키는 게임, 반대로 서사는 한 줄도 없으면서 특정 메커니즘 하나만 지독하게 파고든 게임이 불쑥 튀어나온다. 지옥의 대학원을 졸업시키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세계에서 낡은 카드 몇 장을 쥐여주고 내팽개치는 게임도 있다. 누가 봐도 시장 조사를 거친 기획이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패드를 쥐면 가슴이 뛴다. 거대 자본이 잃어버린 원초적 야성이 모니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인디 개발자에게는 대기업의 막대한 예산도, 수십 명의 테스터도, 최고급 리소스도 없다. 대신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상상력을 실행으로 즉시 옮길 수 있는 압도적으로 짧은 의사결정 구조다.

“이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짧은 한마디로 우주가 시작된다. 제작자 개인의 은밀한 취향, 어릴 적 밤새 즐겼던 명작에서 얻은 지독한 감명, 혹은 아주 사소하고 엉뚱한 호기심이 게임 전체를 지배한다. 희석되지 않은 날것의 생각이 곧장 시스템이 되기에, 비록 투박하고 불친절할지언정 그 색깔만큼은 서슬 퍼렇게 살아 숨 쉰다.

물론 그 걸음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참혹한 오답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머릿속에서는 천재적이었던 시스템이 막상 굴려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고, 개발자 본인에겐 직관적인 설명이 유저에겐 외계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개발자 옆에 서서 시연을 지켜보면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플레이어는 개발자가 공들여 짜둔 길로는 죽어도 안 가고, 절대 누르지 말라던 버튼만 귀신같이 찾아 눌러 화면을 뻗게 만든다. 개발자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노트를 펴 무언가를 적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코드가 고쳐진 빌드가 모니터에 올라온다.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터무니없이 가까운 세계가 또 어디 있을까. 열 명이 플레이해 아홉 명이 환불하고 욕을 하더라도, 끝까지 엔딩을 본 단 한 명이 “이 게임 덕분에 울었다”는 한 줄을 남겨주면 그걸로 다시 반년을 버텨내는 사람들. 효율과 숫자로만 환산되는 세상에서, 단 한 명의 공감을 위해 자신의 통장과 시간을 기꺼이 갈아 넣는 이 비합리적인 창작자들을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이 인디 씬을 바라보는 공기가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2026에는 57개국에서 856개 작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년 대비 접수 국가는 39%, 작품 수는 44%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였고, 그중 180여 작품이 관객을 만났다. 3D 액션 옆에 감성적인 비주얼노벨이 있고, 그 맞은편에서 장르를 규정할 수조차 없는 난해한 실험작을 선보였다.
 
유저들 또한 그래픽이 화려하지 않다고 흘겨보지 않으며, 개발 인원이 단 두 명이라는 이유로 미리 기준치를 깎아주지도 않는다. 매매력이 느껴지면 기꺼이 1평짜리 부스 앞에 긴 줄을 서고, 텀블벅을 후원하며, 스팀 위시리스트에 게임을 담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풍경을 두고 ‘인디 게임 씬의 성장’이라 썼지만, 올해는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이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다. 하나의 독자적이고 견고한 창작 생태계가 마침내 온전히 뿌리를 내린 것이다. 생태계가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제 인디 게임을 향한 우리의 시선도 온정주의를 벗어던질 때가 됐다.
 
인디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소규모 팀이 눈물겹게 만들었다고 해서 엉망인 완성도를 눈감아줄 이유는 없으며, 부족한 기본기를 ‘인디 감성’이라는 껍데기로 포장해 주는 것 또한 온당치 않다. 재미가 없으면 가차 없이 외면받아야 하고, 잘못 설계된 시스템은 뼈아프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 냉정한 피드백이야말로 이들을 같은 스토어에서 동등한 가격표를 붙이고 경쟁하는 어엿한 프로 창작자로 대우하는 유일한 길이다.
 

게이머에게 인디 게임을 사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그 거친 모래밭 속에서 마침내 내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진짜 원석을 발견했을 때, 아낌없이 목소리를 내어줄 이유는 분명하다. 체험판을 돌려보고, 찜 목록에 넣고, 짧은 응원의 리뷰 한 줄을 남겨주는 그 작은 행동이, 자본 없는 작은 팀이 거센 풍파를 뚫고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산소호흡기가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코드를 뚝딱 짜내고, 원화를 그리고, 음악까지 합성해 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게임 제작의 기술적 장벽은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나 도구가 흔해진다고 해서 좋은 게임이 저절로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드는 방법이 보편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모두가 성공 방정식의 데이터를 읊어댈 때, 인디 행사장의 개발자들은 여전히 가장 투박하고 정직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냥 제가 이런 걸 너무 좋아해서요.”

대단히 무책임하지만, 창작이라는 행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고백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매체는 기이하게도, 그렇게 계산 없이 심장으로 빚어낸 것들이 종종 세상을 뒤흔들며 가장 멀리까지 날아가곤 한다.
 

게임 기자의 시선에서도 인디 취재는 솔직히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다. 잘 정돈된 보도자료나 화려한 쇼릴 영상이 메일함으로 날아오지도 않는다. 소음 가득한 행사장을 온종일 헤매며 흙먼지 묻은 빌드를 직접 켜봐야 하고, 어색해하는 개발자를 붙잡고 끈질기게 캐물어야 그 기획의 본의를 겨우 알아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 수고로움 끝에 아직 세상에 이름 붙지 않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건져 올리는 순간의 전율은, 우리가 왜 게임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를 가장 날것으로 일깨워준다.

큰 게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산맥처럼 필요하다. 수백 명의 장인이 몇 년간 벼려낸 압도적인 AAA급 세계관이 주는 충격은 인디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모든 산이 에베레스트일 필요는 없다. 세 시간 만에 끝나는 작고 뾰족한 언덕도 있어야 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낯선 덤불숲도 존재해야 숲 전체가 썩지 않고 숨을 쉰다.

실패할 자유가 거세된 시장은 결국 서서히 질식한다. 다음 시즌에 어떤 괴작과 명작이 튀어나올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게임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건강한 박동이다. 완성된 거인의 발자국을 기록하는 일만큼, 황무지에서 혼자만의 깃발을 꽂으려 애쓰는 이름 없는 시도들을 찾아 호명하는 것 또한 게임을 기록하는 자들의 마땅한 몫일 테다.

그러니 부디, 타산 없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기꺼이 지치지 않고, 그 낯설고 매혹적인 실패와 승리의 현장을 찾아 헤맬 테니까.
 
[김규리 기자 gamemkt@chosun.com] [gamechosun.co.kr]

ⓒ기사의 저작권은 게임조선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무단으로 기사 내용 전제 및 다운로드 링크배포를 금지합니다.

김규리 기자의

댓글 2

  • nlv168_54364 포핸드
  • 2026-09-13 14:07:53
  • 우리나라처럼 인디게임으로 먹고 살기힘든나라에서
    이길을 간다는것만으로도 응원핟니다
  • nlv114_655846 Fellos
  • 2026-09-14 17:00:58
  • 현실에 낭만이 필요한 이유....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현실화 시키고자 노력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