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game)은 원래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게임은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규칙과 가상 환경 속에서 이용자가 입력장치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즐기는 전자적 놀이'라는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
게임은 1971년 최초의 상업용 게임이라 불리는 '컴퓨터 스페이스'부터 시작해 오락실이란 공간이 태어났고 가정용 게임기와 PC를 거쳐 이제는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까지 들어왔다.
한때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라는 말을 들었던 게임은 이제 영화,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됐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했던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게이머라면 다 알고 있듯 말이다.

최초의 상업용 게임이라 알려진 '컴퓨터 스페이스'.
자료=The Strong National Museum of Play
자료=The Strong National Museum of Play
게임은 오랫동안 '놀거리'라는 이유만으로 꽤 많은 눈총을 받아야 했다. 게임은 장차 판검사나 의사가 되어야 할 우리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 이유가 됐고, 밤늦게 잠들지 않는 원인이 됐다.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면 범죄를 일으키는 방아쇠 취급을 받았다.
국가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무려 알코올, 도박, 마약과 같이 묶어 4대 중독 유발 물질로 규정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결국 발의 단계에서 끝나긴 했지만 게임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2011년 도입된 이른바 '게임 셧다운제'가 실제 시행되기도 했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밤 12시가 되면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을 강제 종료시키는 이 황당한 법은 11년 지난 2021년이 되서야 폐지가 결정돼 2022년 1월 1일이 되서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회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을 막아왔다.
부모님은 컴퓨터 전원선을 뽑고, 게임기를 압수하고, 시험기간이면 키보드와 마우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때때로 물리적인 마사지(?)도 불사하며 자식들이 게임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몰래 PC방에 갔다 들켜 등짝을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는 한 세대 게이머들에게 거의 공통의 추억처럼 남아 있는 수준이다.
이는 모두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게임의 세계적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게임은 한국과 대동소이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규제를 받아왔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과장이 조금 섞였지만 말 그대로 법과 사회, 그리고 부모님까지 삼위일체로 달려들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흘러 많이하면 인생 망가진다고 했던 게임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굳건하다. 정확히는 굳건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할만큼 거대해졌다.

한때 너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그림=AI 이미지
그림=AI 이미지
이제 게임은 톱 클래스 취미
게임 시장의 성장은 언제나 극적이다. 컴퓨터 스페이스 이래 약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게임은 꾸준한 성장을 반복했다. 1983년 아타리 쇼크, 2022년 코로나19 사태 종료 등으로 잠시 주춤한 적은 있지만, 게임은 더 많은 장르, 더 많은 플랫폼, 더 많은 콘텐츠로 분화하며 무서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수치로 보면 더 극적이다.
게임시장 조사기관 뉴주(Newzoo)가 2015년 집계한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915억 달러(약 123조 2000억 원)였다. 당시에도 결코 작은 산업이 아니었다.
10년 뒤인 2025년에는 어떻게 됐을까. 뉴주가 2026년 확정한 2025년 세계 게임시장 매출은 2016억 달러(약 271조 4000억 원)다.
불과 10년 사이 시장이 두 배 이상 커지며 사상 처음으로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자료=Newzoo
게이머 수도 늘었다.
2015년 세계 게이머 수는 당시 여러 조사에서 약 18억~20억 명 규모로 추산됐다. 2016년 뉴주는 세계 게임시장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게이머가 약 20억8900만 명으로 집계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2025년 뉴주의 게이머 추산은 약 35억 7800만 명이다.
83억 명의 세계 인구 중 어린아이와 고령층, 게임을 접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하고도 36억 명이라는 수치는 경이적이다. 심지어 뉴주는 2026년 게이머가 37억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료=Newzoo
만드는 게임의 숫자는 더 무섭다.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의 출시 데이터를 집계하는 스팀DB(SteamDB)에 따르면 2015년 스팀에 출시된 게임은 2820개였다. 하루 약 7.7개의 게임이 스팀에 등록된 셈이다.
그리고 2020년에는 9635개로, 2023년 1만4024개, 2024년 1만8468개를 지나 2025년에는 무려 2만1313개의 게임이 한 해 동안 스팀에 올라왔다. 하루 58.4개 꼴로 10년 만에 연간 출시작이 7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자료=SteamDB
물론 이 숫자들이 모두 산업의 '질적 성장'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옛날과 지금은 화폐의 가치가 다르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라이트 게이머가 늘었고, 게임의 플랫폼개발과 유통의 문턱이 낮아져 소규모 게임과 실험작도 대거 출시될 수 있게 된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이 수치가 확장과 발전을 뜻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게임을 하는 사람도 늘었고, 게임에 쓰이는 돈도 늘었으며, 게임을 만드는 사람까지 늘었다.
위에 언급했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반대의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게임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패미컴과 오락실을 경험한 세대가 40~50대가 됐고,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경험한 세대도 어느덧 중년을 바라본다. 게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회의 주류 세대로 올라오면서 인식이 달라졌을 수 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세대가 어른이 됐음에도 왜 게임을 계속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부정적 인식을 받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 역시 설명하지 못한다.
답은 의외로 너무 단순하다.
재미있으니까.
게임 이전에도 인간은 이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행위를 해왔다. 여기엔 생산성도 발전성도 필요없고 오직 이를 행할 때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유희' 혹은 '취미'라고 부른다.
TV를 보며, 영화를 보며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공을 상대 골문에 넣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다닌다.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만들기 위해 나무판 위에 돌을 놓고 몇 시간씩 고민한다. 산 정상까지 힘들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이다.
게임도 다르지 않다.

재미는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초월한다.
사진=Hilary Murugu / Wikimedia Commons
사진=Hilary Murugu / Wikimedia Commons
인간은 원래 노는 동물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 기록했다. 그 책에는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됐다.”라는 말도 기록돼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으니 놀이는 인간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문화 형성의 근본적인 요소라는 이야기다.
뭐 쉽게 말해 인간은 놀이, 즉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동을 거부할 수 없는 생물이란 뜻이다.
게임은 이 놀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가장 탁월한 수단 중 하나다. 게임 속 나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우주와 심해를 탐험하는 용감한 모험가가, 세상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마왕을 쓰러뜨릴 인류의 마지막 용사가, 시속 400킬로로 내달리는 레이서가 될 수 있다.
그림과 음악, 이야기와 연기, 규칙과 경쟁, 수집과 성장, 탐험과 퍼즐을 모두 스크린 안에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이 발전하면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커지고, 더욱 사실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놀이 중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다양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수단이 감히 게임이라 말할 수 있겠다.
놀이 수단으로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서 가장 과소평가됐던 것이 이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재미있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피터르 브뤼헐 '아이들의 놀이'(1560). 게임이 없을 때도 인간은 놀았다.
자료=Wikimedia Commons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9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의 도래를 이야기한 역사적 발언을 게임에 그대로 빗대는 것은 조금, 아니 상당히 불경스러운 비유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문장만큼 게임이 걸어온 길을 절묘하게 표현한 말도 흔치 않다.
점 몇 개가 움직이던 화면은 거대한 세계가 됐고, 혼자 즐기던 놀이는 수백만 명이 동시에 연결되는 공간이 됐다. 몇 명이 만들던 게임은 수천 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됐고,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혼자 만든 작은 게임 하나가 전 세계에서 성공하는 시대가 됐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하고, 더 많은 게임이 세상을 박차고 나온다.
앞으로도 모든 게임이 성공할 리는 없다. 게임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과몰입이나 확률형 상품, 지나친 과금 유도, 편파적인 운영, 개발사의 윤리의식 등 산업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쳐야 할 문제도 분명하다.
바둑이란 놀이는 수천 년동안 국수(國手)를 배출해왔고, 체스는 6억 명이 넘게 즐기는 놀이가 됐다. 축구라는 놀이는 수억 명의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며, 수 많은 예술가의 노래와 춤은 유행 따라 시대 따라 바뀌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고 게임 역시 인간이 찾아낸 또 하나의 놀이가 됐고 많은 이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게임시장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졌다.
지난 10년 간 게임 인구는 수십억 명까지 불어났다.
지난 10년 간 스팀에는 연 2만 개가 넘는 게임이 쏟아지는 플랫폼이 됐다.
그리고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을 실행하며 시간을 보낸다.
왜? 재미있기 때문이다.

[배향훈 기자 tesse@chosun.com ]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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