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게임즈가 개발 중인 트리플A급 액션 어드벤처 '우치 더 웨이페어러(Woochi the Wayfarer)'가 그리고 있는 '조선 판타지'의 모습이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조선시대의 복식과 건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복의 실루엣부터 인물의 얼굴, 설화 속 요괴, 한국의 자연과 빛까지 게임 안에서 '조선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준'을 새롭게 세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넥슨게임즈 로어볼트스튜디오 '목영미 아트 디렉터'는 21일 서울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언리얼 페스트 서울 2026'에 연사로 나서 '우치 더 웨이페어러: 게임 속 조선은 왜 조선처럼 보이지 않는가? UE5로 재정의한 한국 판타지 아트 디렉션'을 주제로 개발 과정과 아트 디렉션 노하우를 공개했다. 해당 세션은 이날 오후 2시 40분부터 진행된 게임 아트 분야 공식 강연으로 마련됐다.

목영미 AD 강연 모습 = 넥슨게임즈 제공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가상의 조선시대를 무대로 도사가 되기 위한 수련 중인 '전우치'의 모험을 그리는 싱글 플레이 액션 어드벤처다. 한국 고전소설 '전우치전'을 모티프로 한 오리지널 스토리에 도사와 구미호, 도깨비를 비롯한 한국의 설화적 소재를 재해석해 담는다.
특히 넥슨게임즈가 처음 선보이는 싱글 플레이 게임으로, 언리얼 엔진 5를 기반으로 개발 중이며 PC와 콘솔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개발을 맡은 로어볼트스튜디오는 스토리와 전투 액션을 중심으로, 엔딩까지 도달했을 때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내러티브와 시네마틱 연출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날 목영미 AD가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조선을 어떻게 조선답게 보이게 할 것인가'였다.
목 AD는 '검은 신화: 오공',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등 완성도 높은 동아시아 판타지 게임들을 사례로 제시했다. 각각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품들이지만, 처음 접한 이용자가 비주얼만으로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각 문화권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우치 더 웨이페어러' 개발진은 단순히 '동양적인 게임'에서 그치지 않고 한눈에 한국, 나아가 조선이라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한복과 얼굴, 풍경, 설화 속 존재까지 각각의 기준을 정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첫 난관은 한복이었다. 목 AD는 "한복은 멋지고 아름답지만 게임 개발자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고 표현했다. 역사적 형태에 충실할수록 게임 캐릭터로서 시각적인 임팩트가 약해지는 반면, 장식과 판타지적 요소를 과도하게 추가하면 정작 한복이 가진 한국적인 실루엣에서 멀어지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복 콘셉트 디자인 = 넥슨게임즈 제공
게임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에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더해졌다. 여러 겹으로 구성되는 한복의 구조 탓에 캐릭터가 움직일 때 옷과 옷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고, 넓은 소매와 넉넉한 품이 캐릭터의 메시(Mesh)를 뚫는 현상이 나타났다. 모든 천을 실시간으로 계산할 경우 카오스 클로스(Chaos Cloth) 시뮬레이션의 연산 부담 역시 커졌다.
개발진은 해답을 책이나 이미지에서만 찾지 않았다. 직접 여러 종류의 한복을 구매해 입어보고 스캔하며 움직임과 구조를 확인했다.
그 결과 갓과 도포가 만들어내는 한국 고유의 실루엣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전체적인 형태는 담백하게 유지하는 대신 시뮬레이션에 영향을 덜 주는 부분에 레이어를 쌓아 판타지 캐릭터에 필요한 밀도를 보완했다.
기술적으로도 옷 전체를 하나의 시뮬레이션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본 시뮬레이션을 통해 의상의 큰 흐름과 실루엣을 제어하고 실제 천처럼 자연스럽게 흔들려야 하는 일부 영역에만 카오스 클로스 시뮬레이션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잡았다.

목영미 AD 강연 모습 = 넥슨게임즈 제공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만큼 '고증' 역시 개발 과정에서 큰 고민이었다. 목 AD는 한국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는 데 책임감을 느꼈다면서도, 시행착오 끝에 고증 그 자체를 게임의 목적이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내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개발진은 고증과 판타지를 어느 정도 비율로 적용할지 아예 명문화했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주연급 NPC는 판타지 70%, 고증 30%, 일반 NPC는 판타지 30%, 고증 70%, 배경은 고증과 판타지 각각 50%를 기준으로 삼았다. 모든 요소를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대신 이용자의 시선이 집중되는 대상일수록 보다 적극적인 판타지적 재해석을 허용한 셈이다.
목 AD는 "한복을 만들면서 고증 그대로 게임에 옮긴다고 해서 무조건 조선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실제 한국에서 사용된 요소는 적극적으로 가져오되 그렇지 않은 요소는 과감히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처음 프로젝트를 소개했을 당시부터 개발진이 강조해 온 방향이기도 하다. 목 AD는 당시 '우치 더 웨이페어러'의 세계를 고증을 바탕으로 게임적인 상상력과 판타지를 더한 '퓨전 사극'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의상에 이어 개발진이 고민한 것은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목 AD는 기존 아시아 판타지 게임의 캐릭터들이 분명 동양인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한국인의 얼굴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우치 더 웨이페어러'에서는 실제로 한국에서 마주칠 법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사내 페이셜 3D 스캔 결과 = 넥슨게임즈 제공
주인공 우치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는 실제 배우를 캐스팅해 3D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하고 있다. 배우 캐스팅과 3D 스캔 촬영을 시작으로 모델링 수정, 텍스처와 스킨 셰이더 반응 확인, 인게임 검증을 거쳐 최종 캐릭터에 적용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만이 아니다. 관군과 양반, 주모, 대장장이처럼 세계 곳곳을 채우는 NPC의 얼굴을 만들기 위해 넥슨게임즈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페이셜 3D 스캔 지원자를 모집했다. 짧은 모집 기간에도 100명이 넘는 임직원이 참여를 신청했고, 실제 프로그래머와 배경 아티스트, 애니메이터, 게임 디자이너 등의 얼굴이 게임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됐다.
목 AD는 주변에서 실제로 만날 법한 얼굴들이 게임 속에 들어오면서 공간의 현실감이 높아졌고, 동시에 '조선 판타지'라는 작품의 정체성 역시 더욱 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초기부터 3D 스캔과 메타휴먼 기반 페이셜 작업을 활용해 사실적인 캐릭터 표현을 목표로 개발돼 왔다. 앞서 공개된 티저 트레일러 역시 별도로 제작된 CG 영상이 아니라 실제 게임 리소스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우치 더 웨이페어러'의 또 다른 핵심인 한국 요괴의 디자인도 처음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목 AD는 그슨새, 강철이, 어둑시니 등 한국 설화 속 존재들을 사례로 들었다. 수백 년 동안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음에도 오늘날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명확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개발진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정답이 없기에 '우치 더 웨이페어러'만의 해석을 더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몬스터 콘셉트 이미지 = 넥슨게임즈 제공
대표적인 존재가 도깨비다. 목 AD는 한국의 도깨비가 일본의 오니(鬼)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지만 성격부터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악귀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오니와 달리 한국 설화 속 도깨비는 장난스럽고 인간적이며 때로는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우치 더 웨이페어러'에서도 도깨비는 단순한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존재로 등장할 예정이다. 개발진은 향후 게임에서 재해석한 도깨비의 모습을 별도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강연에서는 제주도 설화에서 볏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전해지는 '그슨새', 한국 사자탈을 모티프로 재해석한 '광사족' 등 실제 게임에 등장할 몬스터 콘셉트 이미지도 처음 공개됐다.

티저 트레일러 갈무리
기존 티저에서 등장한 갓 쓴 까치와 범, 무당 '묘안' 역시 단순한 콘셉트 영상용 요소가 아니라 실제 게임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개발진은 한국 설화와 민화, 전통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되 실사풍 그래픽에 어울리도록 다시 해석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배경에서도 기존의 판타지 게임과 다른 기준을 세웠다. 목 AD는 "채도를 낮추고 화면을 어둡게 하면 단점을 가리면서 분위기를 더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한국의 빛을 어둠에 숨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티저 트레일러 갈무리
지난해 공개된 첫 티저가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보여준 것과 달리 실제 게임의 상당 부분은 밝고 화사한 자연과 생동감 있는 색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는 개발진이 프로젝트 공개 초기부터 강조했던 부분으로, 밝은 공간과 색감을 통해 다른 아시아권 판타지 작품들과 시각적으로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티저 트레일러 갈무리
이를 위해 언리얼 엔진 5의 루멘(Lumen)을 사용해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빛과 자연스러운 간접광을 구현하고, 메가라이트(MegaLights)를 활용해 많은 광원을 배치함으로써 강한 광량과 계절, 공간의 대기감을 표현했다.
반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요괴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지역은 밝고 화사했던 풍경과 대비되는 어두운 색조로 변한다. 공간의 형태 역시 점차 기괴하게 왜곡되며, 배경 변화 자체가 스토리의 흐름을 전달하도록 설계했다.

티저 트레일러 갈무리
수많은 한국적 요소를 대규모 게임 세계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프로시주얼 워크플로우도 활용한다. 단청은 꽃과 선, 테두리, 오염 등의 패턴을 각각 노드로 분리해 다양한 조합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도록 제작했으며, 바위에 붙는 이끼는 표면의 경사도와 방향을 분석해 자동으로 배치되도록 구성했다. 같은 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눈에 띄는 반복감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개발진은 디지털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국 각지를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명승지와 조선시대 주요 건축물을 답사하며 풍경과 건축, 자연환경을 기록하고 이를 게임에 활용하고 있다. 넥슨게임즈 역시 이전부터 로어볼트스튜디오가 조선시대를 고품질 3D로 구현하기 위해 전국의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직접 답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명승지 하나를 게임 안에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장소에서 수집한 한국적 특징을 다시 조합해 이용자가 화면을 바라봤을 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풍경 같다"고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번 강연을 관통한 핵심은 결국 '기준'이었다.
목영미 AD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조선 판타지를 만들기 위한 여러 기준을 세우고, 팀원 사이의 생각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기준이 있더라도 아트 디렉터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반복적인 공유와 논의를 거쳐 팀 전체가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우치 더 웨이페어러'가 역사적 조선을 그대로 복원하려는 게임과는 다르다는 점도 보여준다.

티저 트레일러 갈무리
실제 한복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 당시의 얼굴과 건축물을 똑같이 복원하는 것만으로 '조선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개발진의 판단이다. 역사와 설화를 기반으로 삼되 게임이라는 매체에 맞게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바꿀지를 끊임없이 선택해 하나의 새로운 '조선 판타지'를 구축하고 있다.
목 AD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 배경이나 의상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 조선시대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라며 "우리가 찾아낸 조선을 '우치 더 웨이페어러' 안에서 발견해 달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첫 티저에서 짧은 전투와 세계관의 분위기만을 보여줬던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이번 강연을 통해 그 화면을 구성하는 개발진의 고민과 기준까지 한 단계 더 공개했다. 한복과 한국인의 얼굴, 이름조차 낯선 설화 속 요괴, 그리고 어둠으로 감추지 않은 한국의 빛까지. 로어볼트스튜디오가 이야기한 '조선 판타지'가 실제 게임 플레이 안에서는 어떤 하나의 세계로 완성될지가 다음 공개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 Woochi the Wayfarer | Teaser Trailer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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