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레스는 14살에 자신이 살고있던 지역의 팀인 나시오날의 유소년팀에 가입했다. 15살에는 심판에게 박치기를 하여 퇴장을 당하였다. 하루는 음주 파티가 적발되자 코치는 진지하게 축구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하겠다고 경고하였다. 2005년 5월 18세의 나이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주니오르전에서 1군팀 데뷔전을 치뤘다. 2005년 9월에는 첫 득점을 하였으며 리그에서 27경기에 출장하여 10골을 넣으며 나시오날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005-06 우승을 도왔다.
수아레스는 선수를 찾으러 온 네덜란드 팀 FC 흐로닝언의 스카우트팀의 눈에 띄었다. 시즌 종료 후 수아레스 영입을 위해 흐로닝언은 나시오날에게 80만 유로를 지급하였다. 수아레스는 아주 기뻐하며 유럽으로 떠났는데 왜냐하면 여자 친구이자 현재 부인인 소피아 발비가 바르셀로나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아레스는 2006년 에레디비시의 흐로닝언에서 뛰기 위해 네덜란드로 이주하였다. 2007년에는 아약스로 이적하였으며 2008-09 시즌에는 아약스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2009-10 시즌에는 아약스의 주장을 맡았으며 33경기에서 35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 네덜란드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공식 경기 49골을 넣으며 아약스는 2009-10 KNVB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1년 1월, 2,650만 유로(약 404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리버풀로 이적하였다. 시즌 중에 참가한 수아레스의 도움으로 1월 중순까지 리그 12위였던 리버풀은 6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2년 2월에는 풋볼 리그 컵 2011-12에서 우승하며 리버풀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3년 12월 4일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5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17.4 경기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프리미어리그 사상 가장 잦은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수아레스는 우루과이 대표로 2007년 U-20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가 4위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3골을 기록하였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수아레스는 4골을 기록, 우루과이는 15번째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수아레스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2013년 6월 23일, 수아레스는 35골로 우루과이 역대 최다 득점 선수가 되었다.
2014년 7월 11일, 수아레스는 바르셀로나과 5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징계에서 풀려난 수아레스는 시즌 41경기 24골 20도움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마무리했다.
수아레스는 2007년 2월 8일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그 경기에서 그는 85분째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였다. 2010년 FIFA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첫 네 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 2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23명의 멤버로 선발되어, 조 예선 3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해 멕시코와의 조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였다. 이어 대한민국과의 16강전에서 2골을 추가하였다. 대한민국과의 경기 후 박지성에게 가서 유니폼을 교환하는 장면으로 더 유명해졌다. 2014년 5월 무릎 부상으로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수아레스는 "박지성은 대한민국의 아이콘이었다"며, 그 당시 유니폼을 맞바꾼 건 영광이었다고 회고하였다.[1]
가나와의 8강전에서는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연장전 종료 직전에 가나의 결정적인 골 찬스를 고의적으로 손으로 쳐내서 곧바로 퇴장당하였고, 페널티킥을 내주었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가나의 아사모아 잔이 이를 실축하면서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우루과이는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의 선방에 힘입어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우루과이는 4강전에서 수아레즈 이는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일으킨 신(神)의 손 사건에 비유되며 2010년판 신의 손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이 사건에 대해 우루과이 현지 언론과 축구팬들은 수아레스를 “자신을 희생하며 승리를 부른 영웅”이라고 부르며 4강 진출의 1등 공신으로 추켜세운 것으로 전해졌으나 반면 가나의 밀로반 라예바치 감독은 "그는 영웅이 아닌 내 존경하는 스승님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전반적으로 골 결정력도 매우 뛰어나지만 동시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수아레스는 새로운 소속팀 리버풀 FC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친 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루과이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그는 페루와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전반 막판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내었다.그리고 페루와의 4강전에서는 2골을 추가하여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고 파라과이와의 결승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어 우루과이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그는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고 4골을 기록하였으나 5골을 넣은 호세 파울로 게레로에 1골 차이로 득점왕은 차지하지 못하였다.
수아레즈는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였다.
수아레스는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3라운드 칠레전에서 해트트릭(4골)을 기록하는 등
단 세 경기만에 5골을 기록한 상태이며 현재 기존의 남미 지역예선 최다득점자인 아르헨티나의 에르난 크레스포가 2002년에 기록한 남아메리카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기록인 9골을 4골 남겨놓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활약이 줄어들면서 9차전이 종료된 시점에서는 6골로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과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수아레스는 아르헨티나는 수비가 약한 팀이라 역습을 제대로 전개하면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고 공언했으나 팀은 3-0으로 패배했다. 결국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는 총합 11골을 기록하여 그전의 최다득점자인 에르난 크레스포의 9골을 제치고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역사상 최다득점자가 되었다. 이 골의 경쟁자가 리오넬 메시(10골), 곤살로 이과인(9골)같은 쟁쟁한 골잡이들이라는 점에서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의 이 기록은 더욱 빛났다.
수아레스 본인은 이토록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나 자신의 팀 우루과이가 부진하는 바람에 우루과이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가게 되었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아시아의 약체 요르단을 상대로 1차전 5-0, 2차전 0-0으로 1승1무를 달성하고 본선에 진출했으나 같이 편성된 팀들이라는 게 하필이면 이탈리아, 잉글랜드, 코스타리카 같이 쟁쟁한 팀들이라 1982년 FIFA 월드컵 2차 리그 이후 최악의 죽음의 조가 되었다. 하지만 제일 약하다고 소문났던 코스타리카에게는 패한 반면 잉글랜드에게는 승리하였으며,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로 코스타리카에게 패하고 잉글랜드에게 승리하였는데, 골득실 때문에 우루과이는 비기기만 해도 탈락인 상황이었다. 결국 수아레스는 3차전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심판의 눈을 피해 조르조 키엘리니의 왼쪽 어깨를 깨물었다. 비록 심판에게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비디오 판독에서 발각됨으로써 수아레스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이로 인해 국제경기 9경기 출전금지 및 4개월 자격정지(4개월 간 축구와 관련된 어떠한 행위도 금지), 10만 CHF(약 1억 1,300만원)의 벌금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우루과이는 디에고 고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기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16강전에서 수아레스가 빠진 상태로 콜롬비아를 상대하여 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2골을 내주고 0:2로 져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출처 위키백과----
네이버 검색해보니 위키백과에 꽤나 길게 우리으 핵이빨 수아레스의 전대기(?)가 있더군요 ㅎ 그래서 퍼왓습니다
여기까진 수아레스의 실축얘기였구요. 다음 스샷은 피3내에서의 15시즌 수아레스의 스탯입니다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