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젠이라는 기업의 이름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르는 단연 MMORPG일 수 밖에 없다. 2001년 서비스를 시작한 ‘뮤 온라인’을 시작으로 'R2', '뮤 오리진', '뮤 아크엔젤', '뮤 모나크' 등 웹젠은 오랜 시간 MMORPG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왔고, 현재까지도 '뮤'를 비롯한 기존 IP가 웹젠의 안정적인 기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웹젠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전혀 다른 색깔의 게임이 있다. 자회사 웹젠노바가 개발 중인 수집형 RPG '테르비스'다.
테르비스는 웹젠이 기존 MMORPG 이용자층과는 다른 시장을 겨냥해 자체 개발하고 있는 신규 IP다. 2D 재패니메이션풍 비주얼과 캐릭터 중심 연출을 앞세웠으며,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한 CBT에서는 메인 스토리 4챕터와 35종의 캐릭터, 인연 스토리 등을 공개하며 게임의 기본적인 방향성을 이용자들에게 선보였다.
특히 웹젠은 테르비스를 소위 말하는 '내수용'에 머무르게 하기보다 처음부터 일본을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며 적극적인 사전 마케팅을 진행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믹마켓이다. 2024년부터 올해 C108까지 다섯 차례 연속 참가하며 캐릭터 굿즈와 코스프레, 신규 일러스트 등을 선보였고, 공식 SNS에서도 캐릭터 설정과 네 컷 만화 같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개했다. C105에서는 준비한 캐릭터 굿즈가 완판되면서 정식 출시 이전부터 일본 현지에서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테르비스의 행보가 더욱 흥미로워진 것은 CBT 이후다. 당초 웹젠은 2025년 출시를 목표로 테르비스를 개발했지만, CBT 이후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지 않고 출시 일정을 뒤로 미뤘다.
그 이유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CBT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높은 수준의 2D 비주얼과 애니메이션 연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기존 서브컬처 수집형 RPG와 비교했을 때 테르비스만의 차별화된 재미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개발진 역시 CBT 종료 후 향후 개발 방향을 설명하면서 '테르비스만의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의견과 UI·UX의 불편함, 게임 밸런스 등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주요 보완 과제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에 게임의 재미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개발 기간을 확보하고 출시 일정을 다시 조정하는 선택을 내렸다.
즉 단순한 버그 수정이나 콘텐츠 추가 정도로 출시를 몇 달 늦춘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을 다른 서브컬처 RPG와 무엇으로 구분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까지 다시 점검하게 된 셈이다.

이는 테르비스처럼 신규 IP로 시장에 진입하는 작품에는 특히 중요한 문제다. 이미 팬덤을 가진 원작을 활용하는 게임이라면 캐릭터와 세계관 자체가 초기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테르비스는 캐릭터부터 세계관, 게임의 재미까지 모두 처음부터 이용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비주얼이 좋은 것만으로는 수많은 경쟁작 사이에서 선택받기 어렵고, 게임을 계속 플레이해야 할 이유까지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웹젠은 단순한 추가 개발만으로 이러한 보완이 충분히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26년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는 테르비스의 현 상태를 단순한 '개발 보완'이 아니라 CBT 이후 '전면 재정비' 단계로 표현했는데, 이는 단순히 일정을 미루는 것보다는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와 완성도를 다시 확보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신작 출시가 새로운 매출원과 직결되는 게임사 입장에서 이러한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웹젠은 기존 MMORPG 중심의 라인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의 자체 IP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상태로 시장에 먼저 내놓기보다 테르비스의 방향을 다시 잡는 쪽을 선택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출시가 늦어진 기간 동안 테르비스 자체를 시장에서 숨긴 것은 아니다. 게임을 다시 다듬는 동안에도 일러스트와 영상, 만화, 굿즈와 코스프레 등 캐릭터 중심의 콘텐츠 노출은 이어졌다. 이는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서 게임 자체의 완성도만큼이나 출시 전부터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놓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MMORPG가 성장과 전투, 경쟁 같은 시스템적인 재미를 비교적 앞세우기 쉽다면 서브컬처 게임은 이용자가 캐릭터를 먼저 알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직접 해보고 싶게 만드는 과정 역시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나름대로의 전략안을 확실하게 세우고 움직이는 것이다.

결국, 웹젠 입장에서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셈이 됐다. CBT에서 드러난 차별성·편의성·밸런스 문제를 보완해 실제 게임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고, 개발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지금까지 쌓아온 캐릭터와 IP에 대한 관심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웹젠이 테르비스에 부여한 목표 자체가 작지 않다.
무엇보다 웹젠이 테르비스에 부여한 목표 자체가 작지 않다.
웹젠은 테르비스를 통해 서브컬처 시장에서도 '뮤'와 같은 스테디셀러 IP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단순히 MMORPG 이외의 신작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웹젠을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체 IP 후보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테르비스는 웹젠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존 '뮤' IP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을 만들어 서브컬처 이용자들에게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제대로 안착한다면 웹젠은 MMORPG 이외의 영역에서도 자체적으로 IP를 만들고 키울 수 있다는 사례를 확보하게 된다.

첫 CBT에서 지적받은 '테르비스만의 재미'가 전면 재정비를 거치며 얼마나 선명해졌는지, UI·UX와 밸런스를 비롯한 실제 플레이 경험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그리고 오랜 기간 한국과 일본에서 쌓아온 캐릭터와 IP의 인지도가 실제 이용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 과제다.
웹젠은 출시를 서두르는 대신 한 번 더 게임을 다듬는 길을 택했다. 오랜 준비와 재정비를 거친 테르비스가 'MMORPG의 웹젠'이라는 익숙한 이미지 밖에서 새로운 간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중요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기대를 달라진 게임의 완성도로 증명하는 일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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