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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편한리뷰] 서울2033, 몇 번의 플레이 끝에 가난한 개발자를 죽였습니다.

작성일 : 2019.03.28

 

타이틀 지우고 스크린샷만 덜렁 있으면 그 회사 직원도 무슨 게임인지 분간 못 해, 게임스타트 버튼 누르자마자 나오는 첫 화면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개보다 유료 상품 판매 팝업창이 더 크게 떠, 게임성보다 과금 유도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임들이 많다 보니 어떤 게임을 어떻게 리뷰를 해도 '믿고 거릅니다', '기자 미쳤냐', '입금 완료' 등의 댓글만 달리는 마당이니 신작은 계속 나오고 그냥 속 편하게 써보는 리뷰.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게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른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단순한 게임 소개나 출시 보도자료도 아니고, 어떤 한 인디게임이,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기능을 통해 게임을 즐기는 시각장애인이라 밝힌 이용자를 위해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접근성 개선 업데이트를 진행했더라는 내용이었다.
 
이 훈훈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디개발사 '반지하게임즈''서울2033'이다.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고 난 뒤 세계를 그린 생존 게임이다. 배경과 달리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의 내레이션이 특징. 무료 버전으로 즐길 수 있으며 몇 가지 이벤트가 추가되고 광고가 삭제된 버전인 후원자 버전이 따로 있다. 리뷰 쓰면서도 몇 번이나 서울2033, 서울2023 헷갈려서 일괄 수정했음.
 
 

 
 
게임의 특수성 탓에 장르를 먼저 밝히자면 모바일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다. 서울2033은 이렇다 할 화려한 이미지나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 없이 순수하게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따금 주요 이벤트에서 삽화가 등장한다. 게임 진행은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화자를 통해 주인공의 상황을 전해 듣고 상황에 맞는 선택지를 골라 생존해나가는 방식. 진행 요령만 듣자면 비주얼 노벨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선택지로 상호작용하는 e북에 더 가깝다.
 
기획 의도만 두고 보면 분명 게임의 완성도가 높다 할 수 있지만 게임이란 모름지기 삐까번쩍한 시각적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라면에 물 2배 넣고 끓인 것처럼 아예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첫인상은 게임 자체의 재미보다는, 뻔하지 않은 구성에 호기심으로 해보게 되는 정도라고 하겠다.
 


선택지를 통해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 게임조선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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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따라 피해를 입기도, 능력을 얻기도 한다 = 게임조선 촬영

 
여기에 생존을 뜻하는 '체력' '멘탈', '자금'을 넣었다.
 
어느 것 하나 관리를 못하면 쉽게 죽고 게임오버가 된다. 쥐새끼한테도 물려서 죽고, 시체 썩은 냄새에 충격받고서도 괜히 뭐 좀 숨어 있는 거 같아서 시체 찾으려다가 멘탈이 깨져 죽기도 하고, 체력이 낮을 때 헌혈하다 죽기도 한다. 이제까지 생존 게임 중 가장 쉽게 죽는 주인공 중 하나. 이런 개복치 멘탈의 주인공이 나중에는 권총 한 자루로 건카타 무쌍을 찍기도.
 
다행히 바로 게임오버가 되는 체력, 멘탈과 달리 자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게임오버가 되는 일은 없다. 대부분 이벤트 진행이나 능력 습득을 위해서 돈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약탈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돈을 대신 상납해야 하는 일도 생기므로 체력, 멘탈, 자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배경은 핵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고 폐허가 된 서울. 주인공은 도봉산 자락 어느 소규모 공동체에서 태어나 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주인공은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서울로 떠나게 된다. 평범한 일반인이지만 게임의 주인공답게 습득력이 뛰어나 각종 이벤트와 사건들을 겪으며 갖가지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또한, 이 능력으로 하여금 추후 발생하는 이벤트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달라지는 등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진행에 다양한 분기를 넣은 것이 특징.
 
최초 튜토리얼에서 랜덤하게 주인공의 생존 스킬 몇 가지가 주어진다. 도봉산을 떠난 이후부터 발생하는 이벤트는 대부분 랜덤성을 띤다. 이런 운빨ㅈ... 하나의 이벤트를 마쳤을 때 다음 어떤 이벤트가 뜰 것인가- 는 이미 지나온 루트나 주인공의 능력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지는 바도 있지만 단순 조우, 단순 습득 등의 이벤트는 그야말로 약간의 운을 필요로 하여 추후 서울2033의 고인물이 되어 하드 모드를 탐험하게 됐을 때 멘탈을 박살내기도 한다.
 
 


다양한 능력을 얻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이 세계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선의는 악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이후 더 큰 도움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당장 닥쳐올 위험을 해결해주지는 않으며 아무리 오래 플레이하고, 좋은 능력을 가졌다 한들 모기 새끼한테 물려서 죽을 수도 있는 험난한 세상이다. 어느 정도의 랜덤성 때문에 주인공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성장하는 것도 아니기에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본능을 따르는 것이 속 편하다.
 
대신 일부 주요 이벤트는 특정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경우가 많다.
 
미상의 적에게 총격을 당했을 때, '날렵함'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지만 그대로 상대가 떠나갈 때까지 벌벌 떨며 멘탈이 깎이기도, 혹은, 무리하게 도망가려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맨홀에 빠진 아이를 구출하여 감사 보상을 받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아이를 구하고 있는 사이 뒤통수를 가격 당해 정신을 잃고 자금을 다 털리는 일도 생긴다. 이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여러 조건을 만족했을 때 습득하게 되는 '능력'이다.
 
특히, 메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비중 있는 여러 주요 이벤트는 아예 분기 선택을 위해서 특정 능력을 필요로 하거나 해당 이벤트를 무사히 해결하고 살아남기 위해 여러 능력들을 요구하기도.
 
 


진행에 따라 다양한 업적을 달성한다 = 게임조선 촬영

 
어느 게임이나 그렇지만 첫 플레이가 가장 중요한 법. 혹시나 맞아죽을까 봐 객기 안 부리고 돈 달라는 데로 다 주고 위험해 보이는 일은 다 패스하면서 심장 졸여가며 살살 플레이하고 있는데도 어이없이 죽어서 처음으로 돌아가니까 사실 처음에는 짜증이 확 치솟는다. 내가 모은 것들, 내가 진행한 곳까지 또 언제 가나 싶고... 그 뒤로도 여러 번 죽음은 반복됐다. 그런데 짜증이 난 채로 우다다다 분기 넘겨가며 대여섯 번 더 죽고 보니 비로소 이 게임을 알겠다. 이제야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반복된 경험을 통해 어떤 이벤트에서 어떤 능력을 습득할 수 있고 또, 이 능력을 통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감이 잡히다 보니 말 그대로 생존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의도한 플레이가 적중했을 때, 이를 통해 이전에는 무시하거나 실패한 이벤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하나의 이벤트를 끝마쳤을 때의 만족감이란 것이 생겼다.
 
단순히 첫 시도만에 부모님의 원수를 찾아 죽이고 끝낼 생각이라고? 미안하지만 그것이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서울2033이 준비한 이벤트의 반에 반도 즐기지 못한다. 몇 번 플레이하다 보니 메인 스토리 엔딩을 보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더라.
 


특정 이벤트를 달성하는 일일퀘스트가 존재 = 게임조선 촬영

 
일일 퀘스트 완료 시 얻을 수 있는 보상, 쿠키로 튜토리얼에서 추가 능력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게임 진행 중 개발자가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스토리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중.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거나 일부 단체에 대한 이벤트를 계속해서 추가하고 있는 것으로. 일부 스토리는 메인 스토리급 규모인 경우도 있다. 실제 진행 도중 세계 곳곳에 대해 알 수 있는 다양한 떡밥(?)이 던져진다. 이렇게 많은 준비를 했고, 또 준비를 해나가고 있음에도 개발자야, 개발자야. 스토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기자는 후원자 모드(3,900원)로 했더니 반복 플레이 시마다 무조건 개발자가 한번 등장해서 '의료용 나노머신'을 지급해줬다. 굽신거리는 개발자를 권총으로 쏴 죽이면 업적도 주더라. 잔인한 것 같지만 사실 행복해하면서 죽음.
 


의료용 나노머신 내놔! = 게임조선 촬영

 
 
Point.
1. 자꾸 죽는 것. 막히는 것까지 이 게임의 재미.
2. 스스로 실마리를 잡을 때까지 웬만하면 공략은 보지 말 것
3. 꼭 원하던 이벤트 날려먹고 난 다음 턴에 파훼 능력이 뜨는 건 기분 탓이겠죠
4. 개발자가 길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 듯
5. 쿠키 써서 하드모드 시작했는데 바로 까마귀 만나면 개발자 쏘고 싶어짐
 
 
◆ 플레이 영상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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