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와 동인지, 코스프레가 중심이 되는 서브컬처 행사 한쪽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작을 처음 만나는가 하면, 갓 출시된 게임을 개발자 바로 앞에서 플레이하고, 마음에 든 캐릭터의 굿즈를 챙겨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4B·5홀에서 열린 '일러스타 페스13'에는 인디게임 특별존 '일러스타 플레이'가 마련됐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버추얼 스트리머 등을 아우르는 일러스타 페스 안에서 개발자들이 직접 게임을 선보이고 관람객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일러스타 페스와 인디게임의 인연도 제법 길다. 일러스타 페스는 2024년 제3회 행사를 앞두고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협업해 '인디게임 특별존'을 처음 마련했다. 당시 참가비 없이 개발사의 게임을 전시하고 관람객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게임 개발과 출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이러한 인디게임 전시 공간은 계속 이어졌고, 현재는 '일러스타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행사 속 하나의 고정적인 게임 쇼케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일러스타 페스13에는 총 8종의 작품이 최종 참가했다. 공식 안내 기준으로 '식스타 게이트: 스타트레일', '순간을 빛나게', 'Raise the King', '빈 칸을 채워줘#1: 백지 위를 뒹구는 하얀 퍼즐들', '무루보로스', '외톨이 마녀와 골렘의 환상곡', '슬리핑 히어로즈', '러브테일'이다. 당초 참가 예정이던 '별빛 리플레이'는 기업 사정으로 출품을 취소했다.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번 일러스타 플레이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비주얼노벨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강세를 보였지만,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트 액션 등 직접 조작하는 재미를 강조한 작품도 함께 자리했다. 완성된 게임부터 이제 막 본격적인 제작과 펀딩에 들어간 신작까지 개발 단계 역시 다양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은 일러스타 페스 주최사 '스타라이크'의 대표 게임 '식스타 게이트: 스타트레일'이다.

'식스타 게이트: 스타트레일'은 우주 탐사를 소재로 한 키보드 리듬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연구선의 함장이 돼 내비게이터 '시이'와 함께 식스타 행성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악을 연주한다. 특히 음악에 맞춰 플레이 영역인 '게이트'가 변화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췄다.

이번 행사에서는 개최 직전 선보인 'Berry Melody 콜라보레이션 팩'을 전면에 내세웠다. 해당 DLC는 8월 24일 출시됐으며 'Guardian', 'Four-leaf clover', '双生のネビュラ', 'NNOYiA' 등 총 10곡을 추가한다. 스타라이크가 개발하고 스타라이크와 스마일게이트가 퍼블리싱한다.
그 옆으로는 '스튜디오2003'의 첫 비주얼노벨 '순간을 빛나게'를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사진'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던 주인공이 모델 지망생 '성예린'을 만나면서 과거 사진을 찍던 자신을 떠올리고, 오랫동안 카메라를 멀리했던 탓에 예전과 달라진 자신을 깨달은 뒤 고등학생 시절 친구 '홍연서'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개발진은 사진을 단순히 주인공과 히로인을 잇는 장치로 쓰기보다는 실제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품 시점도 의미가 있다. '순간을 빛나게'는 7월 2일부터 8월 27일까지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으며, 종료 직전 집계에서도 목표금액 600만원의 220%를 넘기는 후원을 확보했다.
일러스타 페스13에서는 게임 시연뿐 아니라 예린과 연서의 등신대를 배치하고 관람객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사진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게임 밖의 부스 체험까지 '사진'으로 연결한 셈이다.
'빈 칸을 채워줘#1: 백지 위를 뒹구는 하얀 퍼즐들'은 '스튜디오 화닐'이 개발한 청춘 러브코미디 비주얼노벨이다.

'공감'이라는 감각을 잃는 '공백 증후군'을 앓은 지 3년이 된 주인공 '이도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거리를 둔 채 살아가다가 모범생 반장 '윤새아'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새아의 취미 활동을 도윤이 돕게 되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소년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따라간다.
약 4~5시간 분량의 선형적인 스토리 중심 작품으로, 별도의 분기 없이 이야기에 집중하는 형태다. 캐릭터 풀 보이스와 립싱크를 지원하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배경 등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영어는 추후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스팀에 등록된 출시일이 8월 30일, 즉 일러스타 페스13 마지막 날과 같다. 행사에서 개발 중인 게임을 체험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정식 출시와 오프라인 출품이 한날 맞물린 작품인 셈이다. 스팀의 8월 30일 출시 예정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무루보로스(Muroboros)'는 이번 라인업 가운데 비주얼 측면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아이보리핸드'가 개발 중인 판타지 신화 기반 로그라이트 액션으로, 신의 힘을 손에 넣은 주인공 '무루'를 직접 조준해 발사하고 적과 오브젝트 사이를 튕겨 다니게 하는 이른바 '바운슬링(Bounceling)' 액션을 핵심으로 한다.
단순히 적을 향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설정한 방향과 충돌 결과가 연쇄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로그라이트 구조와 연결했다. 실패한 상황을 다시 설계하며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스팀 페이지에서도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으로 실패를 거절하고 최상의 가능성을 설계한다'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출시일은 아직 미정이다.

캐릭터를 직접 튕겨 공격한다는 생소한 조작법과 픽셀 그래픽, 고해상도 일러스트가 강하게 대비되는 화면 덕분에 스크린샷 한 장만 봐도 어떤 작품인지 기억하기 쉬운 게임이었다.
그 옆으로는 신작 비주얼노벨 '외톨이 마녀와 골렘의 환상곡'이 자리했다.

산속 깊은 곳에 사는 마녀와 그녀의 집에서 눈을 뜬 골렘, 그리고 약초꾼 소녀가 만들어가는 가슴 따뜻한 판타지 비주얼노벨이다. 골렘은 마녀와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난생처음 경험한 감정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간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출발 과정이다. 2025년 미연시 제작 워크샵 당시 '혜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명의로 제작된 단편이 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능성을 인정받아 유료 장편 작품으로 확대 제작하기로 결정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코멧 심포니'가 부스를 꾸리고 장편화를 준비 중인 작품을 소개했다. 대형 은발 마녀 일러스트와 함께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시연 환경을 마련했고,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도 관람객에게 나눠줬다.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한 워크샵 작품이 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편 상업 게임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오프라인에서 다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디게임 쇼케이스가 개발 과정의 다음 단계를 확인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례이기도 했다.
'슬리핑 히어로즈'는 '클리셰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액션 로그라이크다.

개발팀이 올해 공개한 인력 모집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 플랫폼 출시를 목표로 제작 중이며, 카툰 그래픽을 바탕으로 '뱀파이어 서바이벌' 계열의 전투 구조에 스토리와 액션 로그라이크 요소를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게임의 시작부터 플레이 완료까지 기본적인 틀은 구현된 상태이며, 이후 스토리에 맞춘 추가 스테이지를 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관을 관통하는 소재는 '악몽'이다. 개발팀은 현실 세계의 악몽과 판타지 세계를 연결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으며, "뻔한 클리셰가 아닌 Fun한 게임을 만들자"는 목표를 팀의 방향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발 이력도 꾸준하다. 클리셰 스튜디오가 공개한 자료에는 지원사업 우수상, 인디스타즈 선정, GIGDC 전시와 2025년 버닝비버 온라인 전시 등이 기록돼 있다. 아직 대형 상점 페이지를 통한 상세 정보 공개보다는 개발과 전시를 이어가는 단계인 만큼, 이번 일러스타 플레이 역시 실제 이용자에게 현재 빌드를 보여주고 반응을 확인하는 자리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부스는 '삼등분의 최애님'을 선보였던 '스토리어텀'의 신작 '러브테일'이다.

개발팀부터 작품을 '꼬리 좋아 미연시'라고 소개하고 있을 만큼 콘셉트가 분명한 미소녀 연애 비주얼노벨이다. 스토리어텀은 지난 6월 신작을 처음 공개한 뒤 캐릭터 영상과 스토브 데모 페이지, 크라우드펀딩 등을 순차적으로 준비해왔다.
이번 일러스타 페스13은 '러브테일' 입장에서도 중요한 첫 공개 무대였다. 개발팀은 행사 참가를 알리면서 게임 데모를 현장에서 최초 공개하고 방문객에게 작은 선물도 제공한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행사 하루 전인 8월 28일부터 텀블벅 펀딩을 시작하면서, 실제 게임을 체험한 뒤 바로 프로젝트를 후원할 수 있는 흐름도 만들어졌다.

앞서 '삼등분의 최애님'으로 비주얼노벨 이용자들과 접점을 만들어 온 개발팀이 차기작의 첫 플레이 빌드를 다시 일러스타 페스에서 공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완성된 작품을 홍보하는 것보다 신작의 첫인상을 관람객에게 직접 확인받는 쇼케이스에 가까운 부스였다.
이번 일러스타 플레이의 8개 작품을 한데 놓고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반드시 규모가 크거나 출시를 앞둔 작품만 모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오랫동안 서비스해온 '식스타 게이트: 스타트레일'은 갓 나온 콜라보레이션 DLC를 직접 시연했고, '빈 칸을 채워줘#1'은 행사 마지막 날을 스팀 출시일로 잡았다. '무루보로스'와 '슬리핑 히어로즈'는 아직 개발 중인 게임의 플레이를 보여줬고, '러브테일'은 처음으로 데모를 공개했다. '외톨이 마녀와 골렘의 환상곡'은 워크샵 단편이 장편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으며, '순간을 빛나게'는 크라우드펀딩을 마친 직후 관람객과 직접 만났다.
장르 역시 이번 관람객층을 그대로 반영했다. 청춘과 로맨스, 캐릭터를 강조한 비주얼노벨이 강세였지만 그 사이로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트 액션이 들어섰다. 크리에이터 마켓을 돌며 좋아하는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굿즈를 찾던 관람객이 몇 걸음 옮겨 이번에는 캐릭터가 실제로 움직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셈이다.
인디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온라인에 데모를 올리는 것과도 경험이 다르다. 플레이어가 어느 화면에서 멈추는지, 어떤 부분에서 웃거나 어려워하는지 개발자가 눈앞에서 볼 수 있고, 이용자 역시 게임 뒤에 있는 제작자에게 바로 질문을 건넬 수 있다. 애초 인디게임 특별존이 만들어질 당시 강조됐던 '현장 피드백'의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거대한 신작 발표나 대형 무대는 없었다. 대신 좁은 부스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을 설명하는 개발자와 그 앞에 앉아 처음 게임을 만지는 관람객이 있었다. 누군가는 고난도 리듬게임을 플레이해 주변 사람을 멈춰 세웠고, 누군가는 독특한 바운슬링 액션을 처음 경험했으며, 또 다른 관람객은 개발 중인 비주얼노벨의 이야기를 읽고 캐릭터 굿즈를 챙겨 돌아갔다.
8개의 작은 부스에 모인 완성작과 신작, 첫 데모와 개발 중 빌드. 이번 '일러스타 플레이'는 일러스타 페스13이라는 거대한 서브컬처 행사 속에서 게임 역시 캐릭터와 창작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홍이표 기자 siriused@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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