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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져도 모든 게 멀쩡하게 굴러가는 기묘한 게임

작성일 : 2020.10.11

 

'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불륜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접근하면 윤리에서 어긋난 일을 의미하며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피해야 하는 언행을 의미하지만 보통은 가장 긴밀한 인간관계인 가정을 가장 확실하게 파탄 내는 간통을 대신하여 쓰이는 게 일반적인 활용이다.

때문에 불륜은 미디어에서 다루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소재다.  종교적인 규율을 중시하는 국가나 사회에서는 두말할 필요 없이 금기시되고 아닌 곳에서도 보통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만약 불륜을 저지른 후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묘사가 생략되기라도 하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브컬처에서는 입장이 좀 다른 것 같다. 출생의 비밀에 불륜이 엮여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하며 피카레스크를 지향하는 작품에서는 악인형 주인공이 다른 악인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불륜을 저질러야 진행이 쉬워지는 게임, 제작사가 시스템적으로 불륜을 권장하는 게임, 그리고 불륜이 없으면 이야기 진행이 안되는 게임까지 나오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왜 이런 소재들이 게임 내에서 핵심 요소로 사용되고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일까? 각 작품별 불륜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해 조선통신사 포스트에서 소개한 <토탈 워:삼국> 통칭 삼탈워의 뉴메타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불륜을 소재로 한다.

바로 교섭 시스템 중 하나인 '혼인 주선'을 활용한 배우자 수집이다. 기본적으로 혼인 주선은 모든 팩션(세력) 리더가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남성 장수의 능력치가 여성 장수보다 월등히 강하고 그 수나 종류도 다양하기에 일반적으로는 본편의 유일한 여성 팩션 리더인 도적 여왕 '정강'의 전유물로 취급받고 있다.


남편 수집가 '리사 정'

일단 정강은 상당히 준수한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계속 전투를 하면서 악명을 높여야 이득을 볼 수 있는지라 외교적인 부분에서 페널티가 따라붙는데 이를 결혼 합병으로 커버하며 양질의 장수를 휘하에 두고 세를 불리는 것이다.

초반 전투력이 막강한 정강과 여포의 조합은 부부사기단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강력했고 그 이후 차례차례 다른 세력의 장수들을 잡아먹으며 비교적 낮은 후반 포텐셜을 보완할 수 있다보니 이 엇나간(?) 육성 방법은 정강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사실상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개발사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정강의 결혼 합병은 한족 문화권의 인물들과는 불가능해지고 후계자를 낳은 뒤 파혼하고 전 배우자들을 또 결혼시켜서 인재를 계속 불릴 수 없게 되는 등 많은 제약이 생겨나게 됐다.


결혼 한 번 잘 하면 인생이 쫙 펴진다

근데 최근 업데이트된 삼탈워의 DLC '흉폭한 야생'에서 남편 수집 메타가 다시 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로 추가된 두 번째 여성 팩션 리더 '축융 부인' 때문인데 실제 역사처럼 맹획과 결혼하는 특별 이벤트가 문제다.

정강조차도 겹결혼은 불가능하여 새로 결혼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혼이 수반돼야 하지만 축융 부인은 맹획과의 결혼 이벤트가 발생하면 기존 남편이 있는지의 여부는 관계없이 맹획이 정실(?)이 되고 기존 남편은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축융과의 관계도 그대로 아내라 표기되는 명백한 후실(?)이 된다. 합법적인 두 집 살림이 삼탈워에서는 가능하다.


삼탈워보다 더욱 매운맛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크루세이더 킹즈 3>다. 크킹 시리즈 자체가 높은 자유도 때문에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반쯤 농담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대부분이 싸이코패스와 진배없는 짓을 하고 다녀 중요한 자리에 앉히면 안 된다는 '요직 게임'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번 3편에서도 그 악명은 여전하다.

일단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배경은 중세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각 국가별로 할당된 다양한 군주 중 하나를 선택, 십자군(Crusaders)의 영광을 바로 세우는 위대한 왕(King)이 되는 것이 목표다.

쉽지 않은 여정인 만큼 단순히 병사를 불리고 좋은 지휘관을 모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온갖 불상사에 대처하기 위해 배우자를 들이고 자식 농사를 짓는 후계자 육성과 같은 내정 활동도 굉장히 중요하다.


흔한 개발자 시연 영상 중 한 장면

여기까지 보면 평범하다. 문제는 더 마음에 드는 자식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다른 자식들에게 누명을 씌워 참살하고, 더 비옥한 땅을 영지로 편입하기 위해 애정 없는 결혼 후 아내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으며 상속권을 가진 며느리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는 막장 드라마가 여기서는 일상이라는 점이다.

이런 막장스러운 윤리관은 중세 유럽에서도 일부는 실재했던 부분이고 게임적인 허용으로 본다면 납득 못할 것도 없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건 제작사에서 배우자 살해, 다수의 이성 유혹하기 등 도전 과제 등을 통해 이를 적극 권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막장 도전 과제의 달성 난이도는 다른 도전과제에 비해 쉬운 편에 속한다. 


오죽하면 크킹3를 두고 역대 최고급 인종 교배 실험장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그나마 순한 맛에 속하는 <캐서린>이다. 위의 게임들에서는 불륜이 게임 속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만 캐서린에서는 그 불륜이 극 중 모든 사건의 원인이고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주인공인 빈센트는 교제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나 사실상 사실혼에 가까웠던 연인 '캐서린 맥브라이드'가 주는 진짜 결혼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모르는 여자와 술을 진탕 마셨다가 선을 넘는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빈센트는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며 그 속에서 목숨을 위협받고 도덕적인 책임감과 자유를 향한 일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어떠한 길이 옳은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어드벤처와 퍼즐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게임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흐름과 엔딩은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크게 갈리는 비주얼 노벨의 맥락을 따라가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거나 서로를 존중하며 헤어지는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정신병자가 되거나 멋진 보트를 타는 것은 물론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모든 악몽에서 계단이 나오는 건 몸만 큰 애어른 '빈센트'가 진짜 어른이 되는 계단을 오르는 것이라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편의를 위해서 팬덤에서는 굿-노말-배드 엔딩을 분류하고는 있지만 일단 게임 내에서는 그 어떤 엔딩도 무엇이 옳고 나쁘고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좋든 나쁘든 그에 따른 대가는 확실하게 주인공을 따라온다. 게임성에서는 비판받는 부분도 있지만 너무 가볍게 접근하는 듯한 위의 사례들에 비하면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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