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우에게 대중을 대표하는 하나의 배역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이름만 들어도 목소리가 떠오르고, 목소리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성우의 이름까지 연결되는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캐릭터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강렬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다른 배역의 연기를 접한 사람들이 "이 사람이 이런 연기도 할 수 있어?"라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목소리가 그 캐릭터와 같은 사람이라고?"라고 반응하기 시작한다면 성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성우의 본체를 집어삼키는 기묘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있다면 '스피키' 라는 캐릭터를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밈이 되어 해외의 팬들이 자국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로 "쪼와요"를 외치게 만든 '박시윤 성우'를 빼놓을 수 없다.
신인 시절 녹음했던 그 한 마디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급력으로 서브컬처 업계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박시윤'이라는 성우를 스피키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그가 지나온 배역들의 폭이 제법 넓다.
어린 외형 안에 신의 여유를 담아낸 '원신'의 나히다, 허당미 넘치는 '붕괴: 스타레일'의 소상, 대칭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젠레스 존 제로'의 앨리스 타임필드, 그리고 연기를 거듭할수록 "딸처럼 느껴졌다"는 '명조'의 데니아까지 캐릭터를 바라보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지금 성우 박시윤은 정체성의 유령 스피키를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체성의 유령 스피키가 성우 박시윤을 흉내내고 있는 것일까? 게임조선에서는 박시윤 성우를 만나 '쪼와요'라는 밈의 탄생부터 각 캐릭터에 담아낸 연기의 비하인드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를 '스피키 이후'에 대한 생각까지 직접 들어봤다.
※ 본 인터뷰는 대면 인터뷰 현장에서 진행된 분위기와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담화 형식으로 작성됐습니다

기자: 사실 기존에 진행하신 인터뷰들에서는 이미 충분히 정상적인 자기소개를 하셨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진짜 박시윤’, '스피키', '작은 쿠사나리 화신' 중 누구를 모셨다고 소개해야 할까요?
박시윤 성우: 안녕하세요. CJENM 10기 성우 박시윤입니다. 요즘 저를 보고 본체가 스피키 아니냐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고 계시지만, 오늘은 '진짜 박시윤'이 왔습니다.
기자: 말씀해주신 대로 스피키가 너무 유명해지다 보니 박시윤 성우님을 처음 접한 사람이 '이 분이 스피키 성우였어?'로 반응하기보다는 다른 배역의 연기를 듣고 '이게 스피키랑 같은 목소리라고?'라는 반응이 더 많아요. 실제로 성우님도 사실 스피키를 일종의 기믹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계신데 이제는 박시윤이 스피키를 연기하는 것인지, 혹은 스피키가 박시윤을 연기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나요?
박시윤 성우: (웃음)실은 저도 자주 헷갈리는 부분이에요. 이건 예전에 방송에서도 풀었던 에피소드이긴 한데 팬분들에게 사인을 해주다가 성우 박시윤이라고 적어야 하는 자리에 성우 스피키라고 적은 적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스피키 덕분에 올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해외 활동까지 나갈 정도라서 아직도 신기하고 감개무량하고 하루하루가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성우로서 다양한 배역을 맡아왔지만 인터넷에서는 어느 순간 ‘쪼와요를 말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을 억울함과 뿌듯함의 비율로 표현한다면 몇 대 몇일까요?
박시윤 성우: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역시 뿌듯함이 훨씬 큰 것 같아요. '쪼와요'를 계기로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고 그것을 계기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기자: 그럼, 팬들이 만났을 때 가장 많이 요청하는 것은 어떤 대사였나요?
박시윤 성우: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석에서 혹은 지나가다가 팬분들을 만났을 때는 그런 부탁을 잘 안 해주세요.
게임사의 초청으로 가는 공식 오프라인 행사에서는 당연하게도 배역과 관련된 연기를 하게 되지만, 그 밖의 자리에서는 아마도 팬분들이 실례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알아봐주시더라도 선뜻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고요.
저는 내심 '어떤 목소리를 부탁하실까?'하고 기대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아직은 어떤 요청이 가장 많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예상을 해본다면 역시 '쪼와요'와 같은 스피키의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기자: 얼마 전에 제108회 코믹마켓(C108)에도 다녀오셨잖아요? 스피키의 모습으로 변하기 전 '진짜 박시윤'으로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상황은 무엇이었나요?
박시윤 성우: 처음에는 '와, 빅사이트 크다', '어디서 옷을 갈아입지?' 같은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코믹마켓은 코스프레 의상을 미리 입고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별도로 탈의실에서 갈아입어야 하더라고요.
현장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배고프다'였어요. '도시락을 주신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 줄까' 그게 인간 박시윤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이었어요. 그 이후의 저는 정체성의 유령 스피키니까요(웃음)
기자: 코믹마켓 한복판에서 수많은 일본인이 한국어로 "쪼와요, 쪼와요, 물걸레질 쪼와요"를 외치는 진귀한 장면을 직접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박시윤 성우: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단순히 관광하고 있을 때는 체감할 수가 없었어요. 지나가는 분들에게 제가 먼저 '혹시 쪼와요 아세요?'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웃음)
그런데 트릭컬을 좋아하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에 가니까 정말 다들 한국어로 '쪼와요'를 외쳐주시는 거예요. 제가 '쪼와요'를 할 때마다 "에? 혼모노다" 이러면서 굉장히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스피키의 인기가 진짜였구나. 정말 여기에서도 많이 알아봐 주시는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해외에 진출한 작품은 일반적으로 대사를 현지 언어로 바꾸기 마련이지만, 스피키는 오히려 일본 팬들이 한국어 원본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성우로서는 어떤 발음이나 리듬이 ‘쪼와요’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대체할 수 없는 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박시윤 성우: 제가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마음대로 음을 비틀어 만든 부분이 큰 것 같아요. 해당 대사의 원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크레페가 '좋아요, 좋아요'라고 하면 굉장히 착하고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잖아요. 저는 그 대사를 스피키처럼 악동스럽고 장난기가 가득한 친구가 말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어른들 말도 하나도 듣기 싫어하는 천방지축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정돈된 내용의 문장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귀를 막고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이 될까 생각했던 것이 지금의 '쪼와요'를 만든 거죠.
어린아이들이 '몰라, 몰라, 몰라', '듣기 싫어' 하면서 귀를 막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느낌을 '좋아요'라는 문장에 담아낸 셈인데, 그 특유의 느낌은 확실히 다른 언어로 대체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어요.
기자: 그렇다면 이번 C108을 다녀오시면서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팬과의 만남은 무엇이었나요?
박시윤 성우: 저는 스트리머로도 활동하고 있다 보니 팬분들은 제 이름을 뒤집은 '시박이꺼'라는 약칭을 써주고 계신데요. 코믹마켓 현장에서 진짜로 시박이꺼 분들을 만난 것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던 것 같아요.
날씨도 덥고 인파가 몰리는 코믹마켓에 찾아가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와중에 트릭컬 부스로 찾아와주셨으니까요.
기자: 스피키는 트릭컬 내에서도 슈팡과 함께 말버릇이 험하기로 유명한 캐릭터입니다. 슈팡은 배달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스피키는 딱히 이유 없이 입이 험하다는 설정인데 이런 욕쟁이 캐릭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박시윤 성우: 슈팡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거친 말을 하는 캐릭터라면, 저는 스피키를 일종의 '순수 악'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상처받을지를 생각하면서 일부러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쟤는 돈 없는 애’, ‘한 물 두 물 세 물 간 애', '재미없는 애’처럼 필터를 거치지 않은 자기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는거죠.
사실 트릭컬에는 교주님(플레이어)들이 독심술로 대사와 다른 속마음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스피키는 굳이 속마음이 필요 없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속과 겉이 똑같으니까요.
자기 집이 부서지는 건 싫으니까 친구 집을 부수라고 한다는 것처럼 일반적인 사회적인 통념의 기준에서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지만 저는 그것을 '어린아이가 맛있는 것을 보면 일단 가치 판단을 내려놓고 자기 입에 먼저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봤어요.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솔직하게 챙기는 '아이 같은 악'이죠. 그래서 저는 스피키를 ‘순수 악’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럼 연기의 영역이나 특정한 상황이 주어진 게 아니라 정말로 무심코 평어문이 되어야 하는 '네, 좋아요' 대신 스피키의 '쪼와요'가 튀어나온 적이 있으신가요?
박시윤 성우: 있어요. 하도 '쪼와요, 쪼와요' 하다 보니까 최근에는 카카오톡으로 업무 답장을 할 때도 튀어나오고 있더라고요.
누군가 업무적으로 "이렇게 하는 건 어떠실까요?"라고 물었는데 저도 모르게 "쪼와요"라고 답장을 할뻔한 상황을 겪고 나서는 '이 대화에서는 그래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데, 내가 너무 쪼와요를 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굳이 "좋습니다"라고 문장을 다시 고친 적도 있을 정도였죠.
기자: 그렇다면 담당 성우로서 스피키라는 캐릭터에 대한 최종 변론을 해주신다면요?
박시윤 성우: 스피키는 철이 없을 뿐이지 그냥 귀여운 아이에요. 물론 말을 험악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순수하고 마음도 여리고 눈물도 많고 폭력을 아주아주 싫어하는 귀여운 친구입니다. 누구처럼 다른 이들을 때리고 다니진 않아요. 폭력은 아주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만약 '쪼와요'를 넘어서는 새로운 밈이 생긴다면 섭섭할까요, 아니면 드디어 해방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까요?
박시윤 성우: 밈이라는 건 유행을 타는 것이잖아요. 저도 스피키 밈이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어요. 녹음 자체도 신인 시절인 굉장히 오래전에 했던 것이고 게임도 리바이브를 통해 다시 살아난 작품이라서 이렇게까지 생명력이 오래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물론, 언젠가는 스피키도 잊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언젠가는 스피키를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새로운 밈이 생겨서 저를 또 많은 분께 알릴 기회가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현재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그때도 또 그때의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해요.

기자: 지금까지 스피키와 ‘쪼와요’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봤으니, 이제는 스피키가 아닌 박시윤 성우님의 다른 배역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우님의 또 다른 대표 배역인 '원신'의 '나히다'는 어린아이 같은 외형과 달리 수메르를 이끄는 신이자 가장 지혜로운 인물입니다. 어린 목소리 안에 신의 무게감을 담기 위한 연기가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박시윤 성우: 실제로도 어려웠어요. 나히다는 수메르를 대표하고 또 수메르를 지키는 신이자 늘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 넓은 존재인데 외형만 보면 그냥 어린아이처럼 보이니까요.
보통 어린아이들은 슬프면 바로 울고 기쁘면 바로 웃는 것처럼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잖아요? 반대로 나히다는 '신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갇혀 지내며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라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지혜와 경험을 가진 친구였기에 저는 외형과 내면의 괴리감을 극복하면서 캐릭터를 잘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예전에 애니메이션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에서 비슷하게 어린 외형을 가졌지만 신격을 가진 인물인 '시간의 여신' 역할을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때에는 '여유로움'을 녹여내야겠구나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히다라는 캐릭터가 완성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기자: 실제로 연기를 정말 잘해주셔서 나히다의 어른스러운 성격이 돋보이게 됐는데 하필이면 '방랑자'와의 케미스트리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나히다는 소위 말하는 '엄마' 이미지가 새로 구축됐어요. 이런 반응은 예상하신 부분일까요?
박시윤 성우: 많이 당황스럽긴 했어요.(웃음) '방랑자'를 연기한 '민승우' 성우님도 장난으로 지나가는 농담이긴 하지만 저한테 실제로 '엄마'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외형은 아기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갑자기 엄마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건 또 다른 의미의 충격이었죠. 그래도 팬분들이 '마마'라고 부르는 모습은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 '붕괴: 스타레일’에서 맡으신 '소상'은 필살기를 쓸 때 본인은 봉황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봐도 닭 같은 정체불명의 조류 '정위'가 등장합니다. 성우님이 처음 이를 보고 녹음을 진행할 때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박시윤 성우: 사실 처음에는 슬펐어요. 다른 캐릭터들은 다 멋있는 필살기를 쓰고 있는데 저는 '꼬꼬댁' 하면서 닭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PD님께 '혹시 더 멋있는 필살기는 없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전작에 해당하는 '붕괴3rd'의 원본 캐릭터인 '이소상'은 굉장히 멋있다고 들었거든요.
대사는 "봉황이여, 일어나라!"인데 누가 봐도 닭이 튀어나오고 소리도 꼬꼬댁거리는 것이 웃프긴 하지만, 멋있기보다는 허당미가 많이 강조되는 것도 나름대로 소상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젠레스 존 제로'에서 맡은 배역인 '앨리스 타임필드'는 완벽한 대칭에 강하게 집착하는 캐릭터죠. 실제 커뮤니티에서는 "로프꾼님의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고요? 그럼 반대쪽도 부러뜨려드릴게요!" 같은 왜곡 대사가 나올 정도인데요. 실제 박시윤 성우도 정리정돈을 할 때 앨리스처럼 완벽한 대칭과 깔끔함을 추구하는 편인가요?
박시윤 성우: (단호)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정리를 한다 싶으면 깨끗함과 미니멀함을 추구하지만 앨리스처럼 광기와 집착에 가까운 정돈이나 먼지 한 톨 없어야 한다는 깔끔함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자: '명조'에서는 라하이 로이의 스토리가 끝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허심탄회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데니아'를 녹음하시면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와 이야기의 결말을 끝까지 알고 난 뒤의 인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박시윤 성우: 처음 대본과 캐릭터 시트를 받았을 때는 데니아가 수시로 거짓말을 한다는 설명을 보고 다른 잔성회 소속 캐릭터와 다를 바 없는 '나쁜 친구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스타토치 아카데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방랑자를 만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마음을 배우고 결국 마지막에 자신만이 할수 있는 선택을 하는 과정을 이입하면서 연기하다 보니 너무 안타까운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에이메스와 비교하니 더 마음이 아팠어요. 에이메스도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방랑자라는 좋은 보호자를 만났는데 데니아는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잘 키워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를 교차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와 지금의 감정은 완전히 달라요. 지금은 너무 아프고,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고, 오히려 에이메스 이상으로 딸처럼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에필로그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기보다는 체한 것처럼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데니아가 잘못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잘못에 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렀고 만회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팬들의 의견에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쿠로 게임즈가 데니아를 위한 해피 엔딩을 따로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기자: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녹음하신 '소다'는 시간 순서상 나중에 나온 트릭컬 리바이브의 '메이드 스피키'와 많은 속성을 공유하는 캐릭터입니다. 만약 둘 중 청소를 맡긴다면 누구에게 맡기실 것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시윤 성우: 당연히 소다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소다입니다.(웃음)
스피키에게 맡기면 청소 자체는 잘하겠지만 집을 깨끗하게 만든다면서 물건을 전부 중고로 팔아버릴 수도 있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물건이 전부 사라져서 “어디 갔어?”라고 물으면 “다 갖다 팔았어요”라고 할 친구예요. 아니면 깨끗해 보이게 한다고 그냥 다 버릴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절대 스피키에게는 청소를 맡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기자: '블루 아카이브'의 카즈사는 고양이 수인 속성의 캐릭터지만 실제로는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설정입니다. 성우님은 고양이파인가요? 강아지파인가요?
박시윤 성우: 강아지요, 고양이는 만지면 막 도망가거나 할퀴는 것처럼 뭔가 차갑다는 인상이 조금 있어요. 그래서 트릭컬에서도 코미보다는 버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기자: 성우로서 '본인이 생각해도 완벽한 연기를 펼쳤지만 평범한 반응이 나올때'와 '녹음으로서는 NG에 가깝지만 밈으로 대박이 터지는 상황'을 고르라면 어떤 것이 마음에 드실 것 같나요?
박시윤 성우: 후자가 더 기쁠 것 같아요. 이번에 스피키 밈이 크게 알려지고 나니까 사람들이 "이 성우가 또 어떤 연기를 했지?"라면서 제 다른 출연작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져주셨거든요.
저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은 연기를 하는 것도 분명 기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으며 제가 했던 다른 연기까지 재조명받는 경험이 더욱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생각해요.
기자: 그렇다면 만약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 중 반드시 1명과 함께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누구를 고르고 싶으신가요?
박시윤 성우: 음, 저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다 따져봤을 때 역시 '스피키'를 고르지 않을까 싶어요.
블루 아카이브의 '카즈사'는 함께 지내기엔 조금 무서울 거 같고, 에반게리온의 '아스카'는 같이 있으면 제가 정신이 나갈 것 같고, 젠존제의 '앨리스'는 대칭 맞추기에만 집착할 거 같고, 니케의 '소다'는 전파계라서 대화가 통하기는 커녕 주인님만 찾아다닐 것 같으니까 말이죠.
무인도는 적적하잖아요? 스피키가 함께라면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이 없더라도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자: 스피키와 관련된 밈으로 처음 박시윤 성우님을 알게 된 사람에게 "사실 저는 이런 연기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추천하고 싶은 배역이나 장면이 있나요?
박시윤 성우: 저는 보통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나 귀엽고 활기차거나 당돌한 캐릭터, 아가씨 같은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는 편이에요. 소위 말하는 소녀소녀스러운 배역들 말이죠.
그런데 최근 '명조'에서 연기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레베카'처럼 굉장히 과격하고 거침없이 힘을 쓰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을 보고 의외라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요염하고 섹시한 캐릭터도 해보고 싶네요.
기자: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쪼와요’ 세 단어는 금지하겠습니다.
박시윤 성우: (스피키 톤으로)늘 신기해요, 항상 즐거워요, 앞으로도 저의 다양한 모습을 재미있게 봐주세요.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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