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서브컬처 행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행사장의 풍경도 화려해지고 있다. 코스프레와 무대 이벤트, 유명 게스트, 다양한 굿즈가 관람객을 끌어모은다. 그 가운데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행사가 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창작자가 직접 만든 ‘한 권의 회지’를 앞세운 동인 행사 ‘코미버스’다.
첫 코미버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회지를 직접 선보이려는 작가와 새로운 작품을 찾아 행사장을 방문한 관람객에게는 행복한 공간이었다. 행사장을 채우는 거대한 무대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작품이 중심이 됐고, 작가와 독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취향을 나눴다.
게임조선은 1회 코미버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대홍 대표와 만나기 위해 수원에 위치한 코미웍스 사무실을 찾았다. 김대홍 대표에게 코미버스의 목표와 성격,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듣기 위해서다.

김대홍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 부분은 ‘회지 중심 행사’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코미버스를 이미 존재하는 여타 동인 행사 중 하나로 남겨두기보다 규모를 적극적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면서도 규모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창작자와 작품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코미버스가 행사 기획 과정에서 주요하게 참고한 모델은 일본의 오리지널 동인지 즉매회 ‘코미티아’다.
“코미버스는 일본의 오리지널 동인지 즉매회인 ‘코미티아’를 주요 기반으로 기획한 행사입니다. 코미티아는 창작자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 작품과 회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배포하면서 작품과 창작자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코미티아의 특징은 단순히 작가가 부스를 열고 작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사에 출품된 회지 견본을 한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열람 공간이 마련되고, 출판사 편집자가 현장에서 창작자의 작품을 검토하고 상담하는 ‘출장편집부’도 운영한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출품된 회지를 다시 모아 볼 수 있는 ‘독서회’도 열린다.
김 대표는 이러한 구조를 코미버스에도 녹여내고자 했다.
“코미버스 역시 단순히 부스를 모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권의 회지가 더 많은 독자와 업계 관계자에게 발견되며 다음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코미버스에서는 출품된 작품을 한 자리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코미버스 라운지'가 마련됐다. 행사에 참가한 관람객이 모든 부스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아도 한 자리에서 다양한 작품을 살펴보고 그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회지를 발견하면 해당 부스로 이동해 작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작품과 독자의 만남을 이어가는 시도가 계속됐다. 코미티아의 독서회에서 착안한 ‘코미북스’를 홍대에서 진행해 행사에 출품됐던 회지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코미북스 역시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목표는 조금씩 대회 규모와 인지도를 키워간다는 것이다. 작품을 전시하고 독자가 발견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업계 관계자에게 선보이고 상담할 수 있도록 출판사와 관련 산업 관계자와의 연결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코미버스가 오리지널 작품, 즉 1차 창작만을 위한 행사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행사의 구조는 코미티아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지만, 김 대표가 그리고 있는 행사장의 모습은 오히려 1차와 2차 창작이 함께 균형있게 출품되는 공간이다.
“저는 코미버스가 오리지널 창작만을 위한 행사에 머무르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와 캐릭터에서 출발한 작품도, 좋아하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작품도 모두 중요한 동인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1차와 2차 창작을 엄격하게 구분하기보다 서로 다른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와 이를 즐기는 독자가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은 최근 국내 서브컬처 행사들이 대형화되는 흐름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관람객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 코스프레나 대형 무대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코미버스는 1차와 2차 창작에 진심인 작가와 독자를 위한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추어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경험이다.
“아마추어 작가님들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경험을 통해 창작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경험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프로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코미버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뜻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회지를 완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해 실제 작품으로 만들고, 인쇄를 거쳐 독자에게 선보이기까지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가 끝까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목표가 코미버스였으면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실제로 만나본 김 대표는 젊고 활기찬 인상이 강했다. 젊기에 가능한 빠른 행동력과 추진력이 느껴졌고, 동시에 정해진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려는 유연함도 엿볼 수 있었다. 첫 행사를 열고 코미버스 라운지를 운영한 데 이어, 행사에서 끝내지 않고 홍대에서 코미북스를 진행한 것에서도 이런 성향이 드러난다. 생각에 머무르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빠르게 실행하고, 반응을 확인하면서 다음 단계로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코미버스를 바라보는 방향이 분명했다. 행사의 규모를 키우겠다는 의욕은 강했지만 단순히 관람객 숫자를 늘리고 행사장을 크게 만드는 것만을 성장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회지가 더 많이 나오고, 작품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나며, 창작자가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가 말하는 코미버스의 성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목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인터뷰 마지막에 나왔다.
“앞으로 참가자분들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코미버스 때 출품하려고 만들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첫 코미버스는 확실히 소박한 규모의 행사였다. 참가 부스는 300 부스가 채 안됐고, 관람객도 5천 명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회지를 보여주고 싶은 작가와 새로운 회지를 찾아다니는 독자에게는 그 규모보다 행사가 가진 성격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코미버스가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김대홍 대표가 원하는 성장의 방향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한 권의 회지를 완성해야 할 이유가 되고, 그 작품이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
“코미버스가 한 권의 회지를 완성해야 할 이유가 되고, 새로운 창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창작자들 사이에서 “이번 작품은 코미버스에 내려고 만들었다”는 말이, 관람객들 사이에서 "이전 행사에서 봤던 작품의 후속편을 구입하러 왔어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그것이 김대홍 대표가 그리고 있는 코미버스의 다음 모습이다.
제2회 코미버스는 오는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재 aT센터 제1전시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 권의 회지를 발견하는 즐거움,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 마주하는 설렘,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과 나누는 동질감. 이런 경험을 기다리는 작가와 독자라면 올가을, 코미버스를 일정표 한편에 적어두는 것도 좋으리라.


[배향훈 기자 tesse@chosun.com ]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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